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식의 인생 바라보기⑭] 시내버스 최후방 좌석 착석 인원수에 관한 대법원 판례

윤창식 칼럼니스트
  • 입력 2019.12.12 13:38
  • 수정 2020.01.2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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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식<br>- 수필가<br>-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br>​​​​​​​-<br>
▴윤창식
- 수필가
-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퇴근 시간, 서울특별시 어느 시내버스 안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예의 퇴근길 시내버스 안은 매우 붐볐다. 그때 머리가 반쯤 벗겨지고 귀밑머리가 희끗한 중년 남자(A씨, 당 53세)가 미아리고개에서 꾸부정한 자세로 허겁지겁 승차한다.

승객 A : (시내버스 안을 두리번거리며, 혼잣말로) 아~따, 징허게 춥네잉.

A씨는 시내버스 안을 살피다가 버스 뒤쪽으로 삐직삐직 파고들기 시작했다. A씨는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볼멘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드디어 맨 뒷좌석까지 당도하게 되었다. 맨 뒷좌석에는 모두 다섯 명이 착석하고 있었는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젊은이가 두 명, 40중반쯤 되어 보이는 아줌마 1명, 복덕방 중늙은이 냄새가 나는 남자가 1명 그리고 A씨와 같은 또래의 중년남자가 1명 앉아 있었던 것.

무언지 모르게 서로 내외하는 것 같은 5명의 엉덩이 사이사이는 비록 협소하나마, 노곤한 일용직 잡부 A씨의 눈으로는 자기 몸뚱아리 하나는 비집고 들어갈 간극으로 보였다.

A씨 : (겸연쩍은 듯 머리 쪽으로 손을 갖다 대면서) 쪼깐 앉읍시다요.

다섯 명의 승객은 하나 같이 뜨악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꾸가 없다. A씨는 이미 작심한 마당에 창피할 게 무어 있겠는가 하고는 그중 틈새가 약간 더 있어 보이는 중년여자와 중년남자 사이를 비집고 앉으려다 두 중년 남녀가 동시에 엉덩이에 힘을 주는 바람에 A씨가 비틀하면서 그만 중년여자 무릎에 앉고 말았다. 급기야 두 사람은 시비가 붙었고 서로 드잡이까지 하다가 결국 사법적 판단에 맡기자는 쪽으로 발전하여 두 사람은 대법원 최종 판단을 기다리게 되었다.

A씨가 피고인석에 섰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내린 판결문 요지는 다음과 같다.

“무릇 모든 법은 상식을 토대로 이루어진 상부구조의 한 요소이다. 따라서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거나 혹은 계량적으로 따질 수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상황논리를 준용하게 된다. 일반 시내버스의 최후방 좌석은 그 구조상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인 몇 명의 승객이 착석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그때그때 착석하는 승객의 수는 천차만별일 수 있다. 세상이 모두 국민약골 개그맨 이모씨 같은 이들만 있다면 최후방 좌석은 10명도 넘게 앉을 수 있으나, 예전에 한 등치 했던 백모 여인 같은 사람은 1명 앉기도 불편하다.

또한 취학 전 아이를 두서넛 데리고 뒷좌석을 점유한 엄마가 갓난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고 그 갓난아이의 누나나 형쯤 되는 아이들이 천연덕스럽게 아이스크림을 빨고 있다면 그 자리는 그들의 차지로 봐야 한다. 만약 그 사이를 비집고 앉으려는 자가 있다면, 상식을 파괴하는 자이며, 따라서 그 행위는 범죄가 될 수 있다.

본 건의 피고 A가 그날 처한 상황이 본 건의 핵심적 판단 요소인 바, 그날은 날씨가 영하 10도를 밑도는 혹한이었고 퇴근시간이었으므로 A의 심신은 극도로 피곤한 상태였음을 감안할 때, A가 눈에 띄는 자리를 찾지 못하고 시내버스 안에서 30여 미터 후진하여 자리를 물색하다가 최후방 좌석의 ‘유도리’를 생각하는 한편, 동시대를 살아가는 중년들이 자신과 동일한 고달픔을 공유하고 있을 거라는 동류의식에 편승하여 엉덩이들 사이의 비좁은 공간을 잠시 이용하려 했을 뿐, 기히 착석한 두 중년남녀의 신체 접촉의 은밀성을 방해하거나 혹은 이미 달구어진 좌석의 온기를 침탐할 목적으로 한 행위로 볼 수 없으므로 A는 무죄다.

(만약 이러한 행위가 한여름 중복더위 때 이루어졌다면, 당연히 유죄가 될 수 있다는 소수 의견이 있었다. 따라서 시내버스 최후방 좌석 착석 인원수는 모든 승객이 성인인 경우 “하오동육”(夏五冬六 여름엔 5명 겨울엔 6명)이 적절하다고 유권해석을 내린다. 이상!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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