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22] 추석 대화법

오은주 기자
  • 입력 2019.09.16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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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최여사는 추석이 며칠 앞으로 다가오자 남편인 문식씨의 입단속에 나섰다. 다른 집은 음식장만이니 청소니 가사노동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는데 최여사는 일보다도 문식씨의 입이 더 걱정이었다. 요즘 정치인이나 정치평론가들의 유튜브에 푹 빠진 문식씨는 아주 정치학 박사에다가 아마추어 시사평론가 내지는 대단한 애국지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당신, 이번 추석에 애들이랑 모처럼 같이 밥 먹고 분위기 좋은데 괜히 요즘 정치 얘기 꺼내지 말아요. 그냥 그런 얘기는 당신이랑 거의 생각이 같은 친구들끼리 실컷 얘기하면서 해소하고 애들이랑은 하지 말아요. 지난번 선거할 때 큰애랑 서로 얼굴 붉히고 그랬잖아요. 요즘 또 의견이 분분한데 사회인이 된 자식들을 당신 의견대로 따라오라고 하거나 가르치려고 들면 안돼요.”

“아니 그럼 부모가 돼가지고 그런 얘기도 못하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그런 말도 못해?”

“아이구, 아버님 살아계실 때 당신도 면전에선 대들지 못하다가 집에 와서는 뭘 모르고 고루한 관점에서 얘기한다고 맨날 그랬잖아요.”

회사원으로 은퇴한 문식씨의 18번은 요즘 우리나라 보통 사람들은 조선시대 왕들보다 더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데 그게 다 경제개발에 몸바쳐온 자기 세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말이었다. 아들과 딸이 고등학생이 돼서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해온 주장인지라 달달 외울 정도가 됐는데도 심심하면 튀어나오는 대단한 진실의 레퍼토리였다.

문식씨네는 몇 년 전부터 추석에는 집에서 차례를 지내지 않고 성묘로 대신하고 모든 가족이모여서 ‘가족의 날’처럼 지내고 있다. 아들은 아침에 처가에 미리 다녀오게 하고 딸도 시댁에 다녀와서 자연스레 온가족은 점심에 모여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과 딸 며느리 사위까지 모두가 30대로 직장에 다니는 터라 각자의 업종에 따라 할 이야기도 많고 들을 만한 이야기도 많았다.

손주들이랑 아들딸의 얼굴만 봐도 흐뭇한 최여사와는 달리 남편 문식씨는 작금의 나라사정에 대해 자꾸 젊은이들이 뭔가 중요한 진실을 모르고 있다는 듯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을 꺼내려 했다. 그런 기미가 보일 때마다 최여사는 말을 끊고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여보, 은퇴한 당신보다 지금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얘네들이 더 잘 알지 않겠어요?”

이번 추석 가족모임은 최여사의 강력한 견제로 문식씨에게는 도통 마음에 들지 않고 시시할 뿐인 문화와 연예가 얘기로 끝나지 싶었다.

그러나 아뿔싸! 최여사가 화장실에서 조금 길게 있었더니 그새 사단이 났다. 거실에 나와 보니 문식씨가 나라상황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중이고 사위와 며느리는 조금 거리가 있는 터라 예의를 지키느라 듣고 있지만 아들애는 못마땅해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드디어 아들애가 다른 말로 국면전환을 시도했다.

“그러니까요, 아버지, 이제 추석 연휴도 끝나고 우린 내일 아침부터 출근해야 하는데, 오늘은 그만 일어설게요.”

최여사가 마무리를 지었다.

“그래 그래, 이만들 가야겠다. 내일부터 출근하려면 각자 집에 가서 저녁엔 좀 쉬어야지.”

못내 아쉬움 속에 아이들을 배웅하고 온 문식씨에겐 아직도 못 다한 말이 가슴속에 가득했다. 최여사가 저러다간 지하철에서 모르는 젊은 사람 붙들고 나라가 어쩌고 하게 될까봐 퇴로를 터주었다.

“정치 얘기 하고 싶으면 밤낮으로 나한테 다 쏟아내요. 다 들어줄 테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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