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⑦] 모바일(Mobile) 책가도(冊架圖) 전시회를 가다

천건희 기자
  • 입력 2020.01.16 11:21
  • 수정 2020.07.2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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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미옥 작가 “중년,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 늦지 않은 나이”
독립서점 ‘자상한 시간’에서 1월 19일까지 열려

사진: 천건희 기자
사진: 천건희 기자

2020년을 시작하는 1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열정의 전시를 만났다.

지난 1월 12일 저녁, 서울대역 근처 주택가에 위치한 독립서점 <자상한 시간>에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도하는 모바일(Mobile) 책가도(冊架圖) 전시회에 다녀왔다.

호모 모빌리언스(Homo Mobilians)라 불리어지듯, 스마트폰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이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공간이며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있다. 책가도(冊架圖)는 18세기 후반 책장에 서책을 중심으로 문방구와 골동품, 화초, 기물 등을 빼곡히 그린 전통 민화 그림을 일컫는다. 최첨단 기기인 모바일(Mobile)로 책가도(冊架圖)를 그린 전시회라니 낯설기도 하고 궁금했다

전시장에는 <그림에 書다>의 회원들이 ‘책과 나’라는 주제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 그린 그림을 메틸이나 디아섹 액자에 담은 작품 40여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각각의 책가도(冊架圖) 작품마다 책이 놓인 다양한 공간과 독서 취향과 책에 얽힌 추억을 느낄 수 있었는데, 작품에 얽힌 에세이가 적혀 있어 그림일기를 보는 듯했다. 작품들은 서점 책장에 진열된 책과 책 사이에 배치하여 전시 제목인 ‘스며들다’와도 잘 어우러졌다.

사진: 천건희 기자
사진: 천건희 기자

전시에 참여한 <그림에 書다>의 회원들은 미술 전공자가 아닌, 대부분 중년 이상의 나이로, 스마트폰 그림작가인 홍미옥 작가의 재능기부로 스마트폰 그림 그리기를 배우고 전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홍미옥 작가는 본인도 스마트폰으로 세상 이야기를 그리는 중년 주부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중년은 아직 늦지 않았음을 그림을 통해 알리고 싶다고 했다.

이 모임 회원들은 2019년에는 ‘모바일로 기억하는 독립운동 100주년 동영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독립선언서를 단락별로 나누어, 단락을 맡아 릴레이식으로 태블릿PC나 스마트폰 위에 손글씨로 필사하고, 독립선언서 내용에 맞게 그림을 그려 넣은 작품들을 엮어 동영상을 제작했다고 한다. 서점 한 벽에는 그 때의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독립선언서 필사와 함께 안중근의사의 짧은 손가락이 그려진 작품도 있어 가슴이 뭉클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 그림을 그리면 당연히 물감도 캔버스도 이젤도 필요 없다. 그런데 수채화는 물론 유화, 펜화, 연필화, 수묵화의 표현까지 다 가능하다니 놀랍다.

모바일에 그림을 그리려면 스마트폰과 터치펜, 그림 그리기 애플리케이션이 필요한데, 프로그램이 없어도 메모판의 다양한 색상과 필기구로 간단한 메모와 그림은 그릴 수 있고, 터치펜이 없으면 손가락으로도 가능하니 참 편리한 세상이다. 이렇게 모바일에 하는 작품 활동은 재료비도 들지 않을 뿐 아니라 저장기능과 삭제 기능이 있으니 쉽게 도전해볼 수 있을 듯하다.

사진: 천건희 기자
사진: 천건희 기자

<자상한 시간>에서의 ‘모바일 책가도’ 전시는 1월 19일까지 이어진다. 이곳에서의 전시가 끝나면 강남 숲속 작은 도서관을 시작으로 부평의 부개도서관 등 전국의 다양한 장소에서 순회 전시할 예정이라니 기쁘다. 중년 이후의 삶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이런 모임들이 더 많이 생겨나기를 기대해본다.

독립서점인 <자상한 시간>의 책 분류는 독특하다. 함께 만들어 가는 자상한 시간, 나를 사랑하는 시간, 타인을 이해하는 시간,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시간, 한 눈 팔면 재밌는 시간, 이렇게 관심 분야를 시간으로 나누어서 책을 분류했다.

책 분류와 큐레이션(curation) 된 책들을 보니 책을 운영하는 젊은 부부의 가치와 철학이 보였다. 의미 있는 전시 관람과 향 좋은 드립커피와 읽고 싶은 책 구입을 동시에 할 수 있어 흐뭇했다.

주택가 한 가운데에 독서모임장소와 동네의 사랑방 역할까지 하고 있는 이런 독립서점이 있다는 것은, 책 안에서 희망을 꿈꾸고 그 꿈을 공유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책 안에서의 꿈을 응원하는 마음이 더해져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행복했다.

서점 벽에 적힌 ‘앙드레 지드’의 글이 눈에 들어와 가슴에 새겨진다.

“나는 한 권이 책을 책꽂이에서 뽑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을 꽂아 놓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조금 전의 내가 아니다“

사진: 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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