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의 밑줄긋기 8]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이다

박명기 기자
  • 입력 2018.11.12 20:20
  • 수정 2019.03.26 15:4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이다.”

                         -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낸 작가 윌리엄 깁슨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무엇을 상상하는가는 이 세계에서 어쩌면 대단히 중요한 일인 것이다.”

작가들은 과학자나 미래학자는 아니지만 직관과 통찰에서 벼린 칼날처럼 예리하다. <뉴로맨서>(1984)를 쓴 소설가 윌리엄 깁슨은 공학도도 과학자도 아니었다. 문학을 전공했고 컴퓨터를 잘 못 다루고 인터넷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3대 SF(공상과학소설) 문학상인 휴고상, 네뷸러상, 필립 K 딕상을 석권한 최초의 작품 <뉴로맨서>를 통해 많은 아티스트와 뮤지션들에게 ‘사이버펑크’라는 새 조류를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

윌리엄 깁슨의 첫 장편소설 <뉴로맨서>는 비디오게임으로도 만들어졌다. 이 작가의 단편에서 출발한 영화 <코드명 J>(1995) 등 그가 그려낸 소설 속 미래는 칙칙하고 암울하다.

그는 인터넷을 의미하는 ‘사이버 스페이스’와 ‘매트릭스’라는 용어를 처음 고안한 사람이기도 하다. 영화 <매트릭스>(1999)와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2002)는 <뉴로맨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뉴로맨서>는 20세기 최고의 SF소설이라는 평을 받았다.

재미있는 다른 사실 하나.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 말은 2012년 9월 19일 안철수 박사가 서울 구세군아트홀에서 18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지며 인용해 널리 회자되었다.

당초 윌리엄 깁슨이 1993년 NPR(미국 공영 라디오)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었다. 안철수 박사가 인용한 이후 한국에서 소설이 더 잘 팔렸다고 한다. 정치인으로 꽃길만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안철수 박사는 이 말 한마디로 의사 출신 IT업계 사업가이자 ‘미래를 대표하는 지도자’라는 핵심 키워드를 제대로 어필하고 선점하는 효과를 누렸다.

*******

아마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하는 SF작가’를 든다면 단연 필립 K. 딕(1928~1982)일 것이다.

우선 영화 <토탈 리콜>(2012)의 원작은 필립 K. 딕의 화성여행 소재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라는 단편소설이다. 이 영화는 1990년 폴 버호벤 감독과 아놀드 슈워제네거, 샤론 스톤이 출연해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필립 K. 딕의 작품은 44편의 장편소설과 121편의 중단편 중 무려 12편이 영화화됐다. 영화 <블레이드 런너>(1982)는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라는 중편소설을 영화화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와 <페이첵>(2003)은 필립 K. 딕의 같은 이름의 소설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영화 <매트릭스>(1999)의 매트릭스는 소설 <뉴로맨서>에 있는 사이버 공간을 가리킨다. 영화 제작에 토대가 된 것이다. 영화 <인셉션>(2010)은 필립 K. 딕의 소설 <죽음의 미로>로부터 직접적 영향을 받았다.

필립 K. 딕 소설은 충격적인 미래와 인간 정체성에 심오하고 강렬한 메시지가 담는 것으로 정평이 났다. 그의 영향력은 SF문학과 할리우드 영화를 넘어 종교와 철학 등 사회 전반에 퍼져나갔다.

작가는 공포증과 우울증과 약물 남용 부작용, 공황장애, 자살 시도, 다섯 번의 결혼과 이혼으로 점철한 파란만장을 삶을 살았다. 하지만 탁월한 지성과 광기의 소유자였던 그의 상상력과 통찰력은 여전히 후배들의 소설과 영화에서 마르지 않은 모티브가 되고 있다.

*******

“진실은 생각이 아니라 느낌에 있다.”

-스탠리 큐브릭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1963)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원작 아서 C. 클라크 소설 ‘추적자’) <시계태엽 오렌지>(1971, 원작 앤서니 버지스 동명 소설) 등의 인류미래 시리즈 3부작 영화로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명장이다.

“19세까지 책을 읽은 적이 없다”는 그는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통해 영화혁명이라 불리며 신드롬을 만들었다. 디지털 시대가 다가오지 않은 아날로그 시대에 한계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는 우주시대의 디테일을 찍기 위해 NASA에 고증을 요청하기도 했다. 달과 목성과 외계인 등 인류 역사와 기계 문명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이 담긴 이 영화는 이후 SF영화의 경향을 단번에 뒤바꿔 놓았다.

그의 영화는 ‘특수효과의 교과서’로 불릴 정도로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심이 컸다. 그는 조지 루카스(스타워즈), 스티븐 스필버그(ET, 쥬라기공원), 제임스 카메론(터미네이터, 아바타), 리들리 스콧(마션, 에일리언), 크리스토퍼 놀란(인터스텔라, 인셉션) 등 수많은 감독들에게 롤모델이 되었다.

*******

시몬 페레스 대통령은 이스라엘 건국 아버지다. 중동 평화를 이끈 선구자이고 버락 오바마가 가장 존경한 정치인이다.

전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제 2차관은 “기억의 반대는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망각이라 말하는데 나는 상상력이라 생각한다”고 시몬 페레스의 말을 인용한 바 있다.

시몬 페레스의 수많은 업적 중 가장 큰 주목받고 있는 건 이스라엘을 ‘창업률 세계 1위’의 벤처 천국으로 만든 것이다. 어떤 스타트업이든 가능성만 인정을 받으면 투자받을 수 있다.

그의 상상의 디자인 덕분에 인구 850만 명에 한국의 5분의 1면적인 이스라엘은 첨단기술산업 메카가 되었다. 2016년 기준 6000개의 스타트업 가운데, 90곳이 나스닥에 상장되었다. 이스라엘판 실리콘밸리인 ‘실리콘 와디’는 자동차-IT-바이오-농업 등 기술벤처투자의 최적지가 되었다.

천연자원이 없는 이스라엘로선 미래 기술의 흐름을 놓치면 생존이 쉽지 않다는 현실 인식이 컸다. 작가와 예술가처럼 미래를 설계하는 지도자들의 ‘상상력’이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

영화 <블레이드 런너>와 <토탈 리콜>, <터미네이터2>(1991)는 말 그대로 놀라운 영화였다.

소위 농촌 출신에다 ‘문돌이’(문과)인 나에게는 기계가 지배하는 세계, 눈앞 스크린에 '이미 와 있는 미래'는 무시무시했다. 뒤의 두 작품은 공교롭게도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주인공이었다.

기억 조작된 인간과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는 근육질 기계인간을 보며 상상력 극한을 맛봤다. 꿈같은 화성 여행과 미래에서 과거로 급파된 액체 금속형 로봇은 전율을 불렀다. 보이지 않은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안은 ‘근육질’이었다.

몇 년 전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이세돌과 알파고가 ‘세기 대결’을 하는 현장에 취재차 참석한 바 있다. 거기서 맛본 AI(인공지능)에 대한 공포는 ‘금속성’이었다.

조각가 로댕의 영혼의 동반자이자 애인을 다룬 영화 ‘카미유 클로델’(1988)에 인상적인 대사가 나온다. 돌을 쪼아 사람을 조각하고 있는 카미유에게 한 소년이 이렇게 물었다.

“하얀색 큰 돌덩이 안에 사람들이 들어 있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 대학 졸업을 앞두고 본 영화였는데, 이 대사는 몇 십년간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예술가들의 상상력의 근원은 뭘까 하는 질문도 계속되었다.

뒤늦은 깨달음이 있었다. 작가와 감독, 예술가들은 ‘상상력’으로 이미 와있는 ‘미래’와 접신하는 그런 존재였다. 물방울에서 우주를 상상하고, 기술의 진보는 인간을 어디로 안내할 것인가를 남보다 묻는 사람들이었다.

하물며 국가의 미래를 이끌 지도자들도 ‘발칙한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 남보다 ‘미리 와 있는 미래’를 느껴야 한다. 지도자들은 ‘돌덩이 안에 숨어있는 꿈을 현실의 조각으로 빚어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미래를 상상하고 만들어내는 예술가들이다. 어쩌면 예술가와 지도자는 동격일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