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식의 인생 바라보기⑱] ‘도깨비여인’을 그리며

윤창식 칼럼니스트
  • 입력 2020.06.17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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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식-수필가- 前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윤창식
-수필가
- 前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Y씨의 고향집은 부친이 열여섯 나던 해에 지었다고 한다. 80년이 훨씬 넘은 집, 험한 세월을 견디다 보니 성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일곱 형제나 되는 처지라 당연히 Y씨의 단독 집이 아니지만, 시골집은 "최다 시간 점유자 소유권 인정법"(이런 법률도 있나?)에 따라 거의 그의 소유가 되어가는 중이다.

Y씨는 정년퇴직하고 고향에 내려와 생활한 지 석 달이 되어간다. 올해 서남부지방에는 유독 바람이 많이 불어 녹이 슨 지붕 차양이 덜컹거려 과감히 교체를 감행하기로 하였다.

물받이 차양막 교체 시공은 마침 건축 리모델링을 하는 초등학교 동무에게 맡기게 되었다. 아침 7시가 막 넘어서 도착한 친구는 차양 작업은 말할 것도 없고 삐걱거리는 대문하며 지하수 수도꼭지 배관과 포도나무 지지대 등 집안 곳곳의 허드레 부분들을 말없이 수리해주는 것이었다.

Y씨는 "성건지게 일을 너무 잘 해주니께 고맙네!"라는 말도 자꾸 꺼내는 게 좀 쑥쓰러워 옛날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들쑥들쑥 꺼내며 친구를 위로하고 싶어졌다.

"자네 동네 박연심이는 잘 있다는가?"

"연심이? 응 지금 경기도 B시에 살고 있제 아마. 그란디 으째 연심이 안부를 묻는가?"

"아니 그러니께 뭣이냐. 연심이가 흥부놀부전에서 도깨비로 분장하고 나왔었지."

"그 소리가 뭔 소리랑가? 나는 통 기억이 없네."

"자네 기억 안 나는가? 광주에서 내려오신 김자옥 선생님께서 신식 교육 시키신다고 어린이날에 맞춰서 흥부놀부 연극제를 마련하셨잖은가."

"그랬던가?"

"연심이는 놀부부부가 톱질한 박 속에서 춤추듯 튀어나온 도깨비였다네. 우리 선생님은 도깨비도 아무나 시켜주지는 않으셨지."

"나도 연심이 만난 지가 하도 오래 돼서 가물가물하구만..."

"그럴 것이네."

60여년 전 어린이날, 흔하지 않은 검은 도깨비 복장을 하고 운동장 구령대 위에서 춤을 추던 '도깨비여인'을, Y씨는 불현듯 한 번 만나보고 싶어졌다.

도깨비여인은 그 아련한 봄날 연극제에서 놀부로 나온 Y씨를 지금도 그날처럼 겁나게 겁먹게 할까? (Y씨는 남쪽하늘을 올려다보며 난생 처음 마음 속 성호聖號를 그어보았다.)

 

사진=윤창식
사진=윤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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