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35] 낀세대-신중년의 명절 나기

오은주 기자
  • 입력 2020.02.0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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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지난 설날 며칠 전부터 정금자씨에게 장바구니 금단증상이 나타났다. 수십년간 지내던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된지 3년이 지났지만 제사준비 장보기가 아니고 가족들이 설날 먹을 음식만 조금 장만하면 된다는 게 영 실감이 나질 않아 뭐를 안 샀나 하고 장바구니를 자꾸 들여다보았다. 40년 가까운 결혼 생활 동안 늘 명절은 우스개소리처럼 ‘노동절’에 가까웠다. 결혼 이후 계속 지내온 시아버지의 제사는 3년 전부터 간단한 명절 차례로 대체되었다. 그 3년 전이라는 시점은 금자씨의 아들이 결혼을 한 바로 그 해이고, 치매를 앓게 된 시어머니가 요양병원에 들어가게 된 그 즈음이었다.

예전 같으면 아들의 결혼이란 며느리를 들이는 일이요, 여자들이 가사노동으로 치러야 할 집안 대소사를 함께 해나가는 절대적 조력자가 증원이 되는 셈법이었지만 요즘의 며느리는 그런 관점에서는 손님에 가까운 존재였다. 직장일에 바쁜 며느리가 제삿날 저녁에 잔뜩 미안한 표정으로 헐레벌떡 현관에 들어서는 모습을 몇 번 보고 나서 금자씨의 남편이 결단을 내려서 구정과 추석에 지내던 제사는 성묘로 대체했고, 기일에 모시던 제사도 모인 가족들이 먹을 만큼의 음식을 장만해서 시아버님을 기리며 서로 덕담을 나누는 화합의 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설날 먹을 떡국 준비만 간단히 하고 세뱃돈도 신권으로 준비하고 나자 정말 편안하고 즐거운 명절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양병원에 계신 시어머니를 면회 갈 때 명절음식을 맛보게 해드려야 할 것 같아 좋아하시던 동그랑땡을 좀 부쳤고, 간병인에게 줄 보너스까지 챙겼다.

그런데 느닷없이 아들의 부탁전화가 왔다. 조금 눈치를 보는 것도 같았지만 들어줄 거라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이번 구정에 둘 다 회사에서 연휴 앞뒤로 며칠씩 휴가를 좀 얻었어요. 1년 치 연차를 모두 긁어모아서 좀 먼 나라 뉴질랜드로 가서 트레킹을 하고 올 예정입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윤서 좀 봐주시면 해서요.”

금자씨는 드디어 올 것이 들이닥쳤구나 싶었다. 평소에는 가까이 사는 윤서의 외할머니, 즉 안사돈이 손녀인 윤서를 돌봐주기 때문에 명절이라도 쉬게 하는 게 맞긴 했다. 그러나 구정 아침에 떡국 먹고 다 같이 시어머니 면회를 하고 나면 홀가분하게 근교 드라이브를 하려던 계획은 다 뭉개야 했다. 갓 첫돌이 지난 귀여운 손녀지만 ‘내 방식대로 보내는 명절’의 꿈을 버려야 한다니… 마지못해 “그러지 뭐”라고 승낙의 대답을 했지만 남편에게 볼멘소리를 하고야 말았다.

“아니, 아직 서울에 집장만도 못한 애들이 무슨 해외여행이에요? 돈 좀 아꼈다가 집도 사고 애도 좀 크면 그때 실컷 여행을 가도 될 텐데, 당최 요즘 젊은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건지…”

그래도 금자씨 남편은 애들 편을 들었다.

“윤서 돌보는 거 내가 도와줄 테니 흔쾌히 허락해줘요. 애들이 직장생활 하면서 잔뜩 쌓여 있던 스트레스를 여행과 트레킹으로 풀고 새 힘을 얻어오면 좋잖아. 지금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생의 말미까지 잘 돌봐드리고, 젊은 애들 잘 뻗어나가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 할 일 아닐까?”

금자씨는 낡은 굴레에서는 벗어났지만, 다른 굴레들이 얽혀오는 게 인생사인가, 뭐 이런 생각에 빠져들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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