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37] 소심한 복수

오은주 기자
  • 입력 2020.03.03 15:10
  • 수정 2020.03.0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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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오은주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수상
2019년 조연현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미순, 희순, 순남 이 이름들이 두 살 터울로 모두 60대인 순남씨 여자형제들의 이름이고, 막내 남동생의 이름은 수찬이다. 딸 셋에 막내로 아들 하나~이름만 봐도 집안 내력이 나오고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중·노년세대 형제의 구성이다. 막내인 순남씨는 사내동생을 봐야 한다는 부모의 염원으로 이름에 남자가 들어갔다.

지금 88세인 어머니의 막내아들 편애는 평생 시들지도 않고 지칠 줄도 몰랐다. 순남씨는 그 아들이 과연 어머니에게 무슨 특별한 즐거움과 사랑을 주는지 일평생 관찰을 해봐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어머니는 옛관습에 젖어 이해득실과 관계없이 심적으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수찬씨는 그 이름처럼 빼어나고 찬란하지는 못하지만, 무난하게 살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늙도록 받고 있긴 했다. 그런 수찬이가 이 코로나 광풍이 몰아치는 시국에 그만 감기에 걸렸다.

어머니는 감기라는 진단을 듣고도 이제 환갑인 유일한 아들 수찬씨가 코로나에 걸렸을 까봐 안절부절이었다. 마침 아버지의 기일을 맞아 어머니가 혼자 살고 계신 경북 문경의 친정에 간 순남씨와 언니들은 어머니의 아들사랑을 또 확인해야 했다.

“내가 막내 이번에 못 오게 했다.
괜히 왔다가 감기가 도져서 코로난가 뭔가 걸리면 어쩐다니?
느이 올케도 딱 붙어서 간호하라고 오지 말라고 했어.
느이 아버지도 생전에 막내아들 귀여워했으니 다 이해하실 게다.”

감기와 코로나 바이러스는 엄연히 다르다는 설명은 이 상황에선 필요가 없었다. 딸들은 그저 어머니의 마음이 편하면 그걸로 됐다는 심정이었다. 88세의 나이에 치매에 걸리지도 않았고, 자기 다리로 걸으면서 고향집에서 아직도 사과농장을 갈무리하며 사는 모습이 고맙기까지 했다. 다만 아버지 기일인데 어머니가 평소에 늘 말 하는 바, 그저 쳐다보기도 아까운 아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돼 안타까울 뿐이다. 그때까진 너그러운 누나들이었다. 그러나 가끔은 수찬이만 서울로 대학을 보내고, 딸들은 문경 근처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만 보낸 것에 대해 울컥하는 서러움과 서운함이 치올랐다. 특히 세 딸 중에서 가장 공부를 잘했던 둘째 딸 희순씨는 지금도

“내가 대학만 같으면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을 툭툭 드러냈다.

아버지의 제사를 다 마치고 사위인 남편들은 출근 때문에 새벽에 한 차로 가고, 세 자매는 점심을 먹고 역시 한 차로 서울로 향했다. 어머니는 문경의 특산물을 차에 바리바리 실었다. 사과, 사과 말린 것, 오미자 등이었다.

“이 사과랑 사과 말린 것 말이다,
수찬이네 가져다 주거라.
사과가 비타민인가 뭔가 많아서 감기에 좋다니 않니.
너네들은 셋이서 적당히 놔눠들 가져가구.”

얼핏 봐도 한 명 아들네 보따리가 세 명 딸네들 몫보다 컸다. 문경을 벗어나 잠시 휴게소에서 쉴 때 희순씨가 꼬드겼다.

“이번엔 복수좀 해보자.
수찬이네 암것두 가져다 주지 말자.
여기서 우리 셋이서 다 나누자.”

그러더니 정말 뒷트렁크를 열고 수찬씨네 보따리를 풀러 삼등분을 해서 다시 꾸렸다. 마음 약한 첫째딸 미순씨는 그래봤자 수찬이가 엄마랑 전화통화하면서 다 알게 될 텐데 왜 그러냐고 했다.

“일단, 우리 몫이 늘어났으면 됐어.
수찬이가 먹고 싶다면 엄마가 또 보내든지 하시겠지.
오늘은 이러고 싶다.”

순남씨는 작은 언니의 소심한 복수가 귀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작은 언니가 대학을 포기하고 봉제공장에 들어가 이른바 시다에서 4년 후 봉제라인 조장이 됐을 때, 수찬이는 대학교에 들어갔다. 두 사람이 고향집에서 설날에 만났을 때 부러움에 당황하던 작은 언니의 모습이 떠올라서 순남씨는 새삼 눈가가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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