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의 밑줄긋기 1] 내가 내 뺨을 때리며 야단쳤다

박명기 기자
  • 입력 2018.10.04 11:43
  • 수정 2019.08.2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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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드니 나를 야단치는 사람이 없어졌다. 그래서 내가 내 뺨을 때리며 야단쳤다 

-시인 나희덕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는 5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특히 유부녀랑 동반 자살을 시도했다. 동반 자살했지만 그만 살아남아 자살방조죄로 기소되기도 했다. 그는 ‘인간실격’ 집필을 마치고 동거 중이던 여인과 투신자살했다. 마지막에는 끝내 성공(?)했다.

그의 대표작인 소설 <사양>은 일명 '사양족 신드롬'을 일으켰다. 패전 후 허무주의 빠진 일본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몽롱한 눈빛의 꽃미남 외모와 함께 눈에 띄는 것이 그의 첫 창작집 제목 ‘만년’이다. 왜 젊디젊은 나이에 <만년>이라는 제목을 단 소설을 썼는지 짐작된다.

최근 식사 모임에서 서유석이 부른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라는 트로트 제목을 인용한 건배사를 들었다. 유쾌함이 무르익은 식사자리에서 소리 내어 웃었지만 후련하기는커녕 목 한쪽이 먹먹했다.

나희덕 시인의 ‘나이가 드니 나를 야단치는 사람이 없어졌다. 그래서 내가 내 뺨을 때리며 야단쳤다’는 문장을 읽을 때도 먹먹했다. 소설가가 빨리 늙고 싶었던 만년은, 시인에게는 아무도 야단을 쳐주지 않는 어떤 ‘쓸쓸함’이었던 것이다.

둘러보니 나를 야단치는 사람이 없는 시절이 되었다. 내가 내 뺨을 때리며 야단치는 마음으로 [박명기의 밑줄긋기]를 출발한다. 내가 읽은 책과 세상에서 귀동냥하며 ‘밑줄긋기’하던 순간들도 기억난다.

나희덕 시인의 시 <푸른 밤> 중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이라는 구절이 자꾸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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