올해 다같이 59세가 된 영숙씨의 고향 친구들은 모이기만 하면 이질적인 자식 세대의 행태를 이야기하느라 대부분의 모임 시간을 보냈다. 맛집 앞에 몇시간이고 줄을 서고, 결혼 전에 남녀가 거리낌 없이 같이 여행을 가고, 명품백이나 신발을 사려고 혹은 되팔려고 백화점 앞에 줄을 서고, 어디서나 SNS에 올릴 사진 찍기에 열을 올리는 행태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데서 시작해서 아들딸이 결혼을 한 친구들은 또 그 달라진 결혼 풍경에 열을 올렸다.아들네 집에 가면 왜 아들이 늘 집안일을 하는지, 딸네 집에 가면 사위가 주방일을 하는
우식씨의 작은애가 대학교에 입학하던 해였다. 살고 있는 강남 아파트의 재건축이 시작된다는 거창한 계획이 단지 주민회의에서 발표되었다. 우식씨는 향후 10년 이상은 걸린다는 말에 학군 문제도 신경쓸 일이 없어진 터라 그 아파트를 전세 주고 외곽의 신축아파트로 전세를 얻어 나왔다. 그런데 벌써 어언 15년이란 시간, 아니 긴 세월이 흘러버렸다. 15년이 흘렀지만 ‘명품아파트’로 거듭난다던 그 아파트는 아직 재건축의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1980년대 초에 결혼해서 그 시절에는 요즘과 달리 강남에만 아파
인철씨는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운동모자를 휙 벗고 마스크를 내린 뒤 거실 벽에 붙은 큰 거울에 얼굴과 전신을 이리저리 비춰 보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소파에 앉아 있는 부인 민자씨에게 진지하게 물었다.“당신 눈에도 내가 진짜로 할아버지로 보여?”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드라마와 스마트폰을 동시에 보고 있던 아내 민자씨는 사뭇 진지한 남편의 질문에 깔린 진정한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고 건성으로 대답을 하고 말았다.“왜 누가 당신 보고 할아버지라고 해요?”“아, 지금 막 공
“여보, 오늘도 무사히 잘 보내요!”요즈음 중식씨와 경선씨는 아침 8시쯤 아파트의 현관문 앞에서 이런 인사를 나누었다. 염색을 싫어해서 머리칼이 온통 허연 중식씨와, 염색을 했으나 자라나는 흰머리칼이 숨길 수 없이 머리밑으로 드러나는 경선씨는 영락없는 60대 중반의 부부다. 그런데 ‘오늘도 무사히!’라니. 이 말은 보통 개인택시나 버스를 운전해서 늘 위험에 노출된 가장에게 해주는 아침인사말인데 이 부부는 무슨 일을 하는가.중식씨와 경선씨는 매일 아침 각자의 부모님 댁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
인옥씨는 요즘들어 자꾸 한숨이 나고 절로 눈물이 흘렀다. 코로나 시절이 오래되자 누구나 겪는 코로나 블루인 것 같아서 처음 며칠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멍하게 소파에 앉아 있다가 가게 되는 곳이 작은 아들의 방이었다. 아들만 둘을 둔 인옥씨는 한 달 전에 작은 아들을 결혼시켰다. 요즘은 부모가 주체어인 ‘결혼을 시켰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자식이 주체인 ‘결혼을 했다’라고 말한다지만, 부모의 마지막 역할이 자식의 결혼이라고 생각해왔던 인옥씨 입장에선 마침내 두 아
금자씨는 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각 대학별 논술과 특수전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새삼스레 추억이랄까, 감회랄까 하는 감정에 빠졌다. 지금은 대학교 3학년과 대학원생이 된 아들과 딸이 치른 4년간의 입시전쟁이 다시금 떠오른 탓이다. 금자씨는 두 살 터울로 아들과 딸을 두었는데, 아들이 재수를 하고 대학입시가 끝나자 작은딸이 고3이 되었고, 그 딸이 또 재수를 하는 바람에 총 4년간 수험생엄마 시절을 보냈다.그 4년간의 전쟁과도 같은 입학전형을 치르며 직접 가본 대학이 10여 곳이 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인수씨는 인터넷으로 예약한 강원도 바닷가의 한 펜션을 무사히 찾았다. 자가용을 가져오지 않고 가까운 강릉역에서 택시를 타고 들어왔다. 달랑 작은 짐가방 한 개뿐이라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코로나 백신접종을 완료한 아내가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정어머니와 언니를 보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1달 정도 머물다가 온다기에 이참에 인수씨는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강원도 한 달 살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남자 혼자’라는 사실과 ‘한 달 살기’라는 두 가지 명제가 그리 어려울 것 없어 보이는 조합이지만
시골집에 살고 계신 친정어머니가 홀로 생일을 맞이하면 안 될 것 같아 며칠 전에 막내딸인 인자씨가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왔다. 노모는 제일 마음 편한 막내 인자씨 집에 며칠째 묵으면서 두 아들과 다른 두 딸을 보고 싶어 했다. 인자씨는 큰언니인 숙자씨에게 전화해서 어머니 생일 점심때 장어구이를 먹으러 교외로 가자고 했다. 여름을 보내느라 부쩍 기운이 떨어진 88세 노모에게 보양도 해드리고 꽤나 뜨악해져버린 언니와의 만남도 주선할 참이었다.그런데 큰언니 숙자씨의 병이 또 도졌다. 이번에도 한사코 어머니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55세 경호씨는 요즘 편의점 알바생이다. 일반 사무직으로 중소기업에서 일찍 퇴직을 하고 나니 기술도 주특기도 없는 악조건이라 일을 하고 돈을 벌려면 창업을 해야만 하는 형편이었다. 창업 설명회다, 스타트업이다, 이곳저곳 기웃거리기는 했는데 자본금이 적은 처지라 아직 모색 중이었다. 마침 편의점을 운영하는 친구로부터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야간알바를 해줄 수 있겠냐는 연락이 왔다. 편의점 점주라면 사장님임은 분명하지만 실상은 본인과 가족과 알바까지 동원돼야만 제대로 돌아가는 게 24시간 편의점이었다.밤에 야간영업을 도와주던 친구의
영옥씨의 친구들이 모두 감정적으로 집단반발과 가벼운 우울 상태에 빠졌다. 영옥씨는 1960년생이고 친구들도 거의 동갑으로 작년에 환갑을 지냈다. 요즘 환갑이면 청춘이라 환갑잔치는 어울리지도 않는다며 입에 올리지도 않았고 신중년이라는 새로운 세대 구분으로 마냥 젊은 나이인 듯 살아오지 않았던가. 코로나만 종식되면 히말라야 원정대라도 꾸릴 기세로 건강한 그룹이 영옥씨 친구들이었다. 게다다 UN이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새로 발표한 연령분류 기준표에 의하면, 18세~65세는 청년, 66세~79세는 중년, 80세~99세는 노년이래서 아
종호씨에게 오랜 친구들과의 산행은 언제나 즐겁다. 매달 첫 번째 토요일과 세 번째 토요일 오전에 만나 3~4시간 산행을 마치고, 하산해서 마주앉는 점심식당. 그 자리에서의 막걸리 한 사발이면 주중에 쌓였던 피로와 고민이 한 번에 사라져버리는 마법이 가능했다. 산행 중에는 어떤 얘기를 해도, 혹은 아무런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은 편안함이 깃든 친구 사이였다. 대모산, 청계산, 북한산, 아차산 등 서울 근교의 산을 번갈아 다니는데, 오늘은 싱그러운 연두색 나뭇잎이 지천인 남한산성 둘레길을 걷고 내려와서 버스 종점 부근에서 유명한 삼겹
요양원 문을 들어서는 발걸음이 마음의 추가 발에 달린 듯 늘 무겁기만 하다. 인숙씨의 친정어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신지 벌써 3년이나 되었다.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작은 요양원으로 어버이날이라고 창문 너머라는 조건으로 특별 면회가 허용되었다. 코로나로 저번까지는 요양원 사무실에서 전화로 음성만 듣고 필요한 물건을 전해주는 정도에 그쳐 아쉬움이 너무 컸다.직장인과 대학생인 인숙씨의 딸과 아들은 어버이날이라고 꽃바구니와 요즘 유행한다는 용돈박스를 선물로 주었다. 인숙씨는 어버이날이 올 때마다 자신이 낀세대임을 절감했다. 선물을 주는 자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