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24] 어머니, 어머니

오은주 기자
  • 입력 2019.09.30 11: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주말을 맞아 부모님 댁을 찾은 경찬씨는 언제나 그렇듯 가라앉아 있는 집안 풍경에 마음이 무거워져 왔다. 경찬씨 자신도 60대 초반으로 곧 공식적으로 지하철을 공짜로 탄다는 ‘지공거사’가 될 날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굳이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따로 살면서 90세 아버지와 85세의 어머니가 꾸려가는 집안풍경은 조용을 넘어 적막했다. 보건 안보건 켜져 있는 텔레비전 소리가 없다면 물 속 같을지도 몰랐다.

다행히도 어머니는 다리와 허리가 그리 아프지 않아 아직도 집안 살림을 하지만 아버지는 노인성기억력장애의 끝이라는 초기치매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폭력적이지 않고 대소변은 가리는 수준이라 아직 요양병원 등의 입소는 미루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머니밖에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와 하루 종일 같이 지내는 어머니는 인내심이 보살의 경지에 이른 듯 어린애 같은 아버지의 태도에도 한결같이 웃으며 응대를 하고 있었다.

비록 초기치매증상을 보이긴 하지만 아버지가 비교적 평화로운 말년을 보내고 있어서 경찬씨는 감사한 마음이었다. 오늘은 결혼해서 이제 막 돌이 지난 아기를 키우고 있는 딸아이가 친정에 온 김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본다고 동행을 했다. 제법 잘 걷는지라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 증손자에게서 사랑의 눈을 떼지 못하는 어머니와는 달리 아버지는 그저 웃기만 할 뿐 어떤 말도 어떤 감정표현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혹시라도 아버지가 옛날사진을 보면 무언가 반응이 있을까 싶어서 경찬씨는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은 옛날사진들을 텔레비전 화면에 띄웠다. 요즘은 스마트폰 갤러리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들을 텔레비전과 연결하면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던가! 경찬씨는 얼마 전에 옛날 앨범 중에서 간직하고 싶은 사진들을 다시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갤러리에 보관 중이었다.

경찬씨가 어린 시절에 동생들과 함께 찍은 흑백사진,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이 어딘가 여행을 가서 찍은 듯 멜빵바지를 입은 아버지와 양산을 쓴 젊은 어머니의 모습도 보였다. 어머니는 사진을 찍었을 당시의 상황을 거의 정확하게 기억하는 반면, 아버지는 그 어떤 사진이나 설명에도 알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을 뿐 반응을 하지 않았다. 경찬씨는 아버지의 의식이 그 어떤 햇살도 닿을 수 없는 캄캄한 심해의 바닥에 박혀 있어서 기억의 한 자락도 이젠 끄집어 낼 수가 없는 상태임을 절감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경찬씨가 그래도 어머니라도 보라고 계속 사진을 올리던 중, 경찬씨의 할머니, 즉 아버지의 어머님이 한복을 곱게 입고 찍은 사진이 화면에 나타났다. 경찬씨도 비녀를 꼽고 한복을 입은 할머니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의 입에서 한 단어가 흘러나왔다.

“어머니네…..”

“어머니……”

모두 놀랐고, 소름이 쫙 올랐다. 아내와 자식들의 얼굴은 물론 자신의 모습조차 못 알아보던 아버지가 “어머니!”라는 말을 한 것이다. 자신의 얼굴조차 잊어버린 사람의 심연에 남아 있는 어머니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경찬씨는 사진 속의 사람들을 못 알아보는 지아비가 안타까워서 옆에서 애타게 설명을 해주고 있던 어머니의 손을 지긋이 잡았다. 어머니가 시장에만 가도 언제 돌아오나 하고 문간에 서서 기다리던 아이였던 경찬씨는 이제 어머니의 손을 그 시절처럼 놓지 않고 싶었다. 초보 엄마라 어미 노릇을 힘들어하고 있는 딸아이는 무엇을 느꼈는지 제 아들을 꼭 끌어안았다.

Ⓒ박명기
Ⓒ박명기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