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식의 인생 바라보기⑰] 중늙은이, 고등어를 굽다

윤창식 칼럼니스트
  • 입력 2020.05.29 10:58
  • 수정 2021.02.2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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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식-수필가- 前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윤창식
-수필가
- 前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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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를 좀 알아가던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 일이다.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기일을 맞아 하얀 한지에 붓으로 쓰시는 "현고학생부군신위"라는 지방(紙榜) 글귀 중 '學生'이라는 두 글자에 유독 눈길이 갔다. 학생이 뭐지? 내가 학생인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학생이라고? 생각은 꽤 많았으나 질문은 서툴었던 시절이었고 의문의 꼬리는 꽤나 오래 지속되었다.

한참 세월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지방에 쓰이는 '學生'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즉, 벼슬하지 못하고 돌아간 사후 사람에게는 學生이라는 칭호를 붙인다는 사실을 알았고, 우리나라의 평생교육 이념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물론 영어권에도 "배움에는 나이가 상관없다"(A man is never too old to learn)라는 격언이 있다. 인간은 역시 호모 에두카투스(homo educatus 교육적 인간)임에 틀림없으나, 이는 무슨 대단한 지위 획득이나 지적 유희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기생존을 위한 본능적 욕구가 아닌가 한다.(이는 조류 새끼들의 이소離巢 장면에도 잘 나타난다.)

2

아내는 시골집에 내려가는 나에게 생고등어를 싸주면서 고등어 굽는 방법을 단단히 이른다 :

"먼저 후라이팬을 중불에 좀 달궈야 해요. 굳이 식용유는 안 넣어도 되지만 조금 넣어도 되고요. 고등어 안쪽부터 시작해서 5분 정도 구운 후 되집어서 바깥 부위도 5분 가량 구우세요. 기름이 튀길 수 있으니 신문지 따위로 덮개를 해야 해요 알았지?" (잘 나가다 왜 반말이실까? 내가 짠밥수가 얼만디?)

"한 번 노력해 볼게..." (왠지 대답에 힘이 없다.)

(배워서 남주나? 대답만 하지 말고 필기를 해라 필기를.) 마음속에 새겨들은 대로 시골집 주방에서 고등어굽기를 시도했다. 그런대로 아내의 훈육을 찬찬히 되살리면서 제법 잘 나가다가 그만 고등어살 안쪽 바깥쪽 부위의 우선순위에서 혼란이 오고 말았다. 어느 쪽을 먼저 구우라고 했지? 전화를 해봐야 하나? 인터넷을 검색해야 하나? 에라 모르겠다. 아무 데나 먼저 익어라! 나야 어차피 잡식동물이 아니던가.

그래도 아내의 마지막 강조점은 또렷이 지키려고 노력했다.

"노릇노릇해지면 얼른 불을 끄세요."

그렇지만 '노릇노릇' 색깔의 기준이 뭐지? 놀작지근? 노르스름? 노리끼끼?

오메 징한거, 배움에는 끝이 없구나! 또 하필 그 순간에 안도현 시인의 <고등어>라는 시가 생각나는 건 또 뭐야. "너에게도 조국이 있었으리" 하면서 거무스레한 고등어가 적국의 해안선으로 표류한 잠수함을 닮았다나 어쨌다나.

고등어 한 마리 구우면서 별놈의 생각을 다하다가 그만 고등어 등어리가 포탄을 맞은 잠수정처럼 포연이 자욱하다. (으째야 쓰까) 나의 첫 고등어굽기는 실패다. 늘그막에 피교육생으로서의 학습집중도가 많이 부족했나 보다.

그래도 배우고 실천하는 데에 있어 지나치게 많은 생각은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이것 또한 가치 있는 배움이 아닐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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