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32] 너무 친절한 경식씨

오은주 기자
  • 입력 2019.12.2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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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이 얼마나 기다리던 부부 해외여행이던가! 윤자씨는 중학교 선생님으로 은퇴한 남편 경식씨와 패키지로 중국의 상해, 항주, 소주를 여행하기로 했다. 남편의 친구 부부 4쌍이 같이 가니까 총 8명이었다. 앞으로 해외여행을 자주 하자며 팀웍이 어떤지 시험 삼아 가까운 중국여행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전업주부로 살아온 윤자씨는 마침 하나뿐인 아들이 작년에 결혼을 한 터라 ‘연금남’인 남편과 오붓하게 중노년을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기고 있었다. 게다가 경식씨는 성격이 꽤나 다감하고 세심해서 퇴직 전에도 쓰레기 분리수거나 청소 등의 집안일도 잘 도와주었던 편이라 중노년의 동반자로선 후한 점수를 받을 만 했다.

윤자씨는 완공 후에 처음 와보는 인천공항 제2터미널이 넓기도 하고 최신시설을 갖춘 멋진 장소라 이 나라 국민인 게 으쓱할 정도였다. 모 여행사 깃발 아래 모인 이번 패키지 인원은 총 20명이었다. 3박4일을 같이 보낼 사람들이라 차림새나 분위기에 자연 관심이 갔다. 다른 사람들은 다 가족이었는데 50대로 보이는 여자 4명은 친구들끼리 온 것 같았다. 윤자씨는 10살 정도 아래로 보이는 그 여자들이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무척 젊어 보이는데 놀랐다. 여자들끼리 와서 들떠선지 행동도 더 자유로워 보였다.

게다가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여자들을 내내 유심히 보던 남편 경식씨가 다가가더니 “짐가방 잘 부치셨습니까?”하고 물어보질 않나, “여행 많이 다니셨나봐요”라며 자못 관심을 보이는 게 아닌가!

아주 도와주질 못해 안달이 난 사람 같았다. 아니 다른 친구들은 다 가만히 부인 옆에 있는데 왜 혼자 그 여자들한테 관심인지 친절인지를 베푸는가 말이다. 중년부인 4명이면 오죽이나 잘 알아서 수속하고 면세점을 활보할까 말이다. 윤자씨는 저 여자들 다 알아서 할 거니까 쓸데없이 나서지 말라고 경식씨에게 일침을 놓았다.

옆에 서 있던 친구가 빙그레 웃으며 “경식이가 원래 페미니스트라 여성들을 잘 도와줘요.”라고 말하질 않나, 그 부인은 “어머나 최경식샘 이제 보니 무척 친절남이시네요.”하고 웃지를 않나, 공항에 도착할 때의 기분과는 전혀 반대로 흘러갔다.

윤자씨는 남편이 원래 바람기가 있었던가를 곰곰 되짚어가며 생각해봐도 딱히 기억이 나는 사건이 없었다. 근데 왜 여자 4인방에게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지 모를 일이었다.

몇 시간 후 항주에 도착해서 서호에서 뱃놀이를 할 때는 친절한 경식씨의 친절함이 더욱 빛을 발했다. 중국의 10대 절경이라는 서호답게 용의 머리를 가진 2층 유람선에는 사람이 넘쳐났다. 그 와중에 경식씨는 여자 4인방의 사진을 아주 도맡아 찍어주고 있었다. 남들은 부부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데 저게 무슨 행태냐, 싶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날 밤 호텔에 돌아와 윤자씨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드디어 당신 제정신이냐, +왜 그 여자들 따라 다니며 수발을 못 들어서 안달이냐 하고 내뱉았다. 경식씨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

“오, 우리 마누라 윤자씨! 살아 있네! 질투심이 살아 있네! 당신 한번 자극하려고 좀 오버해본 거야. 예측대로 싫었나 보네. 당신 마음 알았으니까 내일부턴 다시 돌부처남으로 돌아갈게.”

윤자씨는 남자가 나이 들면 애가 된다더니, 퇴직 후 이제 삶의 여유를 찾아서 이런엉뚱한 일을 벌이는 가, 생각하며 어이없는 실소를 했다. 게다가 질투심을 자극해서 확인하고 얻을게 뭐가 있냐고 물어볼 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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