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30] 연탄(1)

오은주 기자
  • 입력 2019.12.02 21:48
  • 수정 2019.12.0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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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관호씨와 친구 5명은 한 해의 마지막 모임을 종로의 한 연탄구이 고깃집에서 갖기로 했다. 요즘 유행한다는 70년대 레트로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아닌가. 가스불과 달리 천천히 타오르며 적당한 불맛을 주는 연탄구이는 고기의 참맛을 주기에 맛으로도 찾을만했고, 연탄을 주연료로 사용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추억과 호감도 남달랐다.

친구들이 하나 둘, 떠들썩한 연탄구이 집으로 들어오는데 동식씨가 입구에서 머뭇거리는게 보였다. 처음에는 전화를 받나 했는데, 왠지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식당 안을 보기만 할 뿐 들어오질 않고 있었다. 관호씨가 나가서 동식씨를 보니 벌써 어디선가 전작이 있었는지 눈가가 불그레했다.

“다들 왔어. 안 들어오고 뭘 해. 1차로 한 잔 하고 와서 미안해서 그러냐?”

이렇게 말하면서 동식씨의 팔을 잡았지만 억지로 끌려오는 듯 발걸음이 무거웠다. 돼지고기 모둠과 돼지껍데기까지 노릇하게 구워지고 있는데도 동식씨는 여전히 젓가락을 대지 않았다. 친구들은 동식씨가 어디선가 단단히 1차를 하고 온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배 부르더라도 분위기 맞출 만큼은 먹어라”하면서 소주잔을 채워서 돌렸다. 그렇게 소주 한 잔을 마시던 동식씨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그러더니 빈 잔을 하나 달래서 소주를 한가득 따라서 식탁 가에 놓아두었다. 가끔 만나는 사이라 두루 별일이 없다는 걸 아는 친구들은 갑자기 무슨 불치병이라도 선고받은 줄 알았다. 동식씨의 입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나왔다.

“내 누이동생, 동선이를 위해서 음복주 한 잔씩 마셔 줄래?”

“너한테 누이동생이 있었어?”

“있었지, 나 때문에 죽은 누이동생이 있어. 난 이 연탄이 싫어. 한동안 안보이더니 요즘에 구이용으로 다시 각광을 받으면서 이런 식당 오게 되는데, 난 싫다.”

그동안 친구들도 몰랐던 동식씨 여동생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집안의 장남인 동식씨가 시골집을 떠나 도시의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집에서는 3살 아래로 그해 중학교에 입학한 여동생인 동자씨와 함께 방을 얻어 자취를 시켰다. 어리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동자씨가 오빠의 밥을 하고 도시락을 싸며 학교를 다녔다.

“지금도, 그게 가장 후회스러워. 왜 어린 여동생에게 부엌살림을 시켰는지. 그냥 힘 닿는 대로 서로 도와가며 자취를 했었다면 여동생이 훨씬 힘이 덜 들었을텐데……바보같이 남자 꼬라지라고 부엌에 드나들질 않아서 아궁이가 갈라져서 연탄가스가 새는 것도 몰랐으니 말이야. 여동생이랑 한 방에서 커튼을 쳐놓고 방을 나눠 썼거든. 동생이 죽던 그날 새벽에도 동생은 밤새 방이 따뜻해지라고 아궁이에서 연탄을 갈면서 이미 가스를 많이 마신 것 같아. 같은 방을 썼으니 나도 방바닥으로 스민 연탄가스를 좀 마시긴 했는데 덩치가 커서 영향이 적은데다가 커튼을 친 동생 쪽 방바닥에 더 많이 틈이 있었어. 시골집을 떠나올 때 이젠 장작으로 불을 안 때서 좋다고 깡충거리던 모습이 선한데 그리 허무하게 가버렸어…… 그 여동생이 살았으면 올해 환갑인데…… 아궁이는 볼 수도 없는 중앙난방 아파트에서 냄새 없는 전기레인지로 밥해 먹으며 사는 세상 누리며 살텐데……”

동식씨의 숨죽인 오열에 친구들은 가슴이 먹먹했다. 모두들 자고 나면 신문에 연탄가스 사망자 뉴스가 나오고, 동치미국물 마시고 살아났다는 일화를 들으며 살았던 세대들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친구의 죽은 누이를 위해서 맑은 소주 한 잔씩을 음복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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