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다현의 시니어플랫폼 7] ‘20년 후’를 위하여(1)

문다현 칼럼니스트
  • 입력 2019.09.20 13:07
  • 수정 2019.12.20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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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다현 칼럼니스트<br>-한국시니어복지연구원 대표<br>-사회복지학박사<br>-인제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겸임교수<br>-주식회사 메디펀 감사<br>-부산소비자신문 운영위원 및 편집부국장<br>
▲ 문다현 칼럼니스트
-한국시니어복지연구원 대표
-사회복지학박사
-인제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겸임교수
-주식회사 메디펀 감사
-부산소비자신문 운영위원

오 헨리의 단편소설 <20년 후>를 기억하실 것이다. 두 친구가 20년 후에 다시 만나기로 하는 내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 명은 도둑으로, 한 명은 도둑을 잡는 경찰로서 만난다. 오 헨리는 소설에서 두 친구가 예상을 뛰어넘는 역할로 만나게 하는데, 후회와 탄식이 저절로 나오는 기묘한 설정을 한다. 그의 소설이 극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람의 인생이란 것이 다시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없는 시간으로 전개되어서이다. 오늘은 소설 <20년 후>를 떠올리면서, 시니어에게 다가올 20년 후의 현실이 어떠할지 생각해보고 싶다.

먼저 20년 후의 사회는 인구비율에서 65세 이상이 약 40%를 차지한다. 10명 중 4명이 고령 인구로서, 최대 다수의 인구집단을 형성한다. 20년 후에는 고령자가 약 40% 정도로 사회의 다수 집단이 되면서도, 80세 이상이 약 20%를 차지하는 지금과는 정반대인 역피라미드형 인구비율이다. 길을 걷거나, 식당 혹은 카페에서 우리가 만나는 다수는 고령자가 되는 사회인 것이다. 고령인구의 증가는 일하는 인구(생산가능인구, 15~64세)의 감소와 연결된다. 이미 생산인구는 수도권을 기준으로 2010년 최고점(76.7%, 국가통계포털)이후, 감소세가 현실화되고 있다.

다음으로 2019년 현재를 기준으로 20년 후의 사회는 2039년이다. 20년의 시간을 삶의 단계를 대입해 보면 학생이 어른으로 변신할 정도로 긴 시간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듯이 20년의 시간은 앞서 오 헨리의 소설처럼 극적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아시다시피 미래사회는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급격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속도의 법칙에서 가속의 힘은 더욱 큰 변화로 작용하듯이, 20년 후의 변화란 무시무시할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이 가속하는 변화의 조건에 필수적이고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시간이다. 오늘은 이 시간의 성격에 대해 살펴본 후에, 20년 후를 알아보겠다.

우리에게 시간은 산소처럼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존재이다. 시간은 아침이면 해가 뜨고 저녁이면 해가 지는 일상으로서 너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시간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아무 상관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 지구의 탄생도, 인류의 탄생도 오랜 시간의 힘 속에서 가능했다. 그런데 이 시간은 독특하게도 불가역성의 성질을 갖고 있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시간은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으로 공평하게 허락된다. 하지만 누구도 남의 시간을 사거나 팔수가 없고, 빌려줄 수도 없다. 또 시간은 오늘 좀 여유 있고 남는다고 해서 다른 바쁜 날을 위해 따로 저축해둘 수가 없다. 시간은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무한성으로 인해 다시 과거로 되돌릴 수가 없다.

그런데 유구한 무한성을 가진 이 시간이라 해도 인간 존재에 작용할 때는 한정적인 성격에 갇힌다. 무한성의 시간이 인간생명체와 연관되면 생명체의 시간 안에서 한정될 뿐이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생명체의 시간 안에서만 존재한다. 생명체가 소멸하고 없으면 그의 시간도 소멸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20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소년은 청년이 되고, 장년은 노년이 될 수 있다. 그 시간 속에서 인간은 생로병사의 길을 간다. 이렇게 시간은 생명체와 연관되어 상호작용할 때 한정된 시간만큼의 의미로 특성 지어진다.

아울러 시간은 생명체에게 끝을 알 수 없는 소멸을 맞이하는 조건으로 주어진다. 누구도 얼마만큼의 시간이 자신에게 주어지는지 모른다. 그래서 시간은 인간과 연관되어 극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매개역할을 하거나, 한정적 시간으로 인해 압축적인 소중함이나 중요함 등의 의미를 부각시키는 조건으로도 작용한다.

정리하면 시간의 성격은 생명체와 연관될 때 유한성과 불가역성의 성질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시간은 그 시간 이전으로 되돌아 갈 수 없으며, 단지 현재 남겨진 결과로서 확인된다. 특히 생명체에서의 시간은 마지막 순간에 함께 소멸될 뿐, 사라지고 없어지며 단지 삶의 시간을 통해 흐른다.

이쯤 되면 20년 후의 사회를 논할 때 갑자기 왜 시간 얘기를 하는지 눈치 챘을 것이다. 그렇다. 초고령사회를 앞둔 2019년 현재가 시니어를 포함한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때인지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시니어는 물론이고 누구든 꿈꾸는 미래를 맞이하고자 한다. 하지만 20년 후의 사회가 꿈꾸는 미래가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의 토대를 준비할 수 있는 지금을 실기(失機)하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20년 후는 모두에게 올 미래이다. 그 때 다가올 변화가 리스크가 아니라,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우리 한국에는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긍정적 시사점 3가지가 있다. 위기도 기회가 될 수 있는 시사점이 무엇인지 다음 장에서 그 내용에 대해 생각해보겠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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