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⑦] 죽은 자들의 도시_낙쉐 로스탐(Naqsh-i Rustam)

윤재훈 기자
  • 입력 2020.06.18 13:35
  • 수정 2020.06.2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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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의 도시_낙쉐 로스탐(Naqsh-i Rustam)

 

(왼쪽부터 아르타크세르크세스1세, 크세르크세스1세, 다리우스1세, 측면에 다리우스2세 암굴묘 순이다. 촬영=윤재훈 기자)
(왼쪽부터 아르타크세르크세스1세, 크세르크세스1세, 다리우스1세, 측면에 다리우스2세 암굴묘 순이다. 촬영=윤재훈 기자)

“죽은 자들의 도시”를 찾아 나선다. 이곳 어디쯤 역사가 기록되기도 전에 지구상에 처음으로 거대한 제국을 만들고 사라져 버린 고대 묘지가 숨어 있단다. 페르시아어로 <낙쉐 로스탐Naqsh-i Rustam>이지만, 영어로는 <네크로폴리스nekropolis, 고대 그리스어νεκρόπολις>이다. 출발부터 약간 음습한 기분이 들었다. 산 자들이 찾아가는 그 길은 따가운 태양 아래 끝없는 흙빛 벌판만 펼쳐졌다. 과연 샤한사(왕중왕)들은 이 길을 가면서 장래 자신의 죽음을 예비해 두었을까.

얼마쯤 달리다 보니 딱, 벌어진 거인의 어깨처럼 돌산 하나가 병풍처럼 펼쳐졌다. 낙쉐 로스탐, 어원을 보니 ‘낙쉐’는 ‘조각’이고 ‘그림’이란 뜻이며, ‘로스탐’은 전설 속 왕의 이름이다. ‘왕의 조각’, ‘로스탐의 부조(Relief)’ 쯤 되겠다. 로스탐은 페르두시의 『왕들의 서』에서도 고대 영웅들을 지칭하니 서로 통하겠다.

그러나 이곳은 사산제국의 몰락과 함께 역사 속에 묻혀 벼렸다. 그러다 발견된 것은 1923년 독일 고고학자 헤르츠펠트의 노력에 의해서다. 그는 이곳의 가치를 알아보고 다리우스 1세의 영묘 명문을 주조해서 연구했다. 그리고 1936년부터 39년까지 슈미트가 이끄는 시카고대학교 동양학연구소 팀과 1974년 샤바지가 이끄는 아케메네스연구소에 의해 발굴과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페르세폴리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12키로 쯤 떨어져 있다.

(아르카크세르크세스1세,크세르크세스1세,다리우스1세, 2세 순서. 촬영=윤재훈 기자)
(아르카크세르크세스1세,크세르크세스1세,다리우스1세, 2세 순서. 촬영=윤재훈 기자)

그늘 하나 가릴 나무 한 그루 없는 광활한 벌판에 내리쬐는 뙈약볕은 거대한 바위 절벽에 부딪쳐 나오는 복사열까지 합쳐 더욱 뜨겁다. 포장 아래에는 현지인들 몇 명 앉아 그들의 전통놀이인 주사위를 던지고 우리를 태우고 온 기사도 그 옆에 앉는다.

기념품 가게 주인은 오늘 장사를 포기한 듯 별 관심을 가지지 않은 관광객들을 보며 약간 늘어져 있다. 그 옆에서는 커피도 팔지만 사람들은 눈길을 주지 않는다. 우리처럼 시원한 냉커피라도 팔면 서양인들이 붐빌듯 한데 주인이 아예 의욕이 없어 보인다.

여기로 들어오는 길 입구에는 사산 왕조 시대의 영광을 보여주는 <낙쉐 라자 암각유적>이 있는데, 대관식 장면과 성직자의 활동상 등이 아주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관광객들은 먼저 전면에 있는 구릉에 올라가 4개의 왕 무덤을 사진에 담는다. 절벽에는 전면에 3개, 측면에 1개의 굴이 있는데, 모두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어지고 그 가운데에 작은 굴이 있다. 가장 후대인 다리우스 2세가 있는 측면 굴은 지금 보수공사 중이다, 그 안에 인걸들은 이미 풍화되고 흔적도 없으리라.

 

“일체의 일어나고 스러짐이 단순하다.”


“본성은 공(空)하다.”

 

왼쪽부터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크세르크세스 1세(구약 성경에는 ‘아하수에로 왕’), 다리우스 1세(구약 성경 에스라4~6장에 나오는 다리우스 왕), 다리우스 2세다(자료마다 다리우스 1세 이외의 암묘 주인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다.)

(다리우스 1세 암굴묘, 아래 전투 장면, 왼쪽에는 사산왕조 샤푸르 2세의 승리묘사 부조가 있다. 촬영=윤재훈 기자)

제국의 2대 왕인 다리우스 1세 암묘 앞에 먼저 서본다. 아무래도 가장 먼저 이 자리에 터를 잡았으니 원형에 더 가까우리라. 십자가 상부에는 가운데 아후라마즈다 신이 모셔져 있고 오른쪽에는 불의 상징인 태양이 떠 있다.

그 아래 3층의 단 위에는 보통 사람보다 크게 돋은새김 된 왕(약 2,7m)이 활을 잡고 서 있고 그 앞에 조로아스터교 상징인 불꽃 제단(불향로)이 있다. 그의 뒤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조로아스터교 상징, 그 아래 왕과 꺼지지 않는 불, 28개 속국들 사신이 그 상징과 왕을 받치고 있다. 촬영=윤재훈 기자)
(조로아스터교 상징, 그 아래 왕과 꺼지지 않는 불, 28개 속국들 사신이 그 상징과 왕을 받치고 있다. 촬영=윤재훈 기자)

 

첫째, 아후라마즈다에 대한 경배와 기도다

둘째, 다리우스 1세와 조상들의 업적에 대한 찬양이다

셋째, 이곳에 새겨진 부조에 대한 설명이다.

 

다리우스 황제가 통치했던 28개국 사신들이 그 아래에서 황제 제단을 떠받들고 있다. 고대 시절에도 정복자들의 권위와 위세는 대단했나 보다. 재단 밖에는 2개국 대표가 더 표현되어 있다. 제단의 가장자리 기둥머리에는 포효하는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다. 제단 양쪽에는 우리가 페르세폴리스에서도 많이 보았던 불사친위대가 호위하고 있다.

올려다보니 너무 높아 고개가 아프다. 자연암반을 저렇게 깊게 파고 들어가려면 석수장이는 밤마다 얼마나 팔이 저렸을까? 저 절벽 끝에 요행히 걸터앉아 수천만 번의 정질을 했으리라. 고대의 역사를 건너 뛰어온 인류문화유산이라고 하지만 단 한 사람의 욕망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땀을 바쳐야 하는 그 이데올로기의 댓가가 민중에게는 너무나 크게 다가온다.

제단 위 오른쪽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 다리우스를 사후세계로 안내라도 하는지 수천 년 외롭게 떠있는데, 이제는 세월 속에 마모가 심해 퇴락한 그들의 역사만큼이나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은 크세르크세스 1세 영묘이다. 명문은 페르시아어와 엘람어 설형문자로 이루어져 있다. 상단부 부조의 폭은 10,9m, 높이는 8,5m인 직사각형 형태다.

(중앙부에 궁궐 모양으로 치장된 석묘 입구. 촬영=윤재훈 기자)
(중앙부에 궁궐 모양으로 치장된 석묘 입구. 촬영=윤재훈 기자)

중앙부는 가장 넓으며 기둥과 지붕 형태를 갖춘 궁전 모습으로 왕이 사후 영생을 누릴 궁전인 모양이다. 4개의 기둥이 있고, 기둥머리는 등을 맞댄 쌍둥이 황소가 받치고 있다. 기둥의 높이는 6,22m이고 기둥 사이 간격은 3,15m다. 궁전은 다섯 칸으로 폭이 18,57m에 이른다. 기둥 위에 톱니 형태의 처마와 슬라브 형태의 천장이 있다. 궁전의 높이는 7,63m에 이른다. 전체적인 모습이 페르세폴리스의 타차라 궁전과 같은 모습이다.

가운데 문의 폭은 1,4m이고 높이는 2m 쯤에 이른다. 안으로 들어가면 방 모양이 세 개 있으며 각각 세 개의 묘실이 있으니 총 9개다. 내부 바닥에는 물길이 있어 묘실로 물어 들어가는 것을 차단했다. 묘실의 깊이는 1,05m, 길이는 2,1m이다.

연구자들은 이곳을 다리우스 1세의 가족들의 묘로 보고 있다. 그의 부모와 두 아내가 함께 있는데, 두 아내 중 하나는 키루스 대제의 딸인 아르티스투네아이고, 또 하나는 크세르크세스 1세의 어머니 후타오사이다. 그리고 크세르크세스 1세를 제외한 자식들이 함께 묻혔을 것으로 추정한다. 가족묘 내부 공간은 크기는 길이 18,72m, 폭 2,13m, 높이 3,7m이다. 그런데 하단부는 깨끗하다. 마치 공(空)과 무(無)라도 상징하려는 듯이 아무 무늬가 없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인 기원전 시대에 어떻게 바위 속에 이런 큰 굴을 파고 밖에는 저런 조각까지 하였는지 볼수록 대단하기만 하다.

페르시아 제국이 망하고 파르티아 제국을 거쳐 새롭게 탄생한 <사산조 페르시아>는 아케메네스 왕조를 계승하며 페르시아 후예를 자처했다. 그래서 페르시아 대왕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황제들의 무덤 아래쪽 벽면에 사산조 왕들의 승리와 왕실의 행사장면들이 묘사하기 시작했다.

(사산왕조의 샤푸르 황제에 붙잡힌 로마 발레리아누스 황제와 조공을 받치는 필립황제. 촬영=윤재훈 기자)
(사산왕조의 샤푸르 황제에 붙잡힌 로마 발레리아누스 황제와 조공을 받치는 필립황제. 촬영=윤재훈 기자)

다리우스 1세 석묘 좌측 아래에는 높이 7m에 이르는 부조가 있는데, 기원전 260년 사산왕조 샤푸르 1세(Shapur, AD239~270)가 동로마제국과의 에데사의 전투에서 로마의 발레리아누스(Valerianus) 황제를 사로잡는 대승을 한다. 페르시아인의 긍지와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듯 했겠다.

발레리아 옆에 서 있는 사람은 시리아 출신의 로마황제 필립이다. 필립 이전의 로마 황제 고르디안 3세는 샤푸르 1세와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 후 황제가 된 필립은 사산조와 평화협정을 맺고 전쟁 보상금으로 황금 50만 동전을 주었다고 샤푸르 1세의 비문에도 새겨져 있는데, 실지 부조를 자세히 보며 샤푸르 황제에게 뭔가를 건네고 있다. 그 시절 위세라도 과시하는지 황제의 왕관 위에 머리카락을 보호하는 둥근 코림보스(Korymbos)가 유난히 크다.

지구상에서 가장 찬란했다는 대제국, 로마.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누어 진 후에도 지중해에서 해가 질 줄 몰랐던 그 제국이 이렇게 초라하게 몰락의 길을 걸어간 현장을 생생하게 볼 수가 있다. 그 부조 아래에는 이처럼 기록되어 있다.

 

“발레리아누스는 유럽 부족 29개로 구성된 군대와 함께 전투에 임해 알레하와

에데사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다. 우리는 완벽한 승리를 거두고 발레리아누스를

포로로 잡았다. 우리는 그의 수많은 장군들, 원로원 의원들, 고위 장교들을

전쟁포로로 잡아 페르시아 영토 각지로 유배 보냈다.”

 

『로마제국 쇠망사』를 집필한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이 부조상을 보고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황제를 상징하는 자주색 옷을 입은 채 사슬에 묶인 발레리안은

몰락한 귀족의 모습으로 비춰졌으며, 페르시아왕 샤푸르는 로마 황제의

목을 발판삼아 말에 올라탔다. ”

 

(다리우스 1세와 카바 신전. 촬영=윤재훈 기자)
(다리우스 1세와 카바 신전. 촬영=윤재훈 기자)

다리우스 1세 암묘 앞에는 조로아스터교의 <카바 신전>이라고 알려진 카바예 자르도쉬트(Kaba-ye-Zardosht)라고 하는 불의 신전이 있는데, 이견들은 있다. 카바는 메카에 있는 신성한 돌 카바와 같은 말이며 왕의 책이라는 ‘샤나메’에 나오는 말이다. 이 건물의 한 벽면에는 사산조 페르시아 왕 샤푸르 1세와 로마황제 발레리아누스와의 전쟁기록도 남겨져 있다.

기원전 5세기에 만들어졌으며 이것은 다리우스 1세 때 페르시아 제국의 출발지인 ‘파사르가대’에 있는 구조물을 본떠서 만든 것이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암굴묘, 아래쪽에 사산왕조의 호르모즈드2세의 승리를 묘사한 부조. 촬영=윤재훈 기자)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암굴묘, 아래쪽에 사산왕조의 호르모즈드2세의 승리를 묘사한 부조. 촬영=윤재훈 기자)

나머지 암굴묘 아래에도 부조들이 있는데, 맨 왼쪽에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암묘가 있다. 그 아래쪽에는 사산왕조의 호르모즈드 2세(Hormozd, AD 302~309)의 승리를 묘사한 부조가 있다.

다리우스 1세 옆에 있는 이집트를 정벌한 크세르크세스 1세 암묘 아래에는 바흐람 2세(Bahram, AD274~294)의 두 번에 걸친 전승를 축원하는 부조가 있다.

(크세르크세스 1세 암굴묘, 아래 부조는 바흐람 2세의 두 번의 전승를 축원. 촬영=윤재훈 기자)
(크세르크세스 1세 암굴묘, 아래 부조는 바흐람 2세의 두 번의 전승를 축원. 촬영=윤재훈 기자)

마지막으로 측면에 있는 다리우스 2세 암굴묘 왼쪽에는 사산 왕조시대의 나르세왕(Narse, AD 293~302) 부조을 새겼는데, 왕은 바흐람 3세를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했다는 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새긴 부조라고 한다. 사산 왕조의 신인 아나히타 여신에게서 다이아뎀(Diadem,머리를 묶은 끈, 왕권 상징)을 받고있는 모습이다.

(다리우스 2세 암굴묘 왼쪽 사산왕조시대의 나르세왕 부조. 촬영=윤재훈 기자)
(다리우스 2세 암굴묘 왼쪽 사산왕조시대의 나르세왕 부조. 촬영=윤재훈 기자)

부조들을 쭉 구경하다보니 의문이 하나 따라온다. 220년 동안 유지되었던 페르시아 제국 대왕들의 거대한 암굴묘 아래, 그 배에 달하는 425년의 왕조를 이은 사산조가 왜 굳이 아케메네스 왕조의 전통을 이으려고 했을까?

알렉산더 대왕이야,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를 함락시키고 거대한 땅을 물려받아 하루빨리 그 제국의 국민들을 흡수하고 싶어서 자신을 ‘페르시아 계승자’라고 부르며, 자신들이 죽였던 다리우스 3세의 장례식까지 성대하게 치러주었을 텐데, 그리고 그의 딸 스타데이라와 결혼까지 했을 텐데. 굳이 사산조의 왕들은 자신들의 부조까지 그렇게 조그맣고 초라하게 새겨 넣어가며 사라진 왕조를 이어 받으려 애를 썼을까?

부조들은 하나 같이 인류사에 가장 큰 불행과 무지의 산물인, 전쟁 모습만 담고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악한 것인지, 유사 이전부터 인간이라는 동물이 이 땅에 출현한 뒤로는 전쟁과 살육이 그칠 날이 없었다. 잔학한 인간의 속마음을 들여다 본 듯하여 불편하다.

(알렉산더군과 전투부조. 촬영=윤재훈 기자)
(알렉산더군과 전투부조. 촬영=윤재훈 기자)

제국의 왕들도, 무궁할 줄로만 알았던 페르세폴리스도, 이제는 다 부서지고 풍화되어 잔해만 뒹군다. 그러나 그 문명들이 유라시아의 실크로드를 타고 가면서 아시아의 젖줄이 되었고, 이 땅의 박물관까지 흘러 들어와 숨을 쉬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문명은 그렇게 오고감으로서 내밀한 교류를 하였으며 이 땅 위에 더욱 풍요로운 꽃을 피워 왔다.

 

죽음에 대한 예찬인 <낙쉐 로스탐>은 지금도 우리 속에 살아남아 많은 예술 작품들에게 영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소설에서는,

 

(Pahor 소설) , Boris Pahor 의 1967 년 자서전 소설
(구리 소설) , 바실 구리에 의해 1980 고딕 소설
폴리스 (호로비츠 소설) , 앤서니 호로비츠의 2008 'Power of Five'소설
폴리스 판사 (Dredd 판사) 2000 년 AD 판사 Dredd 스토리와 판사 Dredd Megazine
Dan Abnett의 Gaunt 's Ghosts 시리즈 의 세 번째 소설
콜롬비아 소설가 Santiago Gamboa 의 2009 소설 등이 있다.

영화 및 TV, 게임 등으로 아래와 같이 제작되었다.

(브라우저 게임) Adobe Flash에서 구현 된 브라우저 게임
폴리스 ( 1970) 이탈리아 영화
폴리스 ( Necropolis , 1987) 영화 보름달 기능
(비디오 게임) 2016 년 비디오 게임
1997 년 비디오 게임 Fallout에서 ghouls로 채워진 도시

또한 음반으로도 제작되어 우리에게 사의 예찬에 대한 감흥을 주었다.

Records, 미국 음반사
(앨범) 폴란드의 죽음의 메탈 밴드 Vader의 2009 앨범
Deflorate "의 "Black Dahlia Murder"의 노래 인 "Necropolis"

* 입장료는 외국인 200,000리알이고 현지인은 30,000리알인 경우가 많다.
유적지 입장료는 이란 물가 대비 비싸지만 크게 부담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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