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채운의 스카이가든 4] 산토닌캐러멜
[권채운의 스카이가든 4] 산토닌캐러멜
  • 권채운 작가
  • 승인 2019.12.1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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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채운<br>2001년 제4회 '창작과비평' 신인소설상 당선 <br>​​​​​​​소설집 [겨울 선인장] [바람이 분다]
권채운
2001년 제4회 '창작과비평' 신인소설상 당선
소설집 [겨울 선인장] [바람이 분다]

 “눈 부셔요? 그만 들어갈래요?”

“아녀, 기냥 조금 더 있자.”

꽃샘바람이 사나웠지만 햇살은 화사 했다.

“좀 앉을래요?”

“아녀, 서 있을 만혀.”

삼촌은 중심을 잡지 못해서 거반 내게 기대어 서있으면서도 앉으려 들지를 않았다.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삼촌을 부축했다. 예전 같으면 삼촌의 등 뒤에서 와락 껴안고도 부족해서 삼촌의 등에 얼굴을 부비며 어리광을 부렸을 터였다. 어쩌다가 삼촌과 이리도 서먹해졌는지 모르겠다.

“그만 들어가요. 나는 추워요.”

“추워? 그럼 들어가자.”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는데도 삼촌은 내처 바깥에 있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휴게실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삼촌은 밭은기침을 했다. 기침소리에 내 가슴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봄볕 가득한 휴게실은 아늑했다.

“감기 든다구 니 숙모는 도통 바깥바람을 쐬주지 않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진디……”

“아유 엄살은, 암에 걸리면 다 죽는 줄 아나보지? 조기 발견 했겠다, 수술 잘 됐겠다, 이제 섭생만 잘하면 백 살까지도 끄떡없다고요. 괜히 엄살 부리지 말아요. 그런다고 누가 봐 줄까봐?”

“니가 봐 주잖여. 생전 삼촌을 보러 오두 않더만 죽을 병 걸렸다니께 한걸음에 달려 왔잖여.”

“체, 그거야 뭐 나도 애들하고 살다 보니 그런 거지. 늘 삼촌을 보고 싶어 했다고요. 그러는 삼촌은 한번이라도 우리 집에 왔우?”

“글씨 말여. 뭐 한다구 바뻐서 우리 미숙이네 집에두 한번 못 갔나 몰러.”

“삼촌, 이렇게 해바라기를 하고 앉아 있으니까 어렸을 적 생각난다.”

나는 어느 결에 말을 놓고 있었다.

“뭔 생각? 나는 어렸을 적 생각이 하나도 안 나. 동창들하구 어울려서 어릴 적 얘기가 쏟아져 나와두 멀뚱하니 듣고만 있다니께. 그 때 정말 그랬었나 싶기두 하구.”

“내가 여섯 살 때였을 거야. 나도 다른 생각은 안 나는데, 이렇게 햇살이 곱고 개나리꽃이 필 무렵이면 온 세상이 노랗던 그 때 생각이 나. 어렴풋이 눈을 뜨면 창호지문도 노랗고, 삼촌 얼굴도 노랗고, 하늘도 노랗고, 마당도 노랗고. 세상이 참 예쁘구나 했던 것 같아. 삼촌이 학교에서 받아온 캐러멜 구충제를 삼촌은 한 개도 안 먹고 몽땅 나를 먹여서 내가 사흘이나 늘어져 있었다며?”

“그랬지. 내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던 봄이었어. 하루해가 그 때처럼 긴 적이 없었다. 근디 말여, 나두 두 개나 먹었걸랑. 워치케 된 일인지 나는 한 개두 안 먹구 너만 멕인걸루 둔갑이 되어서는 애가 죽게 생겼는디두 어른들은 나를 야단 한번 안 치더라. 너를 윗목에 밀쳐놓고 혀만 차더라니께. 차라리 내가 너 대신 죽어뻔졌으믄 싶었더랬지.”

“뭐야, 이제까지 속았잖아? 에이, 난 또 삼촌이 자기는 한 개도 안 먹고 내게 몽땅 준 줄 알았잖아. 어른들이 두고두고 그 얘기를 할 때마다 삼촌이 나를 정말 위해 주는구나 하고 얼마나 흐뭇했었는지 알아? 에이 억울해.”

“억울할 거 읎어. 내 몫을 챙길 때는 언제나 니 몫도 챙겼으니께.”

“그게 그렇게 되나? 그 때 내가 죽었으면 삼촌은 평생 괴로웠을 걸”

“어유, 요것은 머리가 희끗희끗한대도 맨날 그 타령이여. 맛있으니 삼촌두 한 개 먹어보라는 소리 않고 납죽납죽 받아먹은 얌통머리가 누군디 이러능겨?”

티격태격 하다 보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삼촌의 얼굴에 홍조가 돌았다. 양지바른 담장 밑에 머리를 맞대고 쪼그리고 앉아 캐러멜 껍질을 까서 내 입에 쏘옥 넣어 주던 삼촌의 까까머리가 손에 잡힐 듯하다.

“삼촌은 그때 코 찔찔이였는데, 늘 소맷부리가 번들번들 했었잖아”.

“어쭈, 사돈 남 말하시는구먼. 지는 어땠는지 다 까먹은겨? 툭하면 삐- 하구 싸이렝 울리구서는. 춥다구 삐-, 무섭다구 삐-, 오줌 마렵다구 삐-, 지 맘대로 안 되면 그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니가 싸이렝을 울리면 내 가슴이 철렁했다구. 내 병두 그 때부터 시작 됐을 겨”

“뭐야, 어디다가 덤터기를 씌워?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은 게 누군데?”

“그러게 말여……”

삼촌은 내 어깨 너머로 눈길을 돌렸다. 삼촌의 눈길은 시공을 넘어 가기라도 할 듯 아득한 곳을 향했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젖혀둔 채 하찮은 이야기로 툭탁거린 건 삼촌도 나도 아무런 할 말을 갖지 못한 때문인지도 몰랐다.

“여기 나와 있었어?”

웬 초로의 남자가 삼촌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왔어? 내 조카 알지? 미숙이.”

“미숙이? 아, 산토닌? 와, 몰라보겠다. 할머니가 다 됐네.”

“할머닌데 뭘. 지난달에 손자 봤댜. 너, 모르겄어? 옆집 살던 진섭이”

“아, 진섭이 오빠. 안녕하세요? 그러고 보니 어릴 적 모습이 보이네요. 그런데 산토닌이라니요? 마침 그 얘기 하고 있던 참인데……”

“별명이지 뭐. 이름보다 별명으로 통하던 시절이었으니까. 네 삼촌처럼 제 조카를 유별나게 예뻐한 사람이 있었냐? 주전부리라고는 누룽지가 유일한 시절이었는데, 선생님이 산토닌캐러멜을 나눠 주시면서 반은 이 자리에서 먹고 반은 내일 아침에 먹으라고 해서 모두 그 자리에서 캐러멜 갑을 뜯었지 뭐냐. 그런데 그 사건이 났던 거잖아. 어떻게 그 맛있는 걸 안 먹고 몽땅 제 조카 입에 털어 넣었는지 모르겠어. 지금도 그렇게 조카라면 벌벌 떠냐?”

“벌벌 떨긴 누가 벌벌 떨었다구 그려. 예나 지금이나 허풍은”

“허풍이라니, 네 조카 중학교에 보내려고 네 녀석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잖아”

“에끼 이 사람, 왜 쓸데없는 얘기를 새삼스레 늘어 놔.“

“아이구, 이제 살아 났나보네 역정 내시는 걸 보니. 미숙아, 네 삼촌 같은 사람 없다. 잘해 드려.”

왜 이 모든 걸 잊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애써 외면하고 살아왔을 거였다. 더 솔직하자면 가난한 삼촌이 내게 짐이 되지나 않을까하여 남보다도 더 멀리 거리를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삼촌은 이따금씩 내게 안부전화를 했다. 재미나게 사는지, 몸은 건강한지, 자식들은 잘 크는지, 어려운 일은 없는지…… 힘겨운 투병생활이 시작 되었는데도 저리 담담할 수 있는 것은 삼촌이 열심히 살아낸 세월 덕분일 것이다. 언제나 든든했던 삼촌의 사랑이 부모 없이 자랐던 나를 당당하게 살게 했는지도 모른다.

“요즘도 산토닌캐러멜 있나? 내가 한 보따리 사다 줄까?”

“얘가 시방 누굴 죽이려고 이려?”

삼촌이 눈을 흘기며 웃자 우리도 따라 웃었다. 휴게실 창가에 놓인 노란 수선화도 함빡 웃음을 머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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