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식의 인생 바라보기⑫] 가을길 로드 킬러(Road-killer)

윤창식 칼럼니스트
  • 입력 2019.10.3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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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식- 수필가-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윤창식
- 수필가
-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자동차는 가을길을 바람처럼 달리고 있었다. 누렇게 익은 벼논 사이 황토길에는 코스모스가 하늘거렸고 이따금 벼메뚜기 서넛 속날개를 부채살처럼 펴들고 가을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순간, 차창에 미세한 물체 하나가 언뜻 스치는가 싶더니 차바퀴 앞으로 굴러 떨어졌다. 낙하한 물체는 바로 가을빛으로 보호색을 띈 사마귀(버마재비) 한 마리였다. 그 물체가 운전자의 눈에 띈 것은 순전히 차량의 속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랑거차(螳螂拒車)’

하마터면 운전자는 외마디 소리를 지를 뻔했다.

요놈 봐라. 감히 누구에게 덤비는 거여?”

당랑권법(螳螂拳法)의 품세로 차바퀴를 노려보는 사마귀에게 Y씨는 비릿한 코웃음을 한 방 날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운전대를 옆으로 꺾었으나 사마귀의 몸통은 우악스러운 차바퀴를 감당하지 못했을 터이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짓누를수록 Y씨 차량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현장을 빨리 벗어나야 하겠다는 강박이 옥죄어 왔던 것이다.

“293779 차량! 속도를 줄이고 길옆으로 붙이세욧!”

Y씨는 환청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헛것이 보이는 것 같아 백미러를 자꾸 힐끔거렸다. 백미러에는 가을하늘 구름이 몇 점 스치는가 싶더니 이내 병원 구급차와 보험사 견인차가 번갈아 비쳤다가 사라지곤 했다. 자동차는 더욱 속도를 냈으므로 현장과의 물리적 거리는 많이 벌어져 있었으나 당랑역살(螳螂轢殺) 현장은 더욱 또렷이 룸미러에 맺히는 것이었다.

이를 워쩐다? 지나가는 차량 블랙박스에 다 찍혔을 텐디...”

코스모스와 벼 나락들, 메뚜기의 수많은 홑눈과 겹눈들을 뒤로하고 Y씨는 외국영화 제목 같은 로드킬러가 되어 쫓기는 카레이서의 마지막 페달을 밟으며 K광역시로 접어들었다.

Y씨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자동차 바퀴에 묻어있을 사마귀의 푸르스름한 체액 자국이 무던히 그를 괴롭혀 밤을 온통 뒤척였다. 날이 밝으면 먼저 ()사마귀생명보험에 연락하고 곧바로 곤충경찰서의 고충처리과에 자수할 요량이었지만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아득한 시간의 수레바퀴를 따라 제 갈 길을 묵묵히 가고 있었을 한 마리 사마귀의 명운(命運)이 운명(殞命)으로 귀결된 애꿎은 죽음. 영겁과 찰나가 일합을 겨룬 황토길 결투의 승자는 과연 누굴까?

Y씨의 마음속에서는 들길을 바람처럼 달렸다라는 미사(美辭)가 속이 텅 빈 한낱 허구의 처량한 모습으로 바람처럼 빠져나가고 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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