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34] 어쩌다, 대치동

오은주 기자
  • 입력 2020.01.22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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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아들과 며느리가 지난 주말에 집에 다녀간 이후, 지금까지 1주일간 최근식씨 부부는 깊다면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날은 집에 들어설 때부터 아들내외가 무슨 할 말이 있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집에서 불고기와 야채쌈으로 다함께 맛있게 저녁밥을 먹었다. 특히 초등학교 4학년인 손자는 한창 성장기라서 그런지 상추에 양념장까지 얹어서 불고기를 야무지게 먹어서 언제 이렇게 컸는가 싶어 흐뭇하기만 했다. 최근식씨 내외에게는 첫손주로 그 애가 준 삶의 경이와 잔재미는 사람들이 흔히 손주를 일컬어 ‘노년의 꽃’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게 해주었다. 설거지도 끝나고 과일을 먹는데 드디어 며느리가 입을 열었다.

“아버님 어머님, 저희가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자기들끼리 맞벌이를 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육아휴직 후 어렵사리 복직을 하고, 시간제 돌보미의 도움을 받으며 힘들게 아이를 키우고 있는 며느리라 장하게 생각하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그 며느리가 저렇게 어렵게 말머리를 떼는 일이 뭐가 있을까 싶어서 최근식씨 부부는 슬며시 긴장이 되기까지 했다.

“아버님 어머님, 대단히 죄송한 부탁입니다. 우리 민우가 새해에는 5학년으로 올라가서요. 이젠 교육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혹시 민우가 대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저희하고 집을 바꿔서 살아주실 수 있나 해서요. 공부는 어디서든 저 하기 나름이지만 제가 직장에 다니다보니 다른 엄마들처럼 학원으로 실어 나르고 그럴 수가 없어서요. 학원이 많은 이 동네 대치동이라면 민우 혼자 다닐 수가 있답니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제안이라 최근식씨는 일단 생각을 해보겠다고 대답했다. 아들네가 떠나고 소파에 앉아 새삼 자신의 젊은 시절과 집문제를 주욱 떠올려보았다.

최근식씨가 막 결혼을 했던 1980년대 초반에 새로 아파트를 지을 데라고는 강남밖에 없어서 당시로서는 목돈인 청약예금을 들고 다행히 한창 개발 중이던 강남 대치동 땅 위에 지은 아파트에 당첨이 되었다. 20년짜리 장기주택융자까지 얻어서 어렵사리 30평대 신축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다.

그러고서는 월급쟁이 살림에 아이들 둘을 교육시키느라 이사는 엄두도 못 내고, 이사할 궁리를 틀 재주도 없어서 현재까지 그냥 눌러앉아 살고 있었다. 그랬더니 아파트 주변으로 자꾸 학원이 들어서고 지하철이 생기고 하더니 어느새 낡은 아파트가 고가 아파트가 되어 있었다. 아들네도 좀 외곽이긴 해도 서울 지하철이 닿는 곳이라 최근식씨 부부가 살기에 그리 불편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파트촌도 동네라 오래 살아서 정든 곳을 떠나면 서운할 것도 같았다.

“어떻게 하지?”

아내도 이 ‘어떻게 하지’란 물음에 답을 얻지 못한 채 1주일간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아내야말로 수십 년간 전업주부로 한동네에서 학부모로, 친구로 지내온 이웃들과 떨어지는 게 힘들 것 같았다. 그러나 요즘에야 다들 휴대전화가 있으니 그깟 물리적 거리는 문제가 될게 없다 싶기도 했다. 직장맘이라서 자녀교육에 뭔가 빈구석이 있을까 전전긍긍하는 며느리와 아들, 손주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데 뭘 못할까 싶었다. 그러나 당돌한 제안이란 생각도 맴돌아서 아무래도 결정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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