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국제 정세는 늘 변한다. 한동안은 마치 영구히 변함이 없는 것처럼 한가롭기만 하다가도, 한번 변화가 시작되면 내일 일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격변하기도 한다. 이것은 한여름이나 한겨울같이 지루한 날씨가 이어지다가 급격히 변하는 환절기의 날씨에 비할 만하다.중국 춘추시대는 수백 년 동안이나 정세변화가 없다가 전국시대로 들어서면서 급격한 이합집산이 벌어졌다. 1백년 넘게 하루도 전쟁 없는 날이 없더니, 이윽고 진(秦)나라 정왕(政王) 때 전국이 통일된다. 그가 바로 진시황이다. 격렬한 환절기를 지나 ‘물의
[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장자(莊子)는 살림에 별 관심이 없어서 집이 가난하였다. 당장 끓여 먹을 곡식이 없어, 가족들이 굶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잡곡 몇 되라도 빌리려고 고을 수령 감하후를 찾아갔다. 감하후는 인색한 사람이었으나 상대는 덕망 높은 장자가 아닌가.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이렇게 둘러댔다.“물론 빌려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유가 없으니 몇 달 후 세금 거둘 때가 되면 그때는 3백 금이라도 빌려드리겠습니다. 기다려 주시겠죠?”말을 듣고 장자는 얼굴이 붉어졌다. 당장 잡곡 한 봉지 살 몇 푼이 없어서 온 것인데,
[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추수(秋水)편에 나오는 말을 가만히 음미하노라면 임진왜란 직후 왜국에 건너가서 왜왕을 무릎 꿇렸다는 사명당 대사의 전설이 떠오른다. 불 위를 걸어가고 끓는 물 속에 들어가서도 손끝 하나 다치지 않았으며, 사해의 용왕을 불러 풍운뇌우(風雲雷雨)를 부르게도 하고 거두게도 하니, 왜왕이 벌벌 떨며 백배사죄하였다는 소설 속 이야기 말이다.불 위를 걸으면서 터럭 하나도 그을리지 않았다는 기인들의 이야기는 그 밖의 많은 경전이나 전설 속에도 수다하게 녹아 있다. 어떻게 해서 그런 기인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어떤 사람이 문득 한 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게 된다면 깜짝 놀라 달려가 구하려 하지 않겠는가.왜 그러겠는가. 아이를 구해서 아이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해서겠는가,마을 사람들과 친구들로부터 칭찬받기 위해서겠는가, 어린아이의 비명소리가 듣기 싫어서겠는가.단지 그를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절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공손추 上편[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사람이라면 당연히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맹자는 말한다.어린아이가 위기에 빠진 것을 보고도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無惻隱之心
백성을 명령으로 다스리고 형벌로 구속한다면, 백성들은 일시적으로 범죄를 모면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범죄가 수치스러운 일임을 깨닫지는 못할 것이다. 백성에게 수치심을 가르치면 사람들은 마음으로부터 복종하게 된다.- 공자[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요즘 대중의 인기를 얻는 사람들 중에는 일명 ‘개통령(’개들의 대통령‘을 의미한다고 함)’이라 불리는 애견훈련사 강형욱 씨가 있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인기가 거의 스타급이다.아무리 거친 개도 그의 손에 닿으면 이내 차분해지거나 잘못된
[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살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학교에서 배우는 윤리·도덕과 실제 사회에서 통하는 윤리·도덕이 때때로 따로 논다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정직 양보 희생 겸손 같은 미덕은 역대의 성인들이 가르친 바요, 학교 도덕 교과서에서 강조하는 윤리다. 그런데 그 가르침을 따라서 과연 얼마나 잘 살 수 있는가, 그에 비해 파렴치하게 사는 사람에겐 어떤 대가가 따르는가. 현실에선 상당히 회의적일 때가 많다.동양 최초의 역사서라는 의 저자 사마천은 의리를 따라
“어떤 사람이 자기 그림자가 두렵고 자기 발자국 남는 것이 싫어서 그것들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빨리 걷기 시작했는데 움직일수록 오히려 발자국은 늘어났고, 아무리 빨리 달아나도 그림자는 떼어놓을 수가 없었지요.‘내가 아직 느리구나’라고 생각한 그 사내는 더욱 빨리 걷다가 이제는 뛰어 달아나기 시작했지요. 발자국은 그가 속도를 내는 만큼 빠르게 좇아왔고 그림자도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더 빨리 질주하던 사내는 결국 숨이 차서 쓰러져 죽고 말았답니다.”疾走不休 絶力而死 (질주불휴 절력
[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옛날에 ‘양자거’라는 사람이 있었다. 도를 공부하는 사람이라 늘 현인을 찾아다니려 하였고, 위대한 일이 아니면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입을 열면 도(道)를 말하고 기회가 되면 정의와 불의를 논했다. 그의 뜻이 워낙 고고해서인지, 다른 사람들이 쉽게 대하지 않았으며, 그는 그것을 존경의 뜻이라고 생각하여 은근히 그 고고함을 즐겼다.그가 여관에 들어가면 주인이 달려 나와 방석을 내오고 하인들은 수건과 빗을 단정히 준비하여 챙겨주었다. 음식을 먹던 사람들도 감히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고,
[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복권 판매소가 동네마다 잘 유지되는 것을 보면 사람들에게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심리가 일반적으로 있는 것 같다. 19세기 빈센트 고흐의 그림 중에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담은 풍속화라 할 만한 것들이 좀 있는데, 거기서도 흥미롭게 보인 것이 ‘복권판매소’라는 작품이다. 꽤 많은 사람이 복권판매소 앞에 줄지어 서서 구매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이 마치 요즘 주말 복권판매소의 풍경과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어쩌다 수백억 원의 당첨금을 받게 되는 사람은 매스컴을 타고 다른 나라에까지 화제
[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모든 성인의 경전에서 개인의 수양 덕목으로 중시하는 것 중의 하나가 말(言)에 대한 경계다.불교에서는 몸으로 짓는 신업(身業), 생각과 의지로 짓는 의업(意業)과 함께 말로 짓는 구업(口業)을, 선을 쌓기도 하고 악을 쌓기도 하는 인간의 세 가지 수단 중 하나로 경계한다. 기독교의 경전 중에 있는 잠언과 전도서에는 지혜로운 말과 어리석은 말의 차이가 사람의 흥망성쇠를 바꿀 만큼 중대함을 깨우치는 격언이 수없이 반복돼 나온다. 또한 말 한마디가 세상을 위로하기도 하고 화를 일으키기도 함을 거듭 강조한다. &
[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20세기의 기원을 찾아 유럽 역사를 뒤지노라면 예상치 못했던 하나의 문화 트렌드와 마주치게 된다. 1900년 전후 40~50년에 걸쳐 유럽의 문화예술계에 유행했던 ‘자포니즘(Japonism)’이라는 코드다. 문자만 보고도 짐작이 된다. 일본풍(風)의 영향이 1백여 년 전 유럽 예술 문화계에 넓게 퍼져 있었다.그 무렵 파리 예술의 주류였던 인상파, 후기 인상파 그리고 뒤를 이은 아르누보와 사실주의 화가들에 이르기까지, 당시로서는 이국적 문화인 일본풍을 앞다퉈 받아들여 그들의 작품에 반영
[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공자의 제자 자공이 초나라에 갔다가 진(晉)나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한수 남쪽쯤을 지나는데 한 촌로가 바지런히 들일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노인은 밭에 물을 주기 위해 깊은 우물로 내려가 항아리로 물을 길어 나르고 있었다. 땀을 흘리며 물을 나르지만 그 일을 언제 다할까 싶다. 자공이 보다 못해 말을 건다.“어르신. 그렇게 해서 언제 물을 다 주겠습니까? 요즘 사람들은 두레박에 수차(水車) 같은 기계를 써서 물을 쉽게 길어 올리는데, 노인께서는 왜 그런 기계를 쓰지 않으시는지요?&rd
[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사람의 몸은 정신의 지배를 받는다고 한다.사람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것을 알고 있었다. ‘일체유심조’라든가 ‘건전한 정신에 건강한 몸’이라든가 하는 격언들도 그래서 나온 것일 게다.최근에 미국 등의 최신 의학에서도 정신과 몸의 관계를 통한 질병의 치료나 건강유지법에 대한 연구는 가장 활발한 편에 속한다. 심신(心身)요법이니 심신의학(Psychosomatic medicine 또는 Mind-body medicine)이니 하는 용어들은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그 원
[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All is well that ends well(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속담은 셰익스피어 희곡의 제목으로도 쓰인 말이다. 그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지만, 한 평생을 어떻게 살았든, 살면서 어떤 곡절과 실패와 실수들이 있었든, 남에게 마음의 빚을 남기지 않아 말년을 흔쾌히 웃으며 지낼 수 있다면 이 속담처럼 말할 수 있지 않을까.주변에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요 몇 년 사이에는 한층 많은 부음을 접하고 있는 것 같다. 내 개인적으로도 작년 올해 연속하여 집안 어른들
[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가벼운 퀴즈를 하나 소개하고 싶다.문제: ‘우리나라 5천만 인구의 머리카락 숫자를 다 더한 숫자와 중국 14억 인구의 머리카락을 다 곱한 숫자 중 어느 숫자가 클까.’도움될만 한 힌트도 드리겠다. 일단 중국 인구는 수적으로 월등 많다. 단순히 보아도 28배나 된다. 또 하나, 같은 숫자들을 놓고 곱할 때와 더할 때, 그 결과 값은 일반적으로 곱하기의 값이 훨씬 높다. ‘산술적 증가’와 ‘기하급수적 증가’ 같은 말도 있지 않은가.그러면 답은 쉽
[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간담상조(肝膽相照)라는 말이 있다. 간과 쓸개를 서로 다 꺼내 보여주는 사이라는 비유이니, 아무 것도 감출 게 없이 막역한 관계를 이르는 말이다.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이 처음 사용된 당(唐)나라 문호 한유(한퇴지)의 시에서, 이 비유는 아름다운 우정을 노래하면서 사용된 말이 아니었다.한유와 더불어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당나라와 송나라 때 이름을 날린 8명의 대표적 문인들)의 한 사람인 유종원은 강직한 사람이었다. 조정의 관리로서 환관과 귀족 세도가들에 맞서 개혁을 시도하다 실패한 후 좌천되어 먼 지
세상에는 난주(暖姝)형 인간,유수(濡需)형 인간,권루(卷婁)형 인간이 있다.고전 ‘서무귀편’에 나오는 말이다.[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장자는 난주(暖姝)형 인간을 이렇게 설명한다. ‘소위 난주라는 것은 단 하나의 이론을 배워 그것을 자기 학설로 삼아 만족하는 사람이다.’ 마음에 드는 하나의 이론을 만나면 그것을 절대적 진리로 삼아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옳은 것이 없는 것처럼 신봉하며 매사를 그것 하나를 기준으로 재단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 같다.간혹 자신이 믿는 신념, 신조에 매달려 그 외의 것은 무엇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집단행동이냐! 집단자살이냐!"[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지구의 기후변화에 대해 실질행동을 촉구하는 유엔의 경고가 절박하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주 베를린 페테르부르크 국제 기후회담에 부친 영상메시지에서 한 말이다.우리에겐 단 하나의 선택이 남았습니다. 집단행동에 나설 것인가 집단자살을 택할 것인가. 그 선택은 우리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We have a choice. Collective action or collective suicide. It is in our hands)지난 세기부터 기후변화의 위험성과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