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42] 보험아저씨
[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42] 보험아저씨
  • 오은주 기자
  • 승인 2020.05.2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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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2019년 조연현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그날은 봄바람이 유난히 불어댔다. 시험장으로 발길을 옮기는 경호씨의 발길도 마음도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 경호씨는 보험회사 FP(재무설계사)자격시험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지난 몇 달간 이 시험을 준비하며 보험회사에서 출석교육을 받았고 코로나로 시험은 교실이 아닌 운동장에서 치러진다고 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도 아니고, 백일장도 아닌데, 대학교 운동장에서 시험을 치르게 되다니 참으로 진풍경이었다.

경호씨는 56세에 중견기업에서 퇴직하고 나자,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자신에게 무한 선택권이 있는 것도 같고 사방이 막혀있는 것도 같았다. 퇴직 후의 삶은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누누이 들었지만,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함 속에서 시간을 보냈고, 넥타이와 책상과 컴퓨터를 떠나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아직 자신감이 없었다.

연금을 탈 때까지의 앞으로 9년간 고정적인 수입이 없다는 게 불안의 가장 큰 근원이었다. 그나마 경기도에 있는 작은 상가에서 매월 100만 원 정도의 월세를 받는 게 유일한 고정수입원이었다. 연금을 탈 때까지 생활은 더 검소하게 한다쳐도 아직은 아이들이 대학교를 다니는 시기라 교육비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부인 민숙씨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면서 당장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엄마가 직장에 다니는 유치원생의 등하원 도우미 일을 할 거라고 계획을 밝혔다.

“내가 애들 좋아하니까 그리 힘들지는 않아요. 게다가 애들이 유치원에 가있는 동안에는 시간이 자유로우니 하던 운동도 계속할 수 있고요. 너무 애처롭게 보지 말아요.”

경호씨는 남편의 퇴직이라는 상황에 얼굴 찡그리지 않고 그런 준비를 한 부인의 강한 생활력에 안심이 됐지만, 아이들 다 키워놓고 한참 재미있게 친구들과 어울려 즐길 나이인 50대 중반의 아내를 일터로 다시 나가게 하는 게 마음이 무거웠다.

이 일 저 일 알아보던 경호씨는 친구의 권유로 보험설계사 시험을 준비했고, 오늘은 코로나로 시험이 두 달 만에 치러지면서 야외인 운동장에서 책상 간격을 멀찍이 놓는다고 했다. 50분간 시험에 60점 이상이면 합격이고, 기출문제를 열심히 풀어본 덕에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바람에 날리려는 시험지를 팔로 누르고 OMR카드에 답을 밀려 쓰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더 어려웠다. 시험을 마친 경호씨는 여전히 바람이 불어대는 운동장을 나와 터덜거리며 몇 걸음 걸었는데 민숙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시험 끝났어요? 나 지금 당신 시험 보는 대학교 운동장 앞쪽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같이 점심 먹어요.”

예상치 못했던 전화에 경호씨는 따뜻한 물살에 잠기는 것처럼 마음이 평안해졌다. 교문 가까운 곳에서 민숙씨가 손을 흔들었다. 은퇴한 남편의 심사를 섬세하게 헤아려주는 아내가 정녕 고마웠다.

“당신 이제 보험아저씨 되는 거예요?”

아! 그렇구나! 보험아저씨! FP라는 명칭은 재무설계사란 영어의 약자지만 결국 보험설계사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차용한 명칭이었다.

“당신은 사람 좋아하고 계산도 정확하니 보험아저씨로 성공할 거예요.”

경호씨는 바로 그날 저녁 6시에 합격을 확인하고, 부인 민숙씨의 짐짓 과장된 신뢰에 기대어서 보험아저씨로 첫발을 내디뎠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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