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⑥] 국악의 새 지평을 만나다, 음악극 '적로'

천건희 기자
  • 입력 2019.12.27 19:10
  • 수정 2020.07.2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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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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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마음이 바쁜 연말에 마음에 여유를 주는 공연을 만났다. 국악의 감동을 재발견 하게 된 의미 있는 음악극 <적로> 공연을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12월 26일 관람했다. 음악극 <적로>를 통해 국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창작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창덕궁과 종묘 사이에 위치한 서울돈화문국악당은 2016년 개관한 국악 전문 공연장인데 서울 한복판에 이처럼 한옥 형태의 공연장이 생겨서 기쁘다.

공연장 로비에는 대청마루 형태의 좌식 공간이 있고 이곳에서 내다보는 창밖 풍경은 풍류 그 자체였다.

국악 창작 음악극(뮤지컬) 티켓이 전석 2만원이고, 내용이 알찬 프로그램북을 덤으로 주니 공연을 보기 전부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사진=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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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극 <적로>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금 명인 박종기와 김계선, 두 실존 인물의 치열했던 예술세계와 천재 기생 산월이의 만남과 이별을 그린 작품으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제목 ‘적로’는 방울져 떨어지는 이슬(滴露), 악기를 통해 흘러나온 입김에 의한 물방울(笛露), 예술가의 혼이 서린 악기 끝의 핏방울(赤露) 등의 다의성을 갖고 있다.

무대는 산월이가 이제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해가는 젓대(대금) 명인 박종기와 김계선을 초청해 삶과 예술을 논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어떤 내면의 움직임에 의해 ‘한 소리’를 찾아 평생을 떠돈 두 명인과 기생은 필멸(必滅)의 소리로 불멸(不滅)의 예술을 꿈꾼다.

사진=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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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는 연기자가 있고, 무대 뒤 발(簾)을 사이에 두고 연주진은 대금, 아쟁, 타악 등 국악기와 클리리넷, 건반의 한양합주(韓洋合奏)로 연주했다.

박종기와 김계선이 주고받는 판소리에는 웃음 짓게 만드는 해학과 위트가 있고, 산월이가 부르는 청아한 정가(正歌) 소리는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국악 무대이면서도 스윙재즈풍의 음악으로 흥을 돋우어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연주의 압권은 씨름 배틀(Battle)에 맞추어 대금 배틀이 벌어지는 장면이다. 발(簾) 뒤에서 연주하던 대금 연주자 둘이 무대에 나와 씨름을 하는 연기자와 함께 대금 연주를 경쟁적으로 연주했다. 최고의 경지, 예술혼 그 자체였다.

속이 텅 비어 있고 구멍이 뚫려서, 부는 이의 들숨과 날숨이 교차하며 소리를 내는 악기인 대금이 이렇게 감동을 주는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대금 연주자로 참여한 박명규가 박종기 명인의 고손자라니 더욱 큰 의미로 다가왔다.

사진= 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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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되고 품격 있는 음악극 <적로>는 배삼식 작가와 최우정 작곡가, 정영두 연출가의 작품으로 2017년에 초연되었고, 2018년에 이어 올해로 지난 3년간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다고 한다. 나는 운이 좋게도 공연 종료 3일을 남겨놓고 관람했지만. 이 공연이 내년에 이어 계속 이어지기를 소망해본다.

이슬방울(滴露)의 주제음악과 함께 실존 인물인 대금 명인 김계선이 남겼다는 말이 집으로 향하는 내내 귓전에 맴돌았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악기의 속이 비어 있듯,

사람도 비워야 남을 감동시킬 수 있다.”

예술가의 뜨겁고도 고독한 삶에 경의를 표하며, 예술의 수혜자로 감사한 마음이 더욱 느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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