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⑧] 도미토리_가난한 배낭 여행자들의 천국1

윤재훈 기자
  • 입력 2020.06.30 11:08
  • 수정 2020.07.11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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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토리(Dormitory)_ 가난한 배낭 여행자들의 천국1

 

“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직 꿈속에만 있어라.”
- 이상화 시 <나의 침실로>

 

(다국적 인들이 모인 탸슈겐트 게스트정원에서. 촬영=윤재훈 기자)
(다국적 인들이 모인 탸슈겐트 게스트정원에서. 촬영=윤재훈 기자)

빛바랜 커텐, 세로 2미터 가로가 1미터 정도의 간이침대들이 10여개 이상 벌집처럼 이 층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약간은 썰렁하고 어둑한 방, 어쩌다 석양 무렵이면 작은 창으로 노란 햇볕이 들어와 이층 침대 모서리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앞사람의 숨소리나 몸을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올 듯하다. 안에서는 발소리를 낮추고 대화를 하지 않으며 잠만 자고 나오는 것이 예의이다. 부스럭거리는 포장지소리가 들리는 짐정리는 낮에 하는 것이 서로 편하다. 이야기는 밖에 응접실이나 작은 테라스에서 한다. 잘 찾아다니다 보면 부엌이 있는 집을 구할 수도 있다.

오후 무렵이면 가난하고 배고픈 배낭 여행자들이 모여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낯설은 대화 속에서 호의를 나눈다. 그러다 의기가 통하며 밖으로 나가 간단한 2차 정도를 하고 나잍마켙(야시장)을 헤매거나 이국의 번화가를 쏘다닌다.

더운 나라의 여행지에서는 약간의 냄새도 감수해야 한다. 낯선 이국에서 그나마 이런 저렴한 숙소에서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피곤한 내 한 몸을 누일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행복이다. 커튼만 내리면 몸을 뒤척이기에도 좁은 장소지만 나만의 밀실이 된다.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 가려는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 수밀도의 네 가슴으로 이슬이 맺히도록 달려오너라.
- 이상화 시 <나의 침실로>

 

간간히 그 안에서 장기여행자들을 만난다. 페키지나 부유한 여행자들이 이렇게 좁고 단체로 혼숙을 해야 하는 불편한 곳에 올 리가 없다.

 

타일랜드, 치앙마이 게스트하우스 풍경

(빠두(Gate문) 치앙마이 해자에서. 촬영=윤재훈 기자)
(빠두(Gate문) 치앙마이 해자에서. 촬영=윤재훈 기자)

해가 질 무렵이며 담에 작은 차가 붙고 알전구를 반짝이며 커피를 팔거나, 칵테일을 파는 작은 카페가 문을 연다.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마을의 한 가운데 작은 공터가 있고 해가 지면 마을 주민들이 하나 둘 나온다. 미얀마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많아 근처에 작은 미얀마 사원도 있다. 워낙 더운 나라이다 보니 사람들이 주로 밖에 나와서 논다.

언젠가 우리의 시골에서 했던 사물놀이처럼 그들의 전통 악기를 울리며 마을을 한 바퀴 도는 행사에 초대되어 함께 집집마다 돈 적이 있다. 그들의 전통 사찰에서 예배가 있던 날 함께 참석해 스님도 뵈었다. 태국이나 미얀마 등 위빠사나의 사원들의 스님은 그야말로 경배의 대상이다.

(아침 탁발 나선 젊은 스님들, 빠이Pai에서. 촬영=윤재훈 기자)
(아침 탁발 나선 젊은 스님들, 빠이(Pai)에서. 촬영=윤재훈 기자)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그날 스님에게 드릴 밥과 음식들을 미리 준비하고, 집안 사정에 따라 온갖 과일과 과자까지 준비한다. 심지어 그날 공양한 시주금까지 미리 빼둔다. 소승불교의 스님들은 고기도 먹는다. 부처님 시대 모든 먹거리가 부족하니 어찌 이것저것 가릴 수 있었겠는가?

밖에서 탁발을 하러 오신 스님 기척이 나면 맨발로 뛰어나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두며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조심히 공양을 두 손으로 올린다. 스님을 공경하는 그들의 자세는 옆에서 보는 사람가지 경건하게 만든다.

이 경배의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대부분 마을 한 가운데 있는 절에서 날마다 스님들이 사시는 살림살이를 보며 저절로 울어 나왔을 것이다. 현재 한국 스님들의 위상과는 비교도 안 된다. 허구한 날 돈과 도박, 주지 자리에 찌들려 사는 한국의 사판(事判)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유럽여행자들과 마당에서 한 때. 촬영=윤재훈 기자)
(유럽여행자들과 마당에서 한 때. 촬영=윤재훈 기자)

게스트 하우스 한 가운데는 커다란 열대 나무 한그루가 서서 종일 뜨거운 햇볕을 가려준다. 4개의 좁은 방이 있고 저마다 3개의 침대가 2층으로 누워 있는데, 거의 공간이 없다. 마당으로 나오면 옆 벽에 허름한 부엌이 있는데, 가스불도 없으니 거의 이용하는 사람이 없다.

대부분 스쳐가는 인연들이지만 가끔씩 장기 투숙자도 있고, 동병상련의 유대도 싹튼다. 뚱뚱한 여주인은 사람이 좋아 항시 웃으며 만사형통이다. 방 안은 너무나 좁고 덥다보니 항상 조그만 마당에 모여 논다. 옆에서는 열사의 모기가 왱, 왱, 거리며 호시탐탐 피를 노린다. 병맥주를 들고 마시거나 의기가 통한 몇 명은 싸구려 양주를 희석해서 마신다. 안주는 변변치 않다.

나는 가끔 코펠과 버너를 내어 인근에 있는 <딸랏(재래시장) 치앙마이>에서 남국의 풍성한 야채와 고기, 카우니여우(찹쌀밥, 한국 찹쌀보다 약간 작음)을 사와서 요리해서 먹는다. 가끔씩 기운이 통하면 같이 먹는다.

(게스트 오너와 유럽여행자. 촬영=윤재훈 기자)
(게스트 오너와 유럽여행자. 촬영=윤재훈 기자)

왁자지껄하게 마당에 앉아 서로의 고국에 대한 향수를 나누다 분위기가 익으면, 몰려나가 술을 마시거나 밥도 먹는다. 국적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프랑스에서 여기까지 자전거를 타고 온 짐과 토니, 세르비아에서 암벽등반을 즐기기 위해 왔다는 31살의 산악인 청년, 자그마한 여자 혼자 몸으로 당돌하게 중국에서 여기까지 자전거를 타고 온 팅웨이, 여행 중에 만나 연인이 되었다는 프랑스의 화가 제인과 독일에서 온 마크, 손수 바느질을 해서 옷을 꿰매 입어가며 천천히 움직이는 독일인 여행자, 스페인에서 왔다는 청년은 며칠 부산하게 마당을 왔다 갔다 하더니 조그만 치앙마이 아가씨를 사귀어 오래 눌러 앉을 듯하다.

아침에 나오다보니 도미토리 바닥에 브래지어와 팬티가 던져져있고, 2층 침대 위에 누군가 둘이서 알몸으로 자고 있다.

 

세계 배낭 여행자들의 천국, <빠이(Pai)> 게스트 하우스

 

(가자, 어서가자, 안개 낀 빠이강을 건너, 이 한 몸 누일 곳으로. 촬영=윤재훈 기자)
(가자, 어서가자, 안개 낀 빠이강을 건너, 이 한 몸 누일 곳으로. 촬영=윤재훈 기자)

나무로 만든 방갈로 독채는 대나무 침대가 두 개나 놓여있다. 가격이 저렴해서 좋다. 아무런 짐도 없고 바닥은 흙이니 더없이 소박하고 건강한 집이다. 앞으로는 빠이강이 흘러가 맥주 한 병 놓고 해가 질 때까지 테라스에 앉아 저녁놀에 빠질 수도 있다. 날마다 이곳에서 기타를 치고 맥주를 마시고 가는 머리칼이 긴 외로운 현지인도 있다.

마당은 온통 열대나무 천지다. 바나나 나무에서는 커다란 꽃이 피는가

싶더니 바나나가 나날이 굵어간다. 태국의 산하에는 바나나는 너무 흔해서 먼저 본 사람이 그냥 따 가면 된다. 이렇게 자연이 익혀준 바나나는 주로 코끼리 먹이가 된다. 행길에는 깨진 열대 과일들이 널려있다. 올려다보니 아스라한 나뭇가지 위에 열매들이 매달려 있다. 멍 때리고 걷다가 저것에라도 맞으면, 끔직 하겠다.

방갈로 앞에는 자그마한 화덕이 있다. 며칠 전 이곳에서 우연히 한국인 아가씨 두 사람을 만났다. 우리는 금방 의기가 통해 저녁에 모여 고기를 구워먹으며 이국에서 느꼈던 서로의 질감을 나누었다.

(리서족 전통복장을 한 마이와 알리마. 촬영=윤재훈 기자)
(리서족 전통복장을 한 마이와 알리마. 촬영=윤재훈 기자)

며칠 전 딸랏(재래시장)에서 리서족 여인을 만났다. 이 인근에는 타일랜드에서 사는 다양한 소수민족 중 하나인 <리서족>이 많이 있다. 옆자리에 않는 노란 승복의 위빠사나 스님들은 닭고기도 맛있게 먹는다. 30대 초반의 그녀는 일본인 남자가 사준 집에서 산다. 그러나 한 번 일본으로 떠나갔던 그는 다시 오지 않는단다. 그녀는 그의 후배의 동생인 스무 살 청년과 그 외로움을 나누며 사귀고 있다.

금방 그들과 친해지고 집에 놀러갔다. 그들의 전통음식을 해서 먹으며 밤새 놀기도 했으며 마을에 한 개 뿐인 웨스턴 클럽에 가서 맥주를 시켜놓고 음악을 듣기도 했다. 어느 날은 빠이 강에서 돌에 붙은 파란 파래를 때어 머리띠와 손목시계를 만들어 차고 어린 애들처럼 환하게 웃던 그 모습이, 마치 선계(仙界) 속인 듯 강물결과 애돌았다. 어느 날은 리서족들이 가끔씩 가는 유원지에 갔다, 작은 하꼬방이 하나 있었으며 실개천 같은 폭포가 내리기도 하였다.

인근에는 그녀가 태어나고 부모가 사는 마을이 있으며 그곳에서 축제가 있다고 하여 함께 갔다. 여인네들이 마을의 전통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포커게임도 하고 놀랍게도 옛 시절 우리의 시골 장터에서 흔히 보았던 뽑기도 있었다. 그 후 언제가 그 마을을 다시 한 번 들렸다. 어렴풋이 그 녀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외로운 마을, 빠이 들판을 지나며. 촬영=윤재훈 기자)
(외로운 마을, 빠이 들판을 지나며. 촬영=윤재훈 기자)

한 번은 오토바이를 타고 산모롱이를 돌아오다 검문소를 만났다. 경찰관은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세 사람이 지키고 있는데, 낮술을 즐기고 있었다. 그 중에서 상관은 많이 취한 듯했다. 과거 공수특전단 같은 그런 부대에서 근무했나 보다. 그는 수도 없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낙하산을 탔다고 무용담을 자랑했다. 한 눈에 봐도 그의 몸은 날렵하게 생겼다. 그와 의기가 투합하여 오후 내내 같이 마셨다. 이따금 검문소 앞으로 사람들이 지나가지만 그들은 단속보다는 그냥 마을 사람들끼리 안부를 나누는 것 같았다.

밤이 이슥해 지는 시간 출발했다. 이 나라는 오토바이 타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 음주 단속 같은 것은 없는 듯했다. 언제부터 내려왔는지 안개가 점령군처럼(기형도의 시) 주위를 하얗게 감싸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조심히 가라고 당부했다.

고갯길을 따라 샛길 같은 갓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그만 모래가 있었는지 앞으로 꼬꾸라지고 말한다. 왼쪽 어깨를 바닥에 찧었는지 약간 아파왔다. 그렇게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데, 어두운 안개 속에서 두런두런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바나나 한 둥치가 얼마나 큰지, 신의 축복이시다. 촬영=윤재훈 기자)
(바나나 한 둥치가 얼마나 큰지, 신의 축복이시다. 촬영=윤재훈 기자)

다가오는 할아버지 손에는 낫이 들려 있었고, 할머니의 손에는 커다란 칼이 들려있었다.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잠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에게 뭐라고 지껄여 대는데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잠시 주저앉아 상황을 짐작해보니 늦은 농사일을 끝내고 지금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러다 내가 주저 않아 있으니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

백년감수를 하고 그 경찰관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금방 내려왔다. 잠깐 나를 확인하더니 지나가는 차를 붙잡아 뭐라고 하더니 오토바이를 차에 싣는다. 아마도 나를 태워다 주기로 한 모양이다. 이국에서 잠시 만나 술을 나눈 사이인데, 그와 나는 그사이 어떤 조응이 있었을까.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사내이다. 빠이를 생각하면 맨 먼저 그가 떠오를 것 같다.

다음 날 이곳에도 보건소 같은 것이 있다고 하여 찾아 같다. 그런데 의사는 없고 간호사만 있었다. 하도 미덥지가 않아 그냥 나왔다. 병원에 가려면 치앙마이까지 가야만 했다. 의료보험 같은 것도 없으니 병원비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차라리 이 지역에는 온천이 많으니 거기로나 가면 치료가 될까? 요금도 그리 비싸지 않다. 커다란 코끼리들이 앞발을 들며 코를 치겨 세우는 농원을 지나 찾아간 리조트온천은, 하루에 100B(4,000원)이었다. 정원은 놀랄 만큼 넓었으며 숲이 잘 조성되어 있었고 간간이 나무집 숙소들이 있었다. 야자수 아래 커다랗게 조성된 야외온천은 온종일 나 혼자 차지다. 들어갔다 나왔다 종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며 격일로 한 달 정도를 그렇게 하니 좀 우선했다. 피부도 덩달아 좋아졌을까?

빠이는 물가가 저렴하다, 한적한 풍경은 아름답기보다는 외려 고적하다. 그래서 여행자들이 많이 오나? 밤이면 메인도로라고 할 것도 없는 중앙도로에 매일 나잍 마켓(야시장)이 선다. 나이든 서양여행자들은 이 풍경에 반했는지 아예 저택들을 얻어놓고 현지인들과 산다. 한국인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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