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28] 딸의 웨딩드레스 투어

오은주 기자
  • 입력 2019.11.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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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웨딩드레스 투어? 이게 무슨 말이야? 딸의 결혼식 날짜가 결정되자 여러 가지로 바빠진 민자씨에게 난데없는 단어가 들려왔다. 웨딩드레스 투어를 같이 하자는 것이다. 웨딩드레스를 차려 입고 여행을 가는 게 웨딩드레스 투어인가? 하는데 딸애의 설명인즉슨 이랬다.

“요즘엔 신부들이 자신의 분위기와 체형에 맞는 드레스를 선택하기 위해 웨딩드레스 샵(shop) 몇 군데에 가서 입어보고 1차로 자신의 분위기에 맞는 곳을 먼저 고르고 2차는 1차로 정한 그 샵에서 다시 디자인을 골라 몸에 맞게 수정해서 입어요.”

“그래? 와, 요즘 신부들은 좋겠다. 그런 환상적인 일도 해보고.”

민자씨의 말은 진심이었다. 35년 전에 치른 자신의 결혼식은 지방 소도시의 결혼식장에서 예식장에 구비되어 있는 남이 입었던 드레스 중에서 대충 맞는 걸로 입는 정도였지 않은가! 한편으론 뭔 그런 호사를 해, 요즘은 작은 결혼식도 많이 한다는데 소박한 게 좋지, 이러다가 그래 제가 여태껏 회사 다니면서 번 제 돈으로 한다는데 나둬야지, 멋있게 한번 원하는 대로 해보렴, 하는 마음으로 엇갈렸다.

“엄마 그거 신부 엄마한테 주어진 특권이야. 엄마하고 예비신랑, 친구 1명만 불렀거든.”

그래, 딸아 특권을 줘서 고맙다 하면서 민자씨는 주말 이틀 동안 소위 딸의 웨딩드레스 투어에 참여했다. 토요일에 2군데, 일요일에 2군데 이렇게 4군데를 가보고 결정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도착한 웨딩드레스 샵에서부터 벨형이니 머메이드형이니 하는 드레스 전문용어들이 오고 가는 가운데 민자씨는 겨우 알아듣는 체를 하면서 신부엄마의 위신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딸은 드레스룸으로 손을 흔들며 상기된 표정으로 들어가고 예비신랑과 딸의 친구, 민자씨가 관람객 겸 평가자가 돼서 무대 앞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딸을 기다리는 시간이 도래했다.

민자씨는 그 순간, 이 상황이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장면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드라마 장면에선 늘 신랑감이 너무 아름답게 변신한 신부를 보고 놀라지 않았던가! 민자씨도 잠시 후 웨딩드레스를 입고 딸이 등장했을 때 보일 사위의 반응이 자못 궁금했다.

드디어 커튼이 젖혀지고 무대 중앙에는 방금 청바지를 입고 들어갔던 딸이 길게 끌리는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등장했다. 민자씨가 아! 하는 감탄사를 흘리려는 순간 사위는 헉! 하더니 얼굴색이 다 변하도록 진심 놀라는 것 같았다.

원석이었던 보석을 가공해서 아름다운 반지나 목걸이로 변신한 모습을 볼 때의 감격이랄까, 그 보석이 지닌 내재적 아름다움의 절정을 보는 느낌이랄까?

민자씨는 이 웨딩드레스 투어의 숨겨진 목적은 저 장면이 아닐까, 영원히 잊지 못할 저 장면이 아닐까 하고 속으로 웃었다. 그러면서 민자씨는 저 예쁜 드레스를 입고 자기 곁을 떠나 저 헤벌쭉하니 좋아하는 신랑 곁으로 갈 딸이 서운하면서도 이 신풍속도가 주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저 겉멋이 든 젊은 여성들이 하는 낭비성 소비행태가 아니고, 스스로 돈을 벌면서 자기정체성과 취향이 뚜렷해진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결혼식을 준비하는 모습의 일환이라고 예쁘게 봐주기로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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