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방병선 한국미술사학회 신임회장 “창립 60주년인 2020년, 미술사학 연구에 축이 되는 학회되겠다”

김경 기자
  • 입력 2020.01.01 23:13
  • 수정 2021.06.0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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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김경 기자】 지난 12월 7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한국미술사학회 총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도자사학(陶瓷史學)의 권위자인 방병선 고려대 교수가 신임 회장으로 선출됐다. 축하 인사도 드리고 미술사에 대한 고견도 듣고자, 지난 12월 21일 오후에 방병선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방학 중인데도 교정에는 백팩을 멘 학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역시 지성의 전당은 달랐다. 찬바람 속에서도 든든한 청년들의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방병선 교수는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기계설계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나서 학문의 길을 바꾸었다. 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다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3년부터 간송미술관 관장인 최완수 선생에게 사상사와 미술사를 사사하면서 이른바 간송학파의 일원이 되었다. 2000년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현재까지 한국미술사, 동양미술사, 도자사 등을 가르치고, <조선후기백자연구>, <순백으로 빚어낸 조선의 마음, 백자>, <중국도자사연구>, <도자기로 보는 조선왕실문화> 등 10여 권의 권위 있는 저서를 출간한 중진학자이다. 현재 서울시와 세종시, 충청남도의 문화재위원이면서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을 겸하고 있다. 2020년 1월부터 한국미술사학회 회장을 맡아 수행한다.

사진= 김경 기자
사진= 김경 기자

Q. 한국미술사학회 회장에 당선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우선 한국미술사학회에 대한 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A. 한국미술사학회는 1960년 전형필, 진홍섭, 황수영, 김원룡, 최순우 선생 등이 모여 결성한 고고미술동인회가 모태인 단체입니다. 그 모임이 1968년 한국미술사학회로 이름을 바꾸었고, 현재까지 한국미술사를 연구하고 발표하는 대표적인 학회지요. 지금은 한국미술뿐 아니라 중국, 일본, 인도, 동남아 미술은 물론 동서미술교류까지 연구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일반회원 700여 명과 국내외 정회원 220여 명을 보유한 학술단체로 성장했습니다.

 

Q. 요즘 한국사회에서 미술사에 대한 이해 정도가 무척 높긴 하지만, 선생님께서 직접 미술사란 무엇인지 간략하게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A. 미술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이렇습니다. 회화, 조각, 공예, 건축 등 미술 작품 가운데 편년이나 작품성에서 사료적 가치를 지닌 시각 자료를 대상으로 그 형식과 양식을 분석하거나 문헌을 해석하는 작업입니다. 유럽에서는 17세기 이후 다양한 미술작품의 분류와 정리를 통해 르네상스와 바로크라는 시기별 연구, 그리고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지역별 특성을 연구하면서 심화되었습니다. 그리고 19세기 이후로는 미술사 양식분석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정치, 경제, 사회, 심리, 보존과학 등과 연계된 다양한 연구방법론이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지의 학자를 중심으로 제창되었습니다. 현재는 전 세계의 대학에 관련 학과가 설치되고 있고, 최근에는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미술작품뿐 아니라 작품 활동에 관련된 모든 행위, 예컨대 미술품 거래와 수장, 미술품 보존과 복원, 전시 기획과 발굴, 그리고 VR, AR, AI 등 첨단과학기술을 응용한 연구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Q. 그렇다면 미술사가 한국에 소개된 시기는 언제쯤인가요?

A. 다른 인문학에 비해 늦은 편이기는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고적조사와 발굴을 실시하고, 고유섭 선생께서 고려청자와 석탑 등 한국문화재에 관한 평론과 현상을 소개한 것이 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뒤로 문화재 전반에 대한 연구와 애호는 이어졌지만, 대학에서 정식 학과 체제를 갖추지는 못했지요. 1970년대 이후에 소위 개성 3인방이라는 김원룡, 진홍섭, 황수영 선생 등이 역사학과나 고고인류학과에서 미술사를 가르쳐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1983년에 서울대에 고고미술사학과가 설립된 후에 동국대, 홍익대, 이화여대 대학원 등에 미술사학과가 설치되었지요. 최근에는 학부 과정에서도 미술사학과, 문화유산학과, 문화재학과 등 다양한 이름의 학과들이 창설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미술과 서양미술, 회화, 조각, 공예, 건축 등 연구의 대상지역과 장르에 따라 연구영역을 구분하는 데 반하여, 영미 국가들은 연구의 대상지역과 시기에 따라 연구영역을 구분하는 차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Q. 대학에 그처럼 미술사학과들이 많이 생겼다면, 학생들의 졸업 후 진로는 대체로 어떻게 되나요?

A. 인디아나 존스가 고고학자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라면 박물관과 미술관의 큐레이터는 대부분 미술사학과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꿈꾸는 직업입니다. 실제로 국공립 및 사립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큐레이터는 석사 과정 이상의 학력을 갖추면 응시가 가능합니다. 최근 증가 추세에 있는 문화재청이나 지자체의 문화 관련 부서 학예직 공무원도 미술사학 전공자가 도전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박사 학위 이상의 경력을 지닌 경우에는 대학의 교수나 연구원, 국책기관 연구위원으로도 진출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미술사를 기반으로 하여 다양한 문화기획가가 되거나 사업가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언론, 출판, 문화콘텐츠, 영화, 연극, 무대연출가 등으로 그 폭이 상당히 넓어지고 있습니다.

 

Q. 신임 한국미술사학회장으로서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를 듣고 싶습니다.

A. 2020년은 한국미술사학회 창립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와 관련한 행사를 기획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각 장르별 원로와의 대화를 3회에 걸쳐 추진할 계획입니다. 80대에 접어든 원로 선생님들을 모시고 학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에 대한 조언을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하고자 합니다. 미술사는 학문의 특성상 문화재 감정, 복원, 관리, 활용 등과 밀접한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회원 중 상당수가 문화재청 관련 문화재위원이나 전문위원, 학예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화재청과 함께 문화재 전반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 심포지엄을 열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문화재청장과 학회 회원들 간의 격의 없는 토론의 장을 열어볼까 합니다. 최근 한국미술사학회는 학술 부문 외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지만, 창립 초기는 물론이고 최순우, 황수영, 진홍섭 선생님 등을 비롯한 역대 회장단은 경주 고속철, 세계문화유산지정, 울산 반구대 보호 등의 이슈에서 목소리를 냈습니다. 국보와 보물의 지정 및 활용, 문화재보호법, 문화재의 보존, 관리, 활용 등의 문제점과 새로운 대안 제시 등의 이슈에 대해 문화재청과 함께 방안을 모색할 겁니다. 또한 서울뿐 아니라 지역에서도 학술대회를 열겠습니다. 대부분의 미술사학과가 서울에 위치한 탓에 그간 지역에서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일이 드물었지요. 2020년에는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학술대회와 답사를 1박2일 정도 겸하여 추진하려는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이전에 제가 학회의 임원으로 있으면서 서양미술사학회와의 합동학술대회를 추진한 바 있는데, 그것을 넓혀 4개 미술사학회 합동으로 21세기 미술사 연구방법론에 관한 심포지엄을 열려고 합니다. 추후에는 전국미술사학대회로 발전시킬 수도 있지요. 아울러 2021년에는 세계미술사학대회를 국내에 유치하여 세계 미술사학 연구의 당당한 한 축이 되고자 합니다.

 

Q. 그 정도의 사업을 벌이자면 많은 예산이 필요할 텐데요?

A. 현재까지 학회 재정은 회원들의 회비와 기부금, 한국연구재단의 지원 등으로 충당해왔습니다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우선 재정 확대를 위해 회원 수를 늘일 계획입니다. 지금까지 정회원의 자격은 박사학위 소지자이면서 학회에서 발표하는 사람에 한했는데,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 관련기관에서 일정기간 근무한 사람에게도 정회원 자격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정관 개정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또한 그간 한국미술사학회에 많은 애정과 지원을 아끼지 않은 박물관장이나 미술관장 이외에 한국미술을 사랑하는 다양한 소장가와 애호가를 직접 찾아뵙고 적극적인 후원을 요청할 계획입니다. 학회 이름으로 여러 가지 문화재 관련 용역 사업 수주를 해서 그 가운데 일부를 학회 기부금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있겠습니다.

 

Q. 미술사를 전공하면 요즘에는 다양한 진출로가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미술사 연구 방법은 요즘 어떤 추이를 보이고 있습니까?

A. 1980년대 이후 미술사학은 기존의 작품 분석 이외에 작가나 제작기술, 미술과 경제, 미술과 정치, 미술과 사상 등으로 연구의 영역을 넓혀왔습니다. 미술작품 해석에서 민족주의와 계급주의에 관한 연구와 논의도 활발해졌고, 한국미술의 대외교섭에서 중국이나 일본뿐 아니라 실크로드와 서역, 그리스, 로마 등으로 대상 지역이 확대되기도 했습니다. 작품의 진위 판별을 위한 성분 분석이나 DNA분석과 같은 과학적 방법에 심리분석과 이미지 프로세싱을 이용한 인지분석도 연구 대상으로 떠올랐습니다. 결국 고전적 미술사 연구방법이 보다 다양화되고 과학적으로 진화되었다고 볼 수 있지요.

 

Q. 상식을 묻는다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미술사학은 고고학과 어떤 점에서 차별성을 보인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A. 상식이 아니라 좋은 질문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고분을 발굴할 때에 고분의 구조와 출토물의 형식에 대해 분석하며, 고분이 만들어진 시기를 추정하고, 출토물 가운데 유기물이나 동물 및 인체의 뼈 따위를 분석한다면 이는 고고학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발굴 결과 빼어난 미적 가치가 있는 금관이나 불상 등이 나왔다면 그런 것을 연구하는 것은 미술사학의 영역이지요. 금관의 형식과 양식을 분석하고, 만드는 기법과 재질에 대해 연구하고, 중국이나 다른 국가에서 출토된 금관과 비교 분석하며, 제작 시기와 용도를 추정하고, 그 금관의 상징성과 정치경제적 의미를 탐구하는 등의 작업이 되겠지요. 또한 고고학이 다수의 출토품 분석과 분류, 발굴 방법 등을 대상으로 삼는다면 미술사는 작품성과 희소성, 기록성 등을 갖는 예술 작품을 대상으로 하게 됩니다. 반가사유상이나 비색청자, 석굴암이나 겸재의 금강산도 같은 작품도 고고학에서는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는 반면 미술사에서는 중요한 연구 대상입니다. 그러니까 고고학이 필드 작업을 중시한다면 미술사는 작품 자체와 작가 연구를 중시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Q. 현재 한국미술사학회의 최대 연구 이슈를 들자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유홍준 교수의 <문화유산답사기>라는 책이 서점가를 휩쓴 적이 있습니다. 전 국민에게 잊힌 한국문화재에 대한 재인식과 유적답사의 참맛을 지방 구석구석의 정담까지 곁들여 느끼게 한 베스트셀러였지요. 그 책은 미술사와 답사의 소중함을 불러일으켜 미술사 연구에 많은 보탬이 되었습니다. 그와 비슷한 1990년대와 2000년대 한국미술사학회의 최대 이슈는 고려청자의 발생 시기, 석굴암 본존불 존상, 반가사유상의 삼국시기 국적, 진경산수의 ‘진경’ 등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슈들은 학회가 주관하는 학술대회와 논문 발표를 통해 의견의 차이가 상당히 좁혀졌습니다. 2010년 이후에는 보다 폭 넓고 다양한 이슈들이 연구주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미술 작가의 젠더 문제, 신안선 출토 중국도자의 원산지와 양식, 조선후기 민화를 비롯한 채색화에 대한 재평가, 북한의 문화재, 월북 작가에 대한 재평가, 추가 발굴품을 중심으로 한 실크로드와 불교미술, 안료와 원료 분석을 통한 미술품 감정, 인도와 베트남 등 동남아 미술, 동서교류를 입증할 수 있는 문헌자료 발굴과 해석 등 연구 지역과 시기, 대상 등이 확장되어 명실상부하게 한국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미술사 연구를 한국미술사학회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Q. 한국의 미술사 연구는 아무래도 중국과 일본 등 이웃 나라의 미술사와 견주는 일이 중요하지 싶은데요. 이웃 나라의 학자들과 함께 토론하기도 하겠지요?

A. 한국미술사학회는 2003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두 차례 모두 임원으로 참여하여 행사를 주관했습니다. 2003년에는 이틀에 걸쳐 중국, 대만, 일본, 영국, 미국 등의 원로 학자와 신진 연구자들을 초청하여 최근의 연구 성과를 듣고 토의하는 형식으로 진행했습니다. 2007년에는 회화사를 중심으로 ‘동양 산수’라는 공통 주제를 가지고 발표와 토론을 벌였지요. 2021년에는 학회 창립 6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미와 한국미술’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국내외 학자들의 연구발표와 토론의 장이 될 겁니다. 많은 참여와 후원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자신의 저서 <순백으로 빚어낸 조선의 마음, 백자>를 선뜻 건네주셨다. 한국의 미술사에 관한 많은 이야기로 정신이 풍요롭기만 한데, 귀한 선물까지 안겨주시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연구실 밖으로 나오니 헐벗은 나무들이 찬바람 속에 서 있다.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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