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우리 주변의 노인단체들 명칭이 ‘○○노인협회’에서 ‘○○시니어협회’로 바뀌고 있다. 노인이라는 단어 대신에 시니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노인복지를 전공한 필자도 이미 10여 년 전부터 노인이 아닌 시니어로 명명된 연구소에서 활동하다 보니, 사뭇 반가운 마음이다. 당시 필자가 노인이 아닌 시니어로 명명한 것은 나름의 고민에서 나온 선택이었다. 노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이미지와 편견들, 그 스티그마에서 벗어나려는 뜻이었다.
사실 십 수 년 전만 해도 노인복지영역에서 인식하는 노인은 보호의 대상이었다. 노인 집단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수동적 객체로서였다. 이때는 노인 당사자들도 ‘이 나이에 무엇을 하리...’하면서 자신들에 대해 무력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노인은 물론 비노인들까지도 이제는 서로 서로 바라보고, 인식하는 부분에 상당한 변화가 있다. 무엇보다 노인들 스스로 ‘노인’이라는 단어를 통해 자신들에게 부여되는 스티그마와 편견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또한 노인들은 스스로가 먼저 자신들을 위한 적극적 주체여야 함을 자각하고 있다. 물론 노인 당사자들은 자신감도 형성해가고 있다. 긍정적인 인식이자, 바람직한 인식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연령이나 노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이 비교적 아주 짧은 시간 내에 달라진 시기도 없으리라 생각된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가요 또한 그런 시세에 부합한 듯이 오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 정책적으로 60대 이상의 일자리를 확대한 것도 장수시대의 기반을 위한 정착의 노력으로 보인다. 물론 비정규직의 한시적 일자리라고 하지만 말이다.
실제 60대 이상 인구의 일자리 확장은 노인 당사자의 니즈(needs)가 정책에 반영되어 나타난 변화의 결과이다. 이렇게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시니어 시프트(senior shift, 시니어가 이끄는 사회변화)에 따른 실행과 방향설정은 너무 중요하다.
더구나 베이비부머 세대의 시니어는 과거의 노인들과는 다르다. 일본의 단카이세대 시니어처럼 이들은 전혀 다른 사회적 주체로서 나타나고 있다. 사회, 문화, 경제, 심지어 정치를 전방위적으로 소비하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많은 시간, 지식, 경제력, 네트워크, 건강 등의 자원을 가지고, 온오프라인 전체에서 거대집단으로 파워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아직 시니어 개개인의 역량이 고르지 않은 측면은 있지만, 그 영향력의 증대는 필연으로 전망된다. 그레이 파워(Gray power)란 이름뿐인 실재가 이제 시니어 시프트의 헤게모니(Hegemony, 주도권)를 갖는다.
실제 일본의 경우 게이오 백화점에 50대 이상의 고객 매출은 전체 70%를 차지한다고 한다. 달리 해석하자면 시니어 즉, 중고령자 고객의 기호에 따른 의식주 전체 영역이 백화점 전략의 중심이 되며, 시니어를 향한 서비스의 내용과 형식 변화가 중요하게 고려된다.
아울러 시니어 시프트는 단지 경제적 구매력의 결과가 아니다. 과거 오프라인에서의 모습으로만 한정된 시니어는, 당연히 온라인상 변화된 영향력에도 이용자로서의 파워를 행사할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인 의식주 니즈(needs) 이외에 의료나 법률, 경영 등의 전문적 서비스에서 스포츠, 레저, 문화, 예술 분야에서는 새로운 고객층에 대한 서비스 재편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필두로 한 유니버설 사회시스템이 온오프라인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될 것이다.
정리하면 지금같이 연령차별주의와 루키즘(Lookism, 외모지상주의)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는 시기에 정치, 경제, 시회, 문화 전반에 더 촘촘한 장치가 시스템되기를 바란다.
헤게모니를 가진 시니어란 존재의 생소함은 잠깐일 것이다. 오히려 시니어로부터 시작하는 유니버설 시스템은 향후 모두를 위한 사회시스템이 될 것이다. 늙어가는 사회가 거치는 필연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도 시니어는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