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① 프롤로그] 길 위에 길이 있다

윤재훈 기자
  • 입력 2020.03.31 14:28
  • 수정 2020.08.05 13:0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Plolog : 위에 이 있다

(아크로폴리스언덕 앞 필자, 촬영=윤재훈기자)
(아크로폴리스언덕 앞 필자, 촬영=윤재훈기자)

“여행보다 나를 키운 것 없다”

지구! 45억 6,700만 년 전에 형성되었으며 태양으로부터 세 번째 행성, 엷은 대기층으로 둘러싸여 있고 지금까지 발견된 지구형 행성 가운데 가장 크다. 그리하여 인류가 생겨났다.

만약에 청소년들에게 권한다면 <세계배낭여행>을 떠나라고 하고 싶다. 나의 두 발로 세계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나와 다른 모습 다른 환경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보기를 원한다. 그것은 ‘세계정신’을 키울 수 있다.

인류는 왜 이렇게 유사(有史) 이래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가?
오랜 왕조시대가 끝나고, 36년 일제 치하를 견디며 기적적으로 독립하고, 거기에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 후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했던 조국이 어떻게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이 되어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가?
세계의 많은 나라들은 왜 이렇게 극한의 날씨 속에 가난에 허덕이며 의료혜택도 받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가?
세계는 바이러스 속에 떨고 있는데, 지구상의 조그만 나라가 어떻게 신약을 개발하여 세계가 러브콜을 하고, 떠났던 민족들이 다시 조국으로 돌아오는가?

세계배낭여행은


“책 속에서는 느끼지 못하고,
이 땅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무수한 이야기들이, 내 온 몸으로 다가올 것이다.”

(끊어진 압록강철교, 촬영=윤재훈기자)
(끊어진 압록강철교, 촬영=윤재훈기자)

“여행을 떠나면, 문화 충격의 쓰나미가 온 몸으로 몰려온다.”

우리는 오늘도 어딘가 지구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나는 어떤 발자국을 남길 것인가?
세계의 여행길에서 나는 수많은 서양의 젊은이들을 만났다. 그들은 진즉부터 그렇게 떠나고 있었다.

책 속에서는 간접경험을 할 수 있지만, 여행은 내 온 몸으로 부딪치는 체험이다. 그 속에서는 잠자던 하나하나의 감각들이 생생하게 살아나 나를 일깨워준다.

 

“그러니 떠나라.”

“백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한 번의 세계여행이 낫다.”

(몽골벌판을 지나며, 국제열차안에서, 촬영=윤재훈기자)
(몽골벌판을 지나며, 국제열차안에서, 촬영=윤재훈기자)

5년간 세계 도보 여행지 스케치

5년 동안 세계를 돌았다.
세계의 풍경과 세계의 기후를 다 간직한 것 같은 중국, 잔돈을 던지며 기차 바닥에 가래침을 뱉으며 담배를 피던 모습은 어느 정도 사라지고, 세계 제일의 고속철로 무장하고 세계의 여행길에서 보이지 않던 중국인들이 2014년쯤부터 쏟아져 나온다.
가도가도 초록의 융단 오직 구름만이 그늘을 만드는 몽골.
아오자이와 논라(Non La)의 고향 베트남, 하롱베이 앞 갓빠섬에서 만난 여인은 어선에서 고기 몇 마리를 받더니 집으로 초대를 한다. 한국 화장품, 라면 등 한국 제품으로 일색인 그녀의 방, 선한 심성, 섬을 떠나면서 보니 밤이면 한국인 주점에서 일한 듯했다.
아직 순수의 천국 라오스.
가난한 캄보디아.
아이스크림 값보다 훨씬 싼 망고, 코끼리 먹이로나 쓰이는 바나나, 우리의 무채처럼 시원하게 썰어주는 쏨탐(파파야 샐러드)에 손으로 꼭꼭 눌러서 먹은 우리 찹쌀보다 낱알이 조금 작은 카우니아오, 주머니가 가벼운 배낭여행자들에게 한 끼가 든든한 황금 불타의 나라 타일랜드.
명상수행 위빠사나의 고향 미얀마.
천 개의 신들이 산다지만 환경과 사람들의 생활은 너무 비참한 인도.
세계의 폐차들이 다 모여 있는 것 같아 가슴 아픈, 눈 시리게 청정한 자연의 히말라야의 네팔
오랜 비원의 일본.
다시 중국 서부 사막의 위그르족들의 나라, 란저우에서 돈황을 지나 우루무치까지.
국제열차를 타고 넘어가는 중앙아시아 석유 부국 카자흐스탄.
이시쿨의 키르키스탄.
찬란한 이슬람의 나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부하라, 거대한 흙성의 히바.

카리브해를 넘어 코카서스 3국 오일머니로 흥청거리는 아제르바이잔.
아름다운 풍경과 포도주의 나라 조지아.
성서에 의하며 대홍수가 끝나고 노아의 방주가 도착했다는 그들의 성산 아라라트 산이 있는 터어키
지금도 전쟁 중인 블랜디의 나라 아르메니아.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남자들이 사는 나라 물 보다 더 싼 기름이 넘치지만 국민들은 가난한 무슬림의 나라, 1리터에 80원, 그 시절 한국을 검색해 보니 2990원 이었다. 더 올리고 싶지만 한국에서 가장 비싼 주유소라는 오명을 쓰기 싫어 서로 눈치를 보고 있다고, 20여분 이상 택시를 타고 가도 300원이 나오지 않아, 내리면서 괜시리 기사님 눈치를 보며 빨리 못 내리고. “땡큐”하며 먼저 푸근한 인사를 보내는 기사님 얼굴을 보고서야 안심하고 내리고. 미국의 국가봉쇄로 기름값이 150원으로 올라가자 폭동이 일어나는 나라, 청소년들이 한류와 삼성·LG 브랜드를 너무 좋아하며, 가슴을 열어재친 주먹만한 석류가 물 값보다 싼 나라 이란.
북에서 남까지 횡단, 천 년 유적의 케슘 아일랜드.

(이스탄불 블루모스크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촬영=윤재훈기자)
(이스탄불 블루모스크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촬영=윤재훈기자)

1m만 파면 유적이 쏟아져 나오는 터어키에 산재한 찬란한 그리스 문명을 따라 동서횡단,
지구 위의 화성 풍경 카파도키아, 거대한 지하도시 데린큐유,
한국인이 유난히 많이 온다는 하얀 석회의 산 온천이 흘러내리던 파묵칼레,
지중해를 따라 널려있던 그리스 시대 원형경기장과 거대한 신전들.

(지구 안의 화성 '카파도키아', 촬영=윤재훈기자)
(지구 안의 화성 '카파도키아', 촬영=윤재훈기자)
(흰 석회의 산과 온천수, '파묵칼레', 촬영=윤재훈기자)
(흰 석회의 산과 온천수, '파묵칼레', 촬영=윤재훈기자)

마침내 두 대륙을 품고 있는 아시아 대륙을 넘어 유럽의 첫 땅 불가리스가 유명한 불가리아 그리고 소피아.
인류 문명의 시원이라는 그리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땅의 배꼽 움팔로스와 신탁이 이루어지던 델포이, 마케도니아 중심도시 테살로니카.
추억의 영화 벤허와 쿼바디스가 생각나는 땅, 천 년 제국 이탈리아 로마 원형경기장 콜로세움, 로마제국 중심지라는 포로 로마노, 모든 신을 위한 신전 판테온, 연인들의 명소 트레비 분수, 이탈리아 안의 또 다른 나라 바티칸 대성당과 미술관, 르네상스의 시작 피렌체. 운하의 성지 시원한 바다의 베네치아, 밀라노, 나폴리.

약탈문화재의 보고 그들의 자존심이라는 루브르 박물관, 마르세이유 요트천국, 회색빛 하늘 아래 미라보 다리 위에서 본 세느강에는 흙탕물과 쓰레기만 흘러가고, 남미 대륙의 대부분의 땅을 식민지 삼아 지금도 스페인 말이 통용되는, 백호주의와 식민지 제국을 그리워할 스페인.
유럽 대륙의 끝 거대한 대서양의 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 선 바이킹 후손들이 사는 포르투칼, 리스본에서의 해풍 내음.

(아크로폴리스에서 잘 보이던 올림피아 제우스신전, 촬영=윤재훈기자)
(아크로폴리스에서 잘 보이던 올림피아 제우스신전, 촬영=윤재훈기자)

산업혁명을 이룩한, 동쪽에서 해가 떠 서쪽으로 지는 섬나라 영국.
유럽에 피내음을 쏟았던 히틀러와 니체의 나라 독일.
항상 약소국처럼 느껴지지만 선량한 사람들이 사는 폴란드.
수시로 얼음꽃이 피는 동토(凍土) 거대한 북극해의 얼음이 녹아, 먹이를 구하지 못해 앙상해진 백곰들이 동쪽포식까지 자행하는 제국 러시아.
북서족의 끝 오로라가 춤을 추는 동유럽이 지척에 보이는, 옛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야간열차로 도착한 역에는 4월인데도 함박눈이 진저리치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스 학문의 산실 '아테테 학당', 촬영=윤재훈기자)
(그리스 학문의 산실 '아테테 학당', 촬영=윤재훈기자)

이 지구촌 안에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어 서로의 문화와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런 모습들이 궁금했다.

앞으로 전개될 이 여행기는 단순한 관광객이 아닌 여행자의 시선으로 써 내려갈 것이다. 최소한 한 달이나 두 달, 그 지역에 머물러야만 느낄 수 있는 내밀한 이야기들, 관광지만의 위주가 아닌 현지인들과 숨 쉬면서 살아가는 그 나라의 문화와 민속, 역사를 함께 녹여나가는 여행을 이야기 할 것이다.

단순히 스쳐지나가는 여행자, 자신들만이 즐기고 지역에는 아무 이득도 남지 않고, 쓰레기만 남기고 가는 그런 여행을 지양할 것이다.
그 지역에서 나는 음식으로 만든 식탁을 먹으며, 그 지역의 교통 수단를 이용하며, 지역민들과 서로 눈빛을 교감(交感)하는 그런 여행을 할 것이다.

“환경이 아프면 내 몸도 아프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왜냐하면 “환경과 인간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 인류는 환경을 단지 파괴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인간은 그 위에 군림한다는 어리석은 생각들을 하고 있다.
인간의 먹거리가 자연스러움을 벗어나서,


“네 다리가 있는 것은 책상만 빼고 다 잡아 먹은 잡식성을 반성할 줄 모른다.”

그렇게 지구상의 동물들을 다 박멸해 버릴 것 같은 인간의 대식(大食)에 동물의 씨가 마르는 수난을 겪고 있다.
자신이 사는 터전을 이렇게 철저하게 파괴하는 동물은 이 지구상에 인간 말고 또 있겠는가?
그 이기심에 생물종들이 하나하나 사라지고, 덩달아 창궐하고 있는 메르스나 사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단순히 나쁜 놈, 박멸해야 될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더욱 우스꽝스러운 것은 북극해가 녹아 뼈만 앙상하게 남아 동족포식(同族捕食)까지 서슴치 않는 북극곰을 보면서, 빙하가 녹은 인간들이 만든 재해를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북극 루트의 경제성만 따지는 어리석은 동물이 되어 버렸다.

(필리핀 베르데 섬에서 게가 버려진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갇혀 있다)
(필리핀 베르데 섬에서 게가 버려진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갇혀 있다)

매년 허리케인, 대규모 산불, 라니뇨, 지진, 쓰나미, 폭염 등 인간의 탐욕에 대한 자연의 경고는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인간은 이미 불감증에 걸린 듯하다.

미세 플래스틱을 먹은 바다의 물고기들이 중독되어 가고 그 물고기를 인간들이 먹고 있다. 물개는 목에 플라스틱이 끼여 숨막혀 죽어가고 있는데, 인간들은 마치 플래스틱이라도 먹고 살 듯하다.

바닷물의 수위가 대책 없이 올라가 잠길 위기에 처해지는 나라가 수시로 생겨나고 있다. 이제는 영국 보호령이 되어버린 투발루(Tuvalu)섬이나 몰디브(Maldives)섬, 얄라 군도 등 수많은 섬들의 비운을 보면서도, 파괴와 오염의 질주를 경제성이라는 미명하에 멈출 줄을 모르는 동물의 시대가 되어 버렸다.

그러면서 매일 자연으로 나가 건강한 몸을 위해 운동을 하고 맑은 공기를 갈구한다. 언제부턴가 스마트폰에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수치가 뜨지만 마치 오래 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반응이 없다. 오늘도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과다하게 세제를 사용하고 일회용품을 쓰고, 쓰레기를 버리고 차를 몰고 질주한다.

“그대는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촬영=윤재훈기자)
(설악산 계곡, 촬영=윤재훈기자)

내 여행의 시작은 山이었다.
멀리서 산 빛만 보아도 마음이 편안해 지고 고요해 졌다. 스스로 명상에 드는 것 같았다. 봄날 온 산을 물들이는 연둣빛을 보면 아이의 첫 울음처럼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그 위로 탱글탱글 떨어지는 빗방울은 삶의 열락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봄 산은 아이들의 함성 소리가 가득 차, 저마다 저요, 저요, 하며 자신의 존재를 피워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복수초, 매화,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목련, 저마다 지난 겨울 산고(産苦)를 이겨내고 자신의 존재들을 환한 꽃으로 피워냈다. 산은 그렇게 끊임없이 내 정신의 자양분으로 다가왔다.

(촬영=윤재훈기자)
(촬영=윤재훈기자)

그 아름다운 땅, 아무 댓가 없이 언제 가도 정신이 맑아졌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이런 자연을 가진 나라를 만나기 힘들었다. 산모퉁이를 돌다가 나오는 물을 스스럼없이 마실 수 있는 나라를 보지 못했다. 우리의 국토는 정말 축복받은 땅이다. 그것은 세계를 나가보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싸이와 방탄소년단의 대중성이 얼마나 세계를 열광하는지, 삼성과 LG의 브랜드가 얼마나 동쪽의 조그만 나라 한국을 일깨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태어나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을 처음 들어보고, 한국 사람들을 처음 만났다는 아이들, 그러나 그들의 휴대폰 안에는 어김없이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들어 있었고, 알지도 못하는 한국어를 따라 고샅길에서 말춤을 췄다. 도시의 거리에서도 수시로 강남스타일이 흘러 나왔다.

그 오지 산골에 운동회라도 열리는 날이면 아이들은 무대에 올라가 자신들의 전통옷을 입고 말춤을 추었다. 필자도 중국에서 내려온 소수민족인 몽족들에게 반강제적으로 떠밀려 그들의 전통옷을 입고 무대에 올라, 그들이 생전 처음 들을 정태춘의 <북한강에서>와 앵콜송으로 김광석의 <거리에서>를 불렀다. 그 소리는 마음에 설치해 놓은 확성기들을 따라 흘러나왔고 근처에 사는 카렌족까지 얼마나 웃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낯이 뜨겁다.

그렇게 우리 국토의 산을 어느 정도 오르고 나니 이 땅을 실핏줄처럼 흘러가는 강 길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한강 1,300리 도보여행>를 떠났다. 내친 김에 <섬진강 530리 도보여행>도 했다. 초병이 길을 막은 마지막 검문소에서 이슬을 털며 한탄강을 걸었고, 법천사지, 거돈사지, 흥법사지, 청룡사지, 회암사지들을 폐사지들을 따라 걸었다.

(자전거여행, 촬영=윤재훈기자)
(제주 어느 바닷길에서 자전거여행 중, 촬영=윤재훈기자)

그렇게 하고 나니 우리 국토의 전체 모습이 궁금해졌다. 그러나 내 뒤에 오염물질을 남기면서 가고 싶는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자전거였다. 자전거를 사서 한 달 동안 동네 길을 돌다가, 우리 국토의 바닷길만 따라 ㅁ자로 <80일 동안 5830리 전국일주>를 떠났다

의정부에서 설악산을 넘어 호반의 도시 속초로, 꿈결 같은 동해안 길을 따라 가다 영덕에서 만난 상인은 나에게 대게를 삶아주며 가다가 먹으라고 했다. 한 마리는 먹고 한 마리는 그 분과의 추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저녁 때 꺼냈는데 그만 상해 버렸다.

굴풋한 해질녘 어느 바닷길을 돌다 얻어 마셨던 막걸리 맛도 있을 수 없다. 그렇게 구불구불 부산까지 내려갔다. 수많은 다도해 섬들은 건너뛰었다. 가덕도, 거제도, 통영, 창선도, 남해도, 300리 한려수도의 깃점 여수, 황금빛 유자의 고향 고흥, 그 바다를 떠올리면 송수권 시인의 <꿈꾸는 바닷가>라는 시가 생각난다.

다시 섬들을 따라 거금도, 조약도, 고금도, 명사십리 신지도를 거쳐 마침내 완도 도착, 그곳에서는 완도신문과 인텨뷰를 했다. 또 배를 타고 추자도 일주, 뭍에서 온 낚시꾼은 나의 초라한 행색이 불쌍했던지 3만 원을 주면서 가다가 밥이라도 먹으라고 했다.

한 달간의 제주도 일주, 동문시장에서 투명한 한치를 사서 돌샘에서 우연히 만난 제주대 교수와 밤새 막걸리를 마시고, 성산포 갯벌에서는 3일 동안 앉아 눈멀도록 바다만 바라보았다. 그 건너편에 우도, 섬 끝 서울에서 내려온 화가가 운영하던 찻집, 마지막 날 바다에서 바라본 탐라는 안개에 쌓여 마치 이어도처럼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완도로 나와 서해안 갯벌과 낙조를 따라 고려의 수도 강화도까지. 그렇게 하고 나니 우리 국토의 전체 모습이 대략 눈에 들어왔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맹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 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 국토, 조태일

그런데? 이번에는 세계가 궁금해 졌다.
하지만 좀처럼 그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다. 불혹(不惑)이 지나고 지천명(知天命)이 지나가고 있었다.
너무나 가고 싶어 어느 날 막연히 여권이라도 내놓으면 혹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여권을 만들었다. 초록색 그 표지를 받자 금방이라도 여행을 떠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몇 달 후 정말 거짓말처럼 인천항에서 단동으로 떠나는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앞으로는 그 여행기가 게재될 것이다.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