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④】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남자들이 사는 나라, '이란'

윤재훈 기자
  • 입력 2020.05.24 20:07
  • 수정 2020.05.2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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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남자들이 사는 나라, '이란' 

 

(이란의 전통 악기를 연주 중인 게스트 젊은 주인. 사진=윤재훈 기자)
(이란의 전통 악기를 연주 중인 게스트 젊은 주인. 촬영=윤재훈 기자)

이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선한 남자들의 ‘웃음’과 ‘친절함’이다. <카산>이라는 소도시를 걸으면서 마주쳤던 상인들의 눈망울을 잃을 수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무표정보다는 항상 웃음기 머금은 낯빛이 사람의 감정을 순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도시만의 추억이 아니었다. 어느 도시를 가나 그들의 친절은 일상이었다. 이국에서는 물론 조심도 해야 하겠지만, 내가 얼마나 진실하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느냐도 중요할 것 같다.

(예쁘게 비석을 만들어주는 주인과 이웃집 사람. 사진=윤재훈 기자)
(예쁘게 비석을 만들어주는 주인과 이웃집 사람. 촬영=윤재훈 기자)

문득 길을 걷다가 진열장 너머 상점 주인과 눈이 마주치며, 그들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스스럼없이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그리고 옆에 물려놓았던 찻잔을 끌어당기면 수시로 마시는 홍차와 각설탕을 밀어준다. 
서로의 마음을 어느 정도 나누고 나면 자신이 지금까지 사용했던 신앙의 상징인 묵주를 그냥 건네준다. 마치 여행자의 앞길을 축원이라도 해주는 듯이…

(이슬람의 전통음료, ‘홍차와 각설탕, 묵주’. 사진=윤재훈 기자)
(이슬람의 전통음료, ‘홍차와 각설탕, 묵주’. 촬영=윤재훈 기자)

나는 많은 나라를 여행했지만 이렇게 따뜻한 웃음을 지으며 친절하게 대하는 남자들을 본 적이 없다. 단단하고 커다란 덩치에 새카만 굴레수염까지 더부룩하게 나서 처음에는 무슨 산적이라도 만난 듯 경계심과 두려움이 들었지만, 그것은 곧 괜한 기우였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의 시각으로 무슬림은 특히나 요즘 자신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괜한 괘씸죄까지 더해서, 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인 민족이라고 심한 제재를 하지만, 과거 그들은 강성했던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들이다.
양탄자가 날아다니고, 호리병에서 거인이 나오며, ’열려라 참께‘ 하면 커다란 알리바바의 돌문이 열리며 보물이 가득 들어있는, 상상과 모험의 나라였다.
지금은 이 지구상에서 완전 왕따 시키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 따돌리며, 마치 무슨 벌레라도 보듯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시키려하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들은 석유가 나와서 더 괴롭힘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에서는 자주성 있게 떠들면 강대국들에 의해 딱지국가로 전락기하가 십상이다. 북한도 그렇고, 핵을 보유한 약소국가들도 경제보복으로 밀어 붙인다.

(이슬람 사원에 법회가 있는 날. 여성들은 이방인에게 호기심이 더 많은 듯하다. 사진=윤재훈 기자)
(이슬람 사원에 법회가 있는 날. 여성들은 이방인에게 호기심이 더 많은 듯하다. 촬영=윤재훈 기자)

그러나 그들은 굳굳하게 선한 삶을 누리고 있다. 사실 이란의 젊은이들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하며 삼삼오오 모이면 국부로 추앙되며 히잡을 다시 쓰게 만든 호메이니나 그의 후계자 하메네이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근에 물가가 싼 아르메니아, 터키, 그리스 등 국가들에 많이 피신을 나와 싸구려 숙소를 떠돌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나오면 현재 상황으로 다시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기가 힘들다. 

(지중해의 강한 바람이 불어오는 아크로폴리스가 보이는 언덕에서, 이란친구와 함께. 사진=윤재훈 기자)
(지중해의 강한 바람이 불어오는 아크로폴리스가 보이는 언덕에서, 이란친구와 함께. 촬영=윤재훈 기자)

나는 아테네의 허름한 할렘가 게스트하우스에 오랜 시간 머무르며 피난 나온 이란 친구들과 참으로 다정하게 지냈다. 그들은 대부분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유럽 어느 곳으로 가서 일자리를 찾기를 원했으며, 그중에도 살만한 것 같은 32살인 아미르Amir는 이란에서 슈퍼를 두 개 운영하면서 여기서 스마트 폰으로 관리를 하였다.

(아크로폴리스가 보이는 게스트 옥상에서 이란, 알제리, 한국 친구들과 즐거운 한 때. 사진=윤재훈
(아크로폴리스가 보이는 게스트 옥상에서 이란, 알제리, 한국 친구들과 즐거운 한 때. 촬영=윤재훈 기자

우리는 때때로 게스트에 앉아 밥과 술을 나누어 마시며, 의기가 통하며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밤거리를 헤매거나 아크로폴리스 산정가를 걸었다. 아크로폴리스 건너편에 있는 낮으막한 동산에 올라가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강한 맞바람을 맞으며, 하염없이 나누었던 그 웃음소리와 선한 표정들도 잊을 수가 없다.

 

“손님은 복을 가지고 오는 사람”

(참 편안한 미소의 이란인 가족. 사진=윤재훈 기자)
(참 편안한 미소의 이란인 가족. 촬영=윤재훈 기자)

이란의 중남부, 사막 속의 고도(古都) <시라즈>를 걷다가 서로 이야기를 서너 마디 나누며 마음이 통한다 싶으면, 그들은 스스럼없이 자기 집으로 초대를 했다. 이 나라 풍습에는 ‘손님은 복을 가지고 오는 사람’으로 생각하며 살갑게 대한다.

사원에서 우연히 밤에 만난 사내는 몇마디 나누더니 다짜고짜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한다. 그는 꺼림김 없이 자신의 오토바이 뒤를 타라고 하고 불빛도 없는 길을 한참이나 달렸다. 처음에는 약간 두려움이 들기도 하였지만 무슬림사원에서 정성껏 예배를 하던 그의 모습을 본 지라, 이내 마음이 놓였다.
칡흙 같이 어두움 속에 집 몇 채 보이지 않는 조그마한 마을이 나타났다. 길에는 인기척 하나 없이 쥐죽은 듯 고요했으며 약간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희미한 불빛의 가게에서 그는 뭔가를 샀고 잠시만난 경찰관은 친근한 이웃집 사람 같았다.

(만나면 웃음 짓는 선한 가족들의 모습. 사진=윤재훈)
(만나면 웃음 짓는 선한 가족들의 모습. 촬영=윤재훈)

가족들은 처음 보는 이방인을 반갑게 맞아주며 먹을거리를 내왔다, 마치 그들의 일상처럼 가족들과 함께 간단한 음식을 먹고 이웃 마을 친구 집에 놀러가자고 했다. 그 집에 가서 보니 아마도 오늘은 부부동반의 모임이 있는 것 같았다. 한 팀 두 팀 오는가 싶더니 이내 일곱 가족 정도의 젊은 부부와 아이들이 모였다.

나는 응접실에서 DSLR 카메라를 내어 그들의 다양한 포즈의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정말 이란인들처럼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그들은 정말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한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길거리를 걷다보면 찍어달라는 사람들이 한두 사람이 아니다. 어느 날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다가 한참 만에 돌아와 사진을 찍어달라는 두 사람의 청년, 그리고 바람처럼 떠나버린다. 사진을 보자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막도시 야즈드의 전통 골목길에서. 사진=윤재훈 기자)
(사막도시 야즈드의 전통 골목길에서. 촬영=윤재훈 기자)

어느 날은 모스코 앞에 있는 바자르를 걷다가 한류에 푹 빠져 사는 열여덟 살 소녀를 만났다. 자그마한 키에 커다란 눈은 알라딘의 호리병 속처럼 깊고 그윽했다. 약간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소녀는 그야말로 페르시아인의 깜직한 미모와 특징을 한 눈에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소녀는 나에게 다음날 사막의 한가운데 있는 <야즈드>의 멋진 모습을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아득한 학창시절 어디쯤, 코스모스 날리던 어느 강둑길, 꽃봉오리 툭, 터뜨리며 나오던 그 진한 향기. 아카시아꽃 무더기로 날리며 천 리 아득한 곳으로 나를 몰고 가던 어린 시절. 흙먼지 날리며 산모롱이 돌아오던 완행버스. 그 버스를 따라 달리며 어느 오솔길에선가 잠시 서던 버스. 사각의 블루빛 가방을 들고 하염없이 걸어가던 소녀가 아득한 기억의 저편에서 걸어 나오는 듯하다.

(사막마을 공중으로 지나가는 바람을 잡아 아래로 내리는 바람탑. 사진=윤재훈 기자)
(사막마을 공중으로 지나가는 바람을 잡아 아래로 내리는 바람탑. 촬영=윤재훈 기자)

끝없이 늘어선 알라딘의 양탄자에나 나올법한 가게들. 이곳 사막의 특징을 가장 잘 살린 것 같은 미로 같은 황토빛 골목. 그 양옆으로 들어선 높은 담의 건물들, 집집마다 지붕에는 바람탑이 솟아 집안으로 시원한 공기들을 보내주었다. 때로는 수십 년 된 목공소 안으로 들어가 장인의 설명을 들으며. 페르시아의 옛 고도의 골목길로 점점 빠져 들어갔다.
 

(나히드(나나. 한국이름)의 방문부터 방안까지 한국과 방탄소년단 일색이다. 촬영=윤재훈 기자)
(나히드(나나. 한국이름)의 방문부터 방안까지 한국과 방탄소년단 일색이다. 촬영=윤재훈 기자)

소녀는 내일 자기 집으로 나를 초대한다고 했다. 아빠 엄마에게도 이미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다음 날 모스코 앞에서 우리는 만났고 잠시 후 아빠가 차를 가지고 왔다. 소녀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자기 방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했다.

(방 전채가 한국과 방탄소년단 사진, 노래가사로 채워졌다. 사진=윤재훈 기자)
(방 전채가 한국과 방탄소년단 사진, 노래가사로 채워졌다. 촬영=윤재훈 기자)

그런데 방문에서부터 방탄소년단 포스터를 붙어 있었다. 방안에 들어서니 온통 BTS 화보와 사진뿐이었다. 연예인에 빠져 사는 한국의 어느 소녀 방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노트 한 권은 스크랩으로 꽉 차 있었다.
소녀는 이런 것들을 한국으로 직접 신청 하거나, 페이스북 친구인 한국인 선생님이 보내준다고 했다. 소녀는 BTS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사랑을 얼굴이 발그레 질 때까지 토해내는데, 그 열기가 내 가슴 속까지 전이되어 오는 것 같았다,

(상이 없는 소박한 이란의 전통식단. 사진=윤재훈 기자)
(상이 없는 소박한 이란의 전통식단. 촬영=윤재훈 기자)

밖으로 나오니 어머니는 이미 저녁식사를 차려 놓았다. 밥상은 따로 없었으며 바닥에 자그마한 카페트을 깔고 그 위에 페르시아 전통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이국을 장기배낭여행하며 항상 먹는 것이 부족한데 모처럼 넉넉한 저녁 식사를 했다. 소녀의 오빠는 옆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도 한국의 여느 아이들처럼 온통 오락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한류(韓流) 속, 이란

(게스트 카운터를 보며 한국어를 공부 중인 이란 여성, 책 목차가 정겹다. 촬영=윤재훈 기자)
(게스트 카운터를 보며 한국어를 공부 중인 이란 여성, 책 목차가 정겹다. 촬영=윤재훈 기자)

다음날은 게스트 카운터에 한국말을 상당히 능숙하게 쓰는 새댁을 만났다. 학원에서 배우고 있다고 하며 저녁에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23살의 청년으로 홀로 독학으로 공부를 해서 강의를 하고 있다.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근처 가게에서 과자를 먹었다. 사진=윤재훈 기자)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근처 가게에서 과자를 먹었다. 촬영=윤재훈 기자)

교실에는 한류에 빠져 사는 몇 명의 젊은 여성과 고등학교 여학생 등 일곱 명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수업시간 내 깔깔거리며 웃었다. 수업이 끝나고는 근처에 있는 가게에서 스낵과지를 먹으며 이국인에 대한 호기심들을 서로 나눴다. 그와 다음날 만나 시라즈 시내를 구경하며 시중보다 좋은 환율로 유로를 바꿔주기도 했다.

이란의 물가는 정말 싸다. 콜택시를 불러 타고 20여분 달렸을까, 우리 돈으로 200에서 300원 정도 미터 요금이 나왔다. 이것을 주고 정말 내려도 되나, 처음에는 내리기가 미안해 한참을 망설이며 내렸지만 기사는 웃는 얼굴로 돈을 받았다.

기름값이 1리터에 80원 정도 한다. 우리나라 기름값을 검색해 보니 2299원이다. 2290원도 아니고 2300원도 아니다. 천박한 장사꾼의 숫자라 속이 다 보인다. 더 올리고 싶지만 전국에서 가장 비싼 주유소라는 오명을 쓸까봐 서로 눈치를 보고 있다고 한다.

나는 약 16개월의 여행 기간 내내 거의 로컬 버스로 움직였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인근 유럽에서 수입한 구형대형 벤츠차 택시가 많아 몇 번 이용했지만, 이란에서만은 택시를 실컷 탔다. 버스보다 더 많이 탄 듯하다. 그러나 어떤 때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미국의 제재 속에서 고통 받은 그들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이란, 이란, 되내이며 그들이 떠오른다. 악의 없는 선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던. 그러나 테헤란은 달랐다. 문명은 사람을 악하고 거만하게 만든다. 자꾸 뒷생각을 하면서 계산을 따지게 만든다.
그러나 거침없이 흘러가는 산모롱이 개울물을 보라. ‘재잘거리며 장난치며 꾸밈없이’ 흘러간다. 산등성이에 꽃 한 송이는 바람의 결 따라 흔들린다. 태초에 인간도 그랬을까? 선악과(善惡果)을 따먹기 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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