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채운의 스카이가든 6] 아버지 날 낳으시고

권채운 작가
  • 입력 2020.06.11 10:00
  • 수정 2020.06.1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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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채운2001년 제4회 '창작과비평' 신인소설상 당선      소설집 [겨울 선인장] [바람이 분다]
권채운
2001년 제4회 '창작과비평' 신인소설상 당선
소설집 [겨울 선인장] [바람이 분다]

엄마, 나 왔어.

신여사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큰소리로 외쳤지만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힐끗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단단히 심사가 틀어진 게 분명했다. 볼륨을 잔뜩 올려놓은 TV에서는 노란색 점퍼를 입은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이 차분한 어조로 지침을 읽고 있었다.

이 불안한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한 사람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바뀐 지 하루 만에 확진자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으니 여전히 마스크 쓰고, 손 잘 씻고, 사람 많은 데 가지 말라는 당부일 게 뻔했다.

점심은 드셨어? 뭘 시킬까? 드시고 싶은 거 없어요? 난 먹었다. 그럼 나는? 너는 굶어. 왜? 배고픈데? 그래, 집 안에만 있어보니 어떻든? 지낼 만하든?

귀가 어두운 탓이려니 하면서도 남의 말은 들으려고도 않고 당신 할 말만 하는 어머니가 신여사는 참 낯설었다. 온 세상을 멈추게 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두 달 동안 못 온 걸 번히 알면서 심통이었다. 거동이 어려운 구순의 어머니를 뵙겠다고 칠순을 넘긴 딸이 두 번 씩 버스를 갈아타며 두 시간이나 걸려서 꽃 사들고 찾아갔는데 예상치 못한 푸대접이었다.

칠순을 넘겼다고는 하지만 공짜로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도 노인이라는 의식을 하지 않고 지내왔다. TV에서 연일 65세 이상 노인은 고위험군으로 못 박고 외출을 자제하라는 바람에 두 달여를 즐겨하던 운동프로그램도 올 스톱인데다 친구들 모임은 물론이고 백화점 출입도 못했다. 외출이래야 마스크 덮어쓰고 동네 마트에서 찬거리를 사거나 기껏해야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게 다였다.
혼자 당하는 일이라면 원통했겠지만 온 세상 사람들이 한꺼번에 겪는 일이니 노인들은 그저 위에서 하라는 대로 집 안에 죽치고 있다 보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친구들끼리도 전화로만 답답함을 달래며 지내는 판이었다.

신여사 스스로도 노인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번 사태로 꼼짝없이 노인의 대열에 서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만 딸이 노인인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집 안에만 있은 지 일 년이 넘었으니 자연스레 체념이 된 듯 했다. 아니 숫제 소파에 눌어붙어 앉아서 조금도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그러니 시도 때도 없이 띠리릭, 하며 휴대폰으로 오는 안전문자에 몸이 움츠러드는 걸 어머니는 알 턱이 없다.

하기는 어버이날이 아니었으면 감히 버스를 탈 용기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아침에 동네 한 바퀴를 돌 때 만난 동네 친구도 극구 말렸다. 어머니가 혼자 지내시는 것도 아니고 아들네서 사는데 좀 더 있다가 코로나 잠잠해지고 애들 학교 가면 그때 가라고 했다.
공연히 버스 타고 다니다가 전염병 옮으면 죽는 것도 서러울 판에 장례식도 대강대강 치른다던데 다 늙은 딸이 꼭 어버이날을 챙겨야겠느냐. 그 말에 솔깃해서 주저앉았다가 벌떡 일어나 마스크 쓰고 장갑 끼고 집을 나섰던 것이다.

며칠 전에 어머니가 꿈에 보였다. 꿈이고 생시고간에 딸네 집에는 발걸음을 않던 어머니가 분홍색 정장을 곱게 차려 입고 환히 웃으면서 현관문을 들어섰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는데 새벽 2시였다. 어머니가 작별 인사를 왔던 것일까. 신여사는 그 밤을 꼴깍 지새우며 흐느껴 울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면, 아무 조건 없이 온전히 나를 사랑해 주는 유일한 사람을 영영 잃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눈물 또한 오랜만에 흘려본 것 같았다. 젊어서 남편을 잃고 시장바닥에서 맨손으로 남매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였다. 바빠서 그랬는지 다정한 말 한마디 해준 기억이 없고, 언제나 남동생 우선이었지만 그래도 차선은 딸이었던 어머니. 딸의 환갑날에 남편의 유일한 선물이라며 아무리 어려워도 팔지 않고 꼭 끼고 애지중지 했던 금가락지를 빼주던 어머니. 사진으로밖에 남아 있지 않은 아버지 몫까지 하느라 등골이 휘어진 우리 어머니.

다행히도 어머니를 돌보는 요양보호사는 정해진 시간에 와서 어머니를 돌보았다.
요양보호사 바뀌었다면서요. 맘에 들어요? 맘에 들기는, 지난번 여자가 바지런하고 싹싹했는데. 이번 여자는 뚱하니 말도 없고 통 힘을 못 써. 왜 또 그러셔. 지난번에도 맘에 안 든다고 하시더니? 멀리 사는 자식보다 요양보호사가 효자지. 효도는 요양보호사선생님이 다 하네. 선생님은 무슨 얼어 죽을 선생님이야? 아주 우스워. 복지사랑 와서는 서로 선생님, 선생님 하는 거. 뭘 가르친다고 선생이야? 먼저 세상에 나온 걸로 치면 내가 선생이게? 우리 어머니 백수하시겠다.
여전히 기백이 청청하셔. 내가 너무 오래 살지? 오래 살면 좋지 뭐. 왜, 엄마 혼자 오래 사는 것 같아요? 요즘 백세는 기본이에요. 아주 악담을 해라. 혼자 우두커니 하루 보내기가 얼마나 길고 지루한 지 알고나 하는 소리야? 이건 뭐 살아 있는 건지 죽어 있는 건지, 목숨 길어 니들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무슨 그런 말씀을…
우리가 엄마 고생만 시켜서 늘 미안하지. 죽고 사는 건 우리 소관 아니니까 괜한 걱정 마세요. 저기 뉴스 보세요. 잘 산다는 미국 사람도 수만 명이 죽어나간다잖아요. 총성 없는 전쟁일세. 근데 너는 왜 카네이션을 안 사오고 해마다 제라늄을 사오냐? 카네이션은 어머니 새끼손가락 손녀딸이 사오잖아요. 제라늄은 일 년 열두 달 꽃 피우고 좀 좋아요? 딸이 사오는 카네이션이랑 같아? 어버이 날인데?

정류장 건너편의 꽃집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어버이날 대목을 제대로 보는 것 같다. 어김없이 마스크를 쓰고 손에 카네이션을 든 사람들이 각자 부모님을 향해 걸어간다. 마스크는 정말 적응이 되지 않는다. 언제쯤 일상으로 돌아가려나. 신여사는 배차시간이 늘어져 한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내년 어버이날에는 카네이션을 한 아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내년에도 기다려 줄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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