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40] 가족 간 거리두기

오은주 기자
  • 입력 2020.04.1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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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2019년 조연현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그날도 남편은 외출을 하지 않을 모양이었다. 미숙씨는 연일 계속되는 코로나발 남편의 집콕 때문에 전신이 집에 옭아매어져 있는 듯 자유롭지가 못했다. 그나마 미숙씨는 장을 본다며 마스크를 끼고 동네 마트라도 다녀오곤 했는데 남편은 아예 집밖엔 온통 바이러스로 칠갑이라도 돼있는 듯 겁을 내며 집안에 똬리를 틀었다. 장기전에 대비해 거실의 탁자를 한편으로 치우고 요가매트를 깔고 아령까지 비치해 두었다.

스마트폰 유투브, 텔레비전 뉴스, 신문 등과 벗을 삼아 잘도 지냈다. 미숙씨는 저 소심한 사람이 젊었을 때는 활기차게 중동현장을 누비던 건설역군이었나, 이젠 자신의 기억조차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중동건설 현장에서 일을 했기에 60살이 넘은 나이에도 조그만 건설회사에서 현장관리직으로 요즘도 일을 하는 터라 퇴직한 친구들이 부러워들 했다. 그래서 더욱 보람을 가지고 일하던 사람이 아예 현장출근도 미루고 너무도 충실히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다.

미숙씨도 다니던 스포츠센터와 노래교실이 다 문을 닫아 친구들과의 점심모임도 없는 터라 딱히 바쁘지는 않은데 점심때도 남편이 집에서 밥을 먹는 게 영 불편하고 귀찮았다.

잠깐이라도 낮에 외출을 하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건 마누라가 자신을 험지로 내몬다는 지청구뿐이었다.

“아.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인데 어딜 나가 나가긴!”

“아니 그렇다고 공기 맑은데 있는 산에 등산도 안 가요?”

“산 입구까지 당신이 태워다 줄 거야? 버스나 지하철 타야 하는데 난 싫어. 친구들도 다 안 간대. 한적한 저녁 시간에 그냥 가까운데 있는 공원이나 돌다 올 거야.”

맛있는 식당에는 여전히 젊은 손님이 많아서 싫고, 손님이 없는 집은 맛이 없어서 싫다며 삼시세끼를 집에서 먹는 터라 평소에 반찬솜씨가 좋던 미숙씨마저 반찬 레퍼토리가 다 떨어져가고 도돌이표를 그리고 있었다.

미숙씨는 재택근무 중인 며느리가 생각이 났다.

“아, 그럼 현우네 집에 가서 현우랑 민우랑 좀 놀아주기라도 해요. 며늘애도 집에서 회사일 하랴, 어린이집이랑 유치원 안가는 두 애들 밥해 먹이고 놀아주느라 아주 힘들어 하잖아요.”

“뭔 소리야? 젊은 사람하고 나이 든 사람하고 만나면 바이러스에 더 취약한 쪽은 나이 든 사람이라구. 미국에서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에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던 자식과 손주들이 오랜만에 할아버지 댁에 모여서 놀다 가고 나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원인 모를 병에 걸린다잖아. 애들이 이상한 바이러스 묻혀 오는데 지들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노인들한테는 힘든거지.”

평소 퍽이나 좋아하던 손주들마저 당분간은 만나지 않는다니 대단한 자가방역 모범생이었다. 미숙씨는 “아휴 당신이 언제부터 나랏말씀을 이리 잘 들었수?”하고 놀리면서 이리 찔러도 저리 찔러도 남편은 요지부동이었다.

드디어 사회적 거리두기가 공식적으로 끝나고 소위 생활방역으로 전환한다는 발표가 있자 미숙씨 남편은 그제사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카톡으로 안부만 주고받던 친구들과 약속을 잡기 시작했고, 공사현장에도 다시 나간다는 것이 아닌가.

미숙씨는 그 동안의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오며 어깨에 힘이 빠지고 괜스레 몸살이 날 것 같았다. 그러면서 남편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여보, 이젠 제발 가족 간 거리두기 좀 하고 삽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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