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모작 시간여행①] 종교간의 대화, 예술의 만남_‘코리안 아쉬람’ 대표 이명권 1

윤재훈 기자
  • 입력 2020.04.07 17:20
  • 수정 2021.06.08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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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간의 대화, 예술인의 만남

‘코리안 아쉬람’ 대표 이명권 1

‘아쉬람’ 산스크리트어로 ‘수행자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봄이 왔다, 온 산에 불이 붙었다. 부용천변에서, 사진=윤재훈 기자)
(봄이 왔다, 온 산에 불이 붙었다. 부용천변에서, 사진=윤재훈 기자)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낼 수 있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방문객 - 정현종

부용천변에서 만난 봄날의 풍경

(봄 강변에 나온 아이들 평화롭다, 세상은 코로나로 흉흉하지만, 사진=윤재훈 기자)
(봄 강변에 나온 아이들 평화롭다, 세상은 코로나로 흉흉하지만, 사진=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어 <우인재(愚人齋>을 향해 출발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모여서 공손하게 마음을 삼가하는 집’, 봄날 의정부 중심을 흐르는 부용천변이 너무 아름다워 찬찬히 그 풍경을 볼 요량으로 자전거를 타고 갔다.

강변에는 이미 개나리가 지천으로 피어 천지가 병아리 같다. 그 위에 목련, 진달래, 벚꽃, 싸리꽃, 저마다 화사한 얼굴들을 드러내며 천지는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가득한데, 오직 사람들만 저마다 입에 하얀 벙거지를 쓰고 벌을 받고 있는 듯하다.

꽃송이 하나하나가 인류의 얼굴처럼 눈부시게 벙글고 있는데, 지금 세상은 메르스, 사스, 독감 등에 이어 코로나의 망령으로 흉흉하다. 인류의 부분별한 환경파괴와 오염에 대한 마지막 경고인 것 같다. 지구를 건조하게 만든 댓가로 올 봄 황사는 얼마나 또 우리를 힘들게 할까? 매일 아침 스마트폰에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농도가 유령처럼 떠돌아도 마치 오래 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사람들은 반응이 없다.

“이 눈부시게 푸른 봄날에 우리 인류는 자연 앞에 사죄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들의 후손에게도 석고대죄(席藁待罪) 해야 한다.”

설명

봄날 코로나 때문에 어디론가 떠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강둑을 따라 꽃길을 거닐고 있다. 꽃길을 찾아 걷은 그대의 발걸음은 자유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는 자연과 철저한 공생의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강심으로 수많은 천둥오리, 백로, 가마우지 심지어 언제부턴가 갈매기 한 마리까지 올라와서 돌아갈 줄 모른다. 한강에서 올라왔는지 팔뚝만한 잉어 떼들은 시름없이 먹이를 찾아 연신 입을 뻐금거린다.

두어 시간 타고 가니 월계역이 나오고 월계 1교 다리에서 마침내 서울 시내로 올라섰다. 거리에서는 자전거 타기가 위험하다. 자동차 도로에 비해 인도 쪽으로는 너무 울퉁불퉁하여 대단히 불편하다. 만약 강변 자전거길이 없다면 환경오염과 기름절약에 1등 공신인 자전거의 인구가 이렇게 많지 않을 듯하다.
여기서 정릉 천변에 있는 경국사 사찰까지는 대략 30여분 걸릴 것이다.

정릉에 얽힌 역사 한 자락

정릉, 정릉 가만히 읊조리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신덕왕후, 조선을 세운 이성계, 태종 이방원, 광통교, 흥천사…. 사실 서울의 으뜸 산책길의 하나인 덕수궁 정동길은 신덕왕후에 의해 지어진 이름이다. 위화도 회군을 하고 개성 수창궁에서 왕위에 오른 이태조, 그는 왕위에 오르기 전, 첫 번째 부인인 신의왕후와의 사이에 태종 이방원을 비롯한 6명의 왕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영화(?)를 보지 못하고 일찍 돌아가시고 두 번째 부인인 신덕왕후가 조선의 첫 번째 왕후가 된다.

그리고 태조의 열렬한 사랑을 받다 그녀 역시 일찍 세상을 떠나자 그녀를 잊지 못하고 태조는 아예 그 옆에 흥천사라는 대찰을 짓고 향불을 피우고 연모(戀慕)했다. 그리고 세상의 흐름을 읽지 못했을까? 그녀의 두 번째 소생 방석을 왕위에 앉히는 분란을 자초하고 만다.

이것이 이방원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뇌관이 되어 제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그녀의 소생 두 왕자와 딸 경순공주와 그 사위까지 도륙(屠戮)를 당한다. 그리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부관참시 하듯 묘를 파헤치고 비각들의 기둥은 다른 건물를 짓는데 사용하고 비석은 청계천 광통교에 깔아, 천만 년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말도 왕과 아들의 불화에 의해 생겨난 말이다. 무학의 청에 의해 아버지가 오셨지만 결국 의정부에서 서울로 넘어오기 전 회룡(回龍)에서 어가가 멈추고, 마중 나온 태조는 아버지의 화살까지 맞을 뻔한 일이 생기면서 붙여지게 된 지명이다. 봄날 이런 이야기들이 바람에 날리는 벚꽃 따라 회자되고 있는 곳, 정릉(貞陵).

앞으로 정릉천 뒤로는 북한산 <코리안 아쉬람>

(코리안아쉬람 정릉 '우인제' 사랑방, 사진=윤재훈 기자)
(코리안아쉬람 정릉 '우인제' 사랑방, 사진=윤재훈 기자)

오늘 인터뷰를 할 이명권 박사의 <코리안 아쉬람>이 바로 경국사 사찰 옆에 있다. 10여년 이상 재개발 계획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거의 빈집들이 많은 정릉 마을 입구 야트막한 콘크리트 절벽 위에 있다.

앞으로 작지만 천혜의 정릉천이 흐르고 천둥오리와 물고기들이 지천이다. 뒤로는 북한산이 솟아있으니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임이 틀림없는데, 명당은 사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만들어 질 것이다. 서울에서 이런 풍경 속에 터를 장만하기에는 어느 정도 음덕(陰德)을 쌓아야만 가능할 것 같다. 더구나 옆에 경국사 절터까지 들어앉았으니 길지(吉地)임에는 틀림없다. 그 옛날 가난과 전쟁터의 혼란을 피해 쫓기듯 온 사람들이 살았을 법한 집들이 북한산 기슭을 타고 오르면서 올망졸망 붙어있다.

사실 이명권씨도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이방인, 새내기 주민이다. 평생 동가숙서가식(東家宿西家食)하는 그에게 무슨 인연이 닿았는지, 아니면 그의 문화적인 마인드에 감복했는지, 고양외국어고등학교 송용운 이사장이 그의 뜻에 동감하여 선뜻 이집을 얻어준 모양이다.

(마음 나는 사람들의 차담(茶啖), 사진=윤재훈 기자)
(마음 나는 사람들의 차담(茶啖), 사진=윤재훈 기자)

이 집은 지난 겨울부터 회원들의 울력과 작은 보시들로 점차 사람 사는 모양새를 갖추어 나가고 있다. <코리안 아쉬람>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소탈한 그의 성품을 닮았다. 아쉬람이란 무엇인가. 산스크리트어로 ‘은자(隱者)의 집’ 또는 ‘수행자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아닌가.

그러니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모두 영적이다. 시인, 화가, 교수, 목사 스님, 음악가, 자연요법가, 무용가, 농부, 명상가들 다양하고 특이하다. 모두들 인연 따라 만났다가 떠나기를 반복하지만, 17년의 연륜을 꾸준히 이어오는 그의 덕(德)이 사뭇 크다.

이곳의 모토는 “비움, 나눔, 사귐”이다. 특히 종교 화합에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 현대 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큰 등불을 켜 둔 듯하여 든든하기까지 하다. 인류는 유사(有史) 이전부터 끊임없는 전쟁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다. 그 중심에 종교가 있었다. 무지하고 욕심으로 점철되었던 제자들이 본좌(本座)의 깊은 뜻을 이심전심(以心傳心), 불립문자(不立文字)로 내재화하기 보다는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해 인류를 피바람 속으로 몰고 왔다.

그런 면에서 이곳이 모인 사람들의 생각은 정말 귀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지평까지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집에서는 그래서 스님과 목사님이 서로 앉아 이야기를 나눠도 걸림이 덜 한 듯하다. 정말 이 시대에 보기 힘든 서로 다른 종교와 생각을 내려놓고 벌거숭이로 만나보자는 것이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자는 것이다.

양평-설악산-정릉 <아쉬람>의 터 변천사

아쉬람의 탄생도 독특하다. 출발은 2003년 경기도 양평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몰운재라는 골짜기에서 조그만 폐가를 인수해 마구간을 개조하고 처마 안에서 교수, 화가, 목사, 스님, 신부, 서예가, 시인 등이 모여 <종교 간의 대화, 예술과의 만남>이라는 모토로 출발했다.

이명권씨는 신학 중에 비교종교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2003년 서강대에서 종교학박사를 마칠 때쯤 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은 그는 1987년 감신대 대학원 다닐 때부터 ‘종교 간의 대화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결국은 우리가 ‘땅’으로 가야 한다라고 오랫동안 생각하였는데 그 숙원사업이 결국 15년만에 이루어진 셈이라고 한다.

(대표의 공덕으로 마련된 '몰운재', 사진=윤재훈 기자)
(대표의 공덕으로 마련된 '몰운재', 사진=윤재훈 기자)

그리고 2006년에 설악면 몰운고개라는 언덕에 1층에는 50명쯤 들어갈 홀을 갖춘 2층집을 지었다. 공사 중일 때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었는데, 1층에 벽을 부치고 있을 때, 잠깐 공사를 중지시키고 사면에 노자의 핵심사상인 무위(無爲), 공자의 인(仁), 석가의 공(空), 기독교의 로고스를 쓴 헬라어와 코리안 아쉬람을 부쳤다고 한다.

한마디로 유, 불, 도, 기독교 대화의 장으로 꾸몄다. 지금도 그 건물은 그대로 남아있다. 그 뒷산은 명상숲길로 만들고 네팔여행 할 때 쇼올도 구입해서 명상할 때 사용하기도 했다. 일행들은 눈이 오는 산길을 걷다 공터가 나오면 모여 명상도 하며 서로 간의 마음을 나눴다. 그게 알려지면서 경향신문에서 취재도 왔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코리안 아쉬람> 간판을 걸고 30여명 들러 앉아 시작했던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됐다.

(새소리, 바람 소리가 명상이다, 사진=윤재훈 기자)
(새소리, 바람 소리가 명상이다, 사진=윤재훈 기자)

그 후 2006년에 <예수, 노자를 만나다>을 쓰고 2007년에는 반야심경과 복음서를 만남인 <예수, 석가를 만나다>에 대해 썼다. 그때 동아일보에서 전화 취재를 했는데, 사진을 5장 달라고 해 개량한복을 입고 붓다상 앞에서 합장하며 찍은 사진을 주었다고 한다.

그때는 명지대학교 재단인 관동대학교에서 “종교 간의 대화”라는 과목을 강연 중이었는데, 총장의 눈에라도 벗어났는지 빌미가 되어 그만 중도하차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 후 그 기자가 다시 취재한 기사를 읽어보니 그는 아직도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중국대학과 자매결연이 맺는 모 대학 총장의 추천으로 파견교수로 1년 계약하고 길림대학교로 갔는데, 그 과정이 7년으로 길어졌다. 그러니 2006년 건물을 세우고 2007년에 중국에 가버리는 결과가 되었다. 그리고 2014년에 돌아왔으니 사실 많은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그 대신 여름과 겨울방학 때 오면 행사를 좀 크게 했다. 그 당시 오강남, 정행경 교수을 비롯한 많은 문인들과 예술인을 초대해서 일산, 혜화동 등에서 세미나를 열고 명상기행으로 1박 2일 남해, 중국 사찰 등도 갔다.

또한 드라이한 모임을 탈피하기 위해 1부에서는 강연을 하고 2부에서는 반드시 풍성한 공연 준비를 했다. 아쉬람 회원 중에는 예술가들이 넘쳐나니 큰 문제는 없었고 한국에 온 후로는 반드시 한 달에 한 번 이상 모이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평화와 예술의 어울림 <가일평화 예술학교>와 <평화예술포럼>

(폐교를 개조한 '가일평화학교', 사진=윤재훈 기자)
(폐교를 개조한 '가일평화학교', 사진=윤재훈 기자)

현재 이명권씨는 아쉬람 외에도 두 개의 단체를 더 이끌고 있다. 그중에 하나는 <가일평화 예술학교>이다. 북한강 상류 춘천댐 위 사북면 가일리에 있는 폐교인데 이것도 역시 이사장님이 가지고 계시다 내어 놓은 것이다. 자그마한 운동장까지 있어 여름수련장과 캠핑장으로 사용하려고 하며 이미 30여명의 회원들이 모여 1박 2일 행사도 했으며, 지난 여름날 책을 옮기면서, 바로 앞 계곡에서 막걸리와 고기 구워먹던 일도 생생하다.

또한 <평화예술포럼>도 있다. 이곳은 ‘한반도 평화통일과 우리들의 예술행위와 어울림’을 주제로 한다. 구성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아쉬람에서는 해마다 중국 황하문명 유적답사를 진행하고 있다. 2년 전에 1탄으로 황하 하류의 태산과 공자, 맹자 유적지를 4박5일로 13명이 떠났었다.

이때 참가한 분들이 통일교육원 원장인 송기웅박사, 고양외고 송용운 이사장 임동확 시인, 대금제작자 권영만 선생 및 아쉬람 회원들과 떠났다. 태산에 올라가 문득 흥이 났던지 즉석 퍼포먼스를 했는데 <한반도 평화예술 태산 기원제>라고 이름을 붙였다.

산 정상에는 도교사원이 있고 바로 그 밑에 한무제가 올라와 봉선재를 지내던 곳이 있다. 이곳은 왕권의 싸인을 받던 장소나 마찬가지였는데, 그전에 진시황도 다녀간 곳이다. 글자 하나 없는 한무제 비석 앞에서 그 행사를 갖고 나서 그 멤버들이 흩어지지 않고 30여명 정도가 모여서 이 모임이 탄생하게 되었다.

(4대 종단 대표 4인 4색 ‘평화를 말하다’ 모임, 사진=윤재훈 기자)
(4대 종단 대표 4인 4색 ‘평화를 말하다’ 모임, 사진=윤재훈 기자)

특히나 이 단체에서 몇 번 주최했던 <4인 4색, ‘평화를 말하다’>를 감명 깊게 보았다. 기독교계의 최일도 목사, 불교의 마가스님, 원불교 권도갑 교무와 가톨릭계에서는 서강대 김용해 신부교수님이 모여서 열린 ‘종교 간에 화합’ 세미나였는데, 한 번 하고 다시 열리지 않아 내심 기다렸다.

하루빨리 열려 인류의 근심원인이 되어가는 종교분쟁과 종교직업인들이 반성하게 되는 계기를 좀 심어주었으면 했다. 오죽하면 국민이 종교를 걱정하는 지경이 되었는데도 더욱 안하무인이 되어 <돈벌이와 건물 크게 짓기, 개인숭배>에 몰두해 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코로나까지 퍼뜨리는 온상이 되어 국민을 불안하고 힘들게 만들고, ‘빛의 군대’라는 폭력 조직까지 만들어 훈련을 시키다 산속 눈밭에서 20은 아가씨까지 죽게까지 만들었으니 그 죄과를 어찌하려나.

그 후 다행히 아쉬람의 공동주관으로 평화통일연구원에서 ‘남북한의 평화구역 공존을 위한 완충지’로서 DMZ에 <유엔평화대학>을 만들자는 제안에 협력하고, 서강대학교에서는 ‘현대인에게 공(空)은 무엇인가’라는 의미 있는 행사도 열었었다.

그 후 롯데월드시네마에서 스님이 만든 ‘산상수훈’ 영화에 대한 시사회에서도 사회를 보면서 진행했었는데, 이때 KBS 9시 뉴스에서도 나오고 중앙일보 백성호 기자도 취재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무리 할 때 한 마디씩 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재미있는 일화가 있었다고 한다.

마침 최일도 목사가 스님이 기독교영화를 만들었으니 이번에는 하시면서 자신을 보더니, 그때 자신이 <예수, 석가를 말하다> 책을 낸 것을 알고 있었으니, 다음번에는 ‘목사가 쓴 반야심경을 기대한다.’라는 이야기를 했단다.

그리고 다음날 중앙일보 전면에 “목사가 쓴 반야심경을 기다린다”라는 커다란 타이틀이 전면에 실리고, 그 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얼마 전부터 진짜 소설을 쓰다가 지금 잠정적 중단상태라고 한다.

(퍼포먼스 중인 권무정 목사와 이명권박사, 사진=윤재훈 기자)
(퍼포먼스 중인 권무정 목사와 이명권박사, 사진=윤재훈 기자)

영화대본 형태로 쓰고 있다는 <소설 반야심경>의 간략한 줄거리를 보자면 인물중심의 소설인데, 한 젊은이가 화엄경에 나오는 문수보살에서 보현보살까지 53명의 보살(선재동자)을 찾아가는 구도과정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K대 영문과 나온 청년이 실연을 당하고 구도의 길을 떠나면서 글은 시작된다.

그 후 30명 정도의 팔도 명사를 만나는데, 두 번째 만나는 인물이 명문대 건축가 교수이다. 그는 부인을 잃고 실연에 쌓여 바로 춘천의 어느 골짜기 암자로 들어가는데, 가일리 평화학교 위치와 비슷하게 진행되어 간다고. 그와의 첫 만남은 그가 코를 골며 잠에 취해있고 방 안에는 화엄경, 법화경 등 경전이 수두룩하게 쌓여있다….

4인 4색 모임의 출연자도, 이명권씨도, 다시 열리기를 기대하며, 그 작업이 일시적인 신선함과 원동력이 되었는데, 보다 중요한 것은 종교의 순기능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는가에 있다고 한다.

‘역사 속 종교의 해악’ 그 안에 등장하는 십자군 전쟁, 마녀사상 등을 다 들먹이지 않더라도, 최근에 샤무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서 언급한 것들이 실재화 되어가는 징후가 있다고 한다. 미국과 중동이라는 이슬람권과 기독교권, 그 배후에는 유대교가 있고 이런 커다란 종교 간의 충돌이 인류의 갈등 원인이 되고 민중들의 근심원인 1호라고 한다.

인도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힌두이즘과 이슬람권의 싸움, 동파키스탄과 서파키스탄이 갈라지고 그 와중에 간디가 암살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비극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이 시대에, 종교가 오히려 그 길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우리나라 현실도 종교인이 정치적으로 우경화 되면서 종교의 본래적인 해석을 자기 나름대로 하면서 ‘종교가 정치적 이데올로기화’ 되어 버렸다고 한다. 남북분단에서 오는 모순의 극대화된 상태에서 우리는 근본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쉬람입구에 놓인 책들, 사진=윤재훈 기자)
(아쉬람입구에 놓인 책들, 사진=윤재훈 기자)

그는 석가와 예수가 말한 원래의 메시지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자신들의 편의대로 잘못 해석하면 종교가 정치화, 권력화, 물신화되거나 타락해 버린다고, 그런 극단적인 모습이 신천지로 나타난 것이고 광화문에 전광훈도 못지않은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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