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이다①]“가슴이 떨릴 때 떠나라, 다리가 떨리면 못간다.”
[삶은 여행이다①]“가슴이 떨릴 때 떠나라, 다리가 떨리면 못간다.”
  • 윤재훈 기자
  • 승인 2020.03.23 15:3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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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에서, 희망제작소 강산애회원,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사진=윤재훈)
(북한산에서, 희망제작소 강산애회원,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사진=윤재훈)

왜 여행을 하는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動物)”이다. 이 말은 인간은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다는 말인 동시에, ‘動物’, 움직이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도 함의(含意)하고 있다.

봄볕 아래 양지쪽에 우두커니 앉아있거나, 경로당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노인(老人)들을 본다. 어찌 보면 시간이 멈춰버린 것도 같고, 스스로 움직임을 멈춰버린 사람 같기도 하다. 젊은 날 일터와 집 이외에 경험을 잘 해보지 못한, 우리 시대 초상을 보는 듯도 하다.

화초를 가꾸든, 작은 채마밭을 소일거리로 하든,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든, 여행을 떠나든, 인생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재산은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스스로 뒷방으로 물러앉은, 이 시대의 老人들이다. 한 번뿐인 삶에서 인생 이모작(二毛作)을 스스로 유폐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어리석음을 넘어 스스로 사회의 짐이 되는, 인생을 방기(放棄)하는 것은 아닐까? 심지어 이 시대는 액티브시니어(Active Senior)세대라고 하는데.

갈수록 극심한 이기주의에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이, 극단적인 범죄들이 증가하는 시대. 햇빛을 피하는 음지식물처럼 공동체(共同體)적인 삶을 외면하고 집안에 갇혀, 오직 스마트폰 화면만 보고 사는, 다른 사람(異人)들을 본다. <히꼬 꼬모리>, <싸이코>들이 더욱 증가하는 시대이다. 사스가 지나가고, 메르스와 해마다 독감이 지나가고,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가 서울 하늘에 유령처럼 떠도는데.

산책길에 나서면 뛸 듯이 기뻐하는 개들을 본다. 천지를 뛰어다니던 동물(動物)이 종일 작은 공간에 갇혀 있었으니 얼마나 자유롭겠는가. 애완견(愛玩犬)이라는 말이 있고 이제는 그것을 넘어 반려견(伴侶犬)이라는 말도 있다. 들을수록 철저하게 ‘인간 중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자기 맘대로 하려하고, 아이들도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시대. 자신의 말을 잘 듣고, 온종일 집에서 오직 자신만을 기다리니 얼마나 사랑스럽겠는가? 그러나 “인간이 자연을 그리워하듯 動物, 역시 그러할 것이다.”

(사진=윤재훈)
(사진=윤재훈)

“어서오너라, 잠시 쉬었다 가”

강원도 어느 길가를 지나다가 파안대소(破顔大笑) 하는 장승들, 한 마을 사람들이 전부 나를 마중 나온 듯하다.

(글, 사진=윤재훈)
(글, 사진=윤재훈)

왜 떠나는가?

젊은 날 내 여행의 시작은 산이었다. 산에 오르면 마냥 즐거웠고, 멀리서 산 빛만 보아도 새로운 호흡으로 생기가 돌았다. 산새처럼 그 품에 들면 굳이 공자님의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知者樂水)>를 들먹이지 않아도 생각은 숙성 됐다. 정상에서 손차양을 하고 탁 트인 들판을 바라보면 지나가는 바람은 내 어깨를 다독이며, 동서남북 봉우리들은 울울창창(鬱鬱蒼蒼)한 삶의 가야할 바를 인도하는 것 같았다.

그 산 빛 속에 든 사람들의 얼굴은 거리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달랐다, 저마다 생기가 돋고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산에 푹 빠져 살았다, 지리산으로, 설악산으로, 백두산으로, 한라산으로, 갈증 난 사람처럼 이 땅의 산을 대부분 올랐다. 그 사이 불혹(不惑)의 나이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 국토의 산에 빠져 살고 나니, 어느 순간 이 땅에 흘러가는 강줄기가 궁금해졌다, 내 몸의 혈맥처럼 이 국토의 구석구석을 흐르는 강, 우리네 삶의 안식처가 되는 그 강가에는, 과연 어떤 풍경이 펼쳐지고, 어떤 사람들이 살을 붙이고 살아갈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떠났다.

((사)우리땅걷기 신정일 이사장과 회원, 사진=윤재훈)
((사)우리땅걷기 신정일 이사장과 회원, 사진=윤재훈)

한강(漢江) 1,300리 길을 걷다

맨 처음 시작한 길은 우리 민족 최대의 젖줄 <한강>이었다, 그 비원의 1,300리 길을 따라가면서 이 땅에 역사(歷史)가 기록된 이래로 왜 가장 치열한 전쟁의 현장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 왜 고대시대부터 이 강가로 흘러온 인류는 이 땅에 서로 차지하려고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이 눈 시리도록 아름다운 경관 속에서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궁금했다.

어느 벽안(碧眼)의 사람이 당신의 조국에 대해 물어온다면 그 아름답고 시린 역사를 어떻게 이야기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니 우선 한강의 발원지로 가는 것이 급했다, 바로 <한강 1,300 도보여행>을 떠났다.

세종실록지리지, 지행록, 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등 옛 문헌들을 보면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그 첫 점은 오대산 상원사 서쪽에 자리한 <우통수>로 알려졌다. <대동지지(大東地誌)>에도 보면,

“색과 맛이 보통 물보다 매우 뛰어나 한강의 첫째가는 시원지가 된다.”

라는 이야기가 있고, 조카를 시해(弑害)하고 사약까지 내린 세조도 그 피비린 내 나는 죄의 댓가로 얻은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으로 와 문수보살을 만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대산 월정사에 기거하는 스님들에 의하면 물맛이 묵직하며 뒷맛이 개운하여 최고의 찻물이라 한다.

낙동강의 발원지이기도 한 이곳은 피톤치드와 음이온의 향기를 온 몸으로 맡으며 1,3키로 정도 걸어가야 한다. 수많은 나무뿌리를 거치고 흘러왔을 그 물은 어쩌면 산삼밭이라도 지나오지 않았을까. 마시면 힘이 불끈 솟고. 누군가는 잔잔하게 솟아오르는 물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자전거 전국일주 설악산 계곡에서, 사진=윤재훈)
(자전거 전국일주 설악산 계곡에서, 사진=윤재훈)

그러나 지금은 그 발원지를 금대산 <검룡소>로 친다. 그 길이가 약 32km 정도 더 길어서라고 한다. 두 곳은 서로 지척에 있으며, 우리 민족의 등뼈 태백산맥에 자리 잡고 있다. 숲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용이 승천하기 위해 몸을 뒤틀었다는 용틀림 폭포가 나온다.

사시사철 9℃의 수온을 유지하며 하루 2,000~3,000톤의 달디 단 물을 용출하는 물줄기는 이 국토의 너른 들판을 적시고, 농부의 거친 보습날과 수많은 마을의 저녁연기를 아우르며 상선(上善)약수처럼 흘러간다. 굽이굽이 향기 나는 수많은 마을과 산줄기들을 돌며 수많은 실개천을 품으며 그 품새를 점점 키워나간다.

(두물머리, 사진=김남기)
(두물머리, 사진=김남기)

“가슴이 떨릴 때 떠나라, 다리가 떨리면 못간다.”

우리 국토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최대의 젖줄, 가장 많은 국민들이 붙어 삶을 유지하는 강, 한강(漢江, 一江, 韓江). 그 강은 서해로 빠질 때까지 지역마다 이름을 달리 불리는데 태백에서는 골지천(骨只川, 골지는 ‘골짜기’), 정선은 ‘조양강(朝陽江)’, 영월은 ‘동강(東江)’, 여주는 ‘여강(麗江)’이라 부르며, 금강산 옥전봉에서 발원한 북한강과 양평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정답게 해후하여 한강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김해를 지나면서 한탄강과 몸을 합친 북에서 내려온 임진강과 다시 한 번 얼싸 안고 애기(愛妓)봉 아래 서해의 거친 물살에 몸을 담그는 감격을 맛본다.

(어느 바닷가 마을을 지나다가, 사진=윤재훈)
(어느 바닷가 마을을 지나다가, 사진=윤재훈)

1636년 병자호란 때 평양감사와 기생 애기의 애절한 사람의 깃든 서해의 길목 <애기봉>, 그 아래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까지 장장 514키로 미터를 흘러온 한강, 그 사이 36개의 도시와 12개의 하천을 아우르며 왔다. 길이로는 803km의 압록강, 548km의 두만강, 525km의 낙동강에 이어 4번째이지만 유역면적은 압록강 다음으로 넓고, 수량은 낙동강보다 훨씬 많다. 이련 연유로 인류가 모이고 항상 한반도 역사의 중심지가 되었다.

(사진=윤재훈)
(사진=윤재훈)

나는 그 한강을 걸으면서 만났던 사람들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시골마을 골목길을 걷다가 담 너머로 마주치던 아낙의 웃음 띤 모습, 어느 길가의 넘어져 있던 앵두나무에서 입이 붉도록 열매를 따먹고 서로의 붉은 입술을 보며, 마치 굴뚝에서 나온 청소부처럼 웃던 모습. 어느 산모롱이 풀숲에서 지천으로 숨어있던 산딸기와 오디들. 어둠 속 논물을 가득 채운 논에서 소를 몰며 돌아갈 줄 모르던 농부도.

이 한반도의 대동맥 한강은 또한 그 시대마다 이름을 달리 했다. 한사군과 삼국시대 초기에는 한반도의 허리를 띠처럼 둘렀다고 해서 ‘대수(大水)’, 고구려는 ‘아리수’, 백제는 ‘욱리하’, 신라시대에는 상류를 ‘이하’, 하류를 ‘왕봉하’라고 부르고, 삼국사기 신라 편 지리지에는 ‘한산하’, ‘북독’이라고 했다. 고려 때는 큰 물줄기가 맑고 밝게 흘러내리는 긴 강이란 뜻으로 ‘열수’, 모래가 많아 ‘사평도’, 또는 ‘사리진’이라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경강’이라 불렀으며, 그 이전에 백제가 동진과 왕래하여 중국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중국식으로 해서 ‘한수(漢水)’라고 불렀고, 옛 이름이 차츰 희미해지면서 ‘한수’ 또는 ‘한강(漢江)’이라고 했다. 또한 한강은 ‘한가람’에서 나온 말로 ‘한’은 ‘크다, 넓다, 길다’의 의미이며, ‘가람’은 ‘크고 넓은 강’이란 뜻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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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현 2020-03-25 00:41:18
어서 벌들이 날아다니고 꽃이 만개하는 길을 걷고싶네요.

이미숙 2020-03-23 19:23:46
가슴떨릴때 떠나라
누구든 말처럼 쉬운게 어디있으랴
근데 떠날수있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글을 읽다보니 내 자신도 한강의 어디쯤 흘러가고 있음을 느낀다
나도 다리 떨리기전 떠나고 싶다~~~~

윤재훈 2020-03-23 16:14:30
댓글은 글쓴이를 춤추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