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33] 종이신문

오은주 기자
  • 입력 2020.01.0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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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윤호씨는 이른 아침에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가져와 식탁 위에 놓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퇴직 전에는 대충 신문의 큰글씨만 훑어보고 출근하기 바빴지만 지금은 오전에 시간이 많아서 신문을 마음껏 다 읽을 수 있었다. 아주 할 일이 없는 처지는 아니고, 오전 11시쯤에는 집을 나간다. 친한 친구가 운영하는 국밥집에서 가장 손님이 많이 몰리는 점심시간에 카운터를 봐주고 있어 하루 일과가 나름 정해져 있는 편이다.

윤호씨에겐 부인이 아침밥을 차리는 동안 신문을 펼쳐 들고 읽는 그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아침의 이 평온이 언제까지나 계속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중학교 때 학비를 벌기 위해 이른 아침에 신문을 돌리던 소년이 바로 윤호씨였다. 그야말로 읍내 수준의 마을이라 신문을 구독하는 집이 많지는 않았지만, 학교에 가기 전 새벽에 분주히 신문배달을 하면 학비나 용돈이 되었기에 넉넉하지 않은 집안을 생각하면 멈출 수가 없었다.

한겨울 새벽과 비가 오는 날이 신문배달을 하기엔 가장 어려운 날인데, 비 오는 날은 일일이 집주인에게 신문을 들려주다가 나중엔 신문을 싸는 비닐이 지급돼서 좀 나아지긴 했다. 우산을 쓰면 신문을 옆구리에 낄 수 없기에 보급소에서 받은 얇은 비옷을 입고 신문을 돌려야 했는데, 비가 와서 미끄러운 길에서 넘어진 새벽에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 얼굴을 때리는 비와 섞였다. 살아가는 것의 고단함을 실컷 깨달은 그 시절은 윤호씨를 내내 삶의 엄중함을, 따뜻한 밥 한 그릇의 소중함을 깨닫는 사람으로 살게 했다.

윤호씨는 신문을 편안히 앉아서 볼 수 있는 지금의 시간이 너무 귀했고, 신문지를 쉽게 버리지 못했다. 한 달 정도는 신문지를 쌓아두었다가 정을 떼기가 어려운 친구를 떠나보내듯이 종이쓰레기 분리수거처로 가지고 갔다. 왠지 활자가 생명체인 것만 같아 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요즘 점점 종이신문을 구독하는 가정이 줄어드는 터라 괜스레 안타까웠다. 결혼한 아들과 딸도 필요한 뉴스나 정보는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보면 된다고 하며 다들 집에서는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새해라고 아침에 떡국을 같이 먹은 며느리가 신문을 찾았다. 신문구독은 물론이고 집전화도 놓지 않는 세대라 뭔가 꼭 종이 상태로 간직해야 할 기사거리가 있는가 싶었다.

“왜? 너 뭐 볼 기사거리가 있는 거냐?”

“아니요, 농사짓는 친척분이 보내준 배추랑 무가 집에 많은데, 그 야채들을 보관하는 데는 신문지가 제일 좋다네요. 냉장고보다는 신문지에 싸서 다용도실에 두는 게 풍미 변함없이 오래 보관이 된다고 해서요.”

아하, 그런 용도가 있어서 신문을 찾았구나 싶으면서 어린 시절 신문지 한 장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도배의 초배지로 쓰고, 서랍에 깔아서 벌레방지에도 쓰고, 쌀독 바닥에도 깔았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신문지를 봉투에 넣어주며 윤호씨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세대만이 느끼는 구식의 좋은 점에 대한 얘기인 것 같아서 참기로 했다.

“신문처럼 싼 지식의 종합 전달자가 어디 있겠냐? 그래도 종이 냄새 맡으며 인쇄된 활자를 읽는 게 더 오래 기억되지 않을까?”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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