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그레이'를 꿈꾸는 지성언을 만나다 (1)

허희재 기자
  • 입력 2020.07.03 14:42
  • 수정 2021.06.0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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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그레이'

꿈꾸는 지성언

 

(촬영=이모작뉴스 허희재)
(촬영=이모작뉴스 허희재)

‘그레이트 그레이’는 나의 워너비

  현재 벤처기업 공동대표, 중국통 전문가, 작가, SNS셀럽, 모델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스스로는 본인을 소개할 때 어떤 타이틀로 불려지고 싶은가

  ‘지 셀럽’ 이라고 불러주면 좋을 것 같다. 그냥 유명한 사람이 아니고 정말로 그 사람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선한 영향을 받는 진정한 의미의 셀럽이면 좋겠다. 근데 요즘은 늬앙스가 달라서 연예인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냥 작가로 불리는 것도 그렇고 100세 시대에 은퇴 후에 나름대로의 한 길을 열어 보여주는 사람이고 싶다.

‘그레이트 그레이’라는 것도 내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나도 워너비이다. 진짜 멋있고 위대하기까지 한 노년. 그것을 꿈꾸는 거고 먼저 보여준 사람도 없으니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미에서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고심 끝에 정한거다. 책을 낼 때도 수많은 제목이 있었는데 출판사에서도 그레이트 그레이로 하자고 하더라.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나는 이미 그레이트 그레이로 상표 등록도 해놨다.

"우리는 경기에서 꼭 1등일 필요는 없지 않나"

  직장생활 '금수저'로 30년 동안 타고 있던 코끼리 등에서 내려와 높이 뛰는 벼룩으로 성공적 안착을 했다

  코끼리 등에서 떨어져 보니 내가 일개 벼룩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모두가 벼룩 아니냐, 정말 뛰어봤자 벼룩이기 때문에 코끼리 등을 다시 쳐다보지 말고 벼룩으로 어떻게 멋진 인생을 살것인가가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쉽게 얘기하면 눈높이를 낮추는게 될 수도 있고 목표를 낮게 잡는것이 될 수도 있다. 목표 자체가 없고 매일매일의 소확행 속에서 그것이 합쳐지면 행복한거고. 인생이라는 2막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연극과 같은 것이니까 내일 당장 끝나더라도 오늘 즐거웠으면 내 인생은 행복한거고 성공인거다. 내가 과거에 뭐였고 얼마나 높이 올라갔었고 그야 말로 추억팔이만 가지고 살 수는 없다는 거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앞으로 20년, 30년을 소비 일변도로만 살기는 너무 길다. 

모든 사람이 30년이상 직장 생활을 했으면 나름대로 뭔가의 노하우가 쌓여있을 거다. 그런 것들을 내가 어떻게 은퇴 후에 녹여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은퇴 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뭔가를 준비 할 수 있다. 그안에서 스페셜리스가 되는 사람이 있고 대강 봉급이나 받으며 언제 짤릴까 두려워 하면서 다니는 사람이 있다. 준비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은 벼룩이 되었을때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 자체가 너무나 차이 난다. 나는 중국어도 모르고 중국에 가서 미친듯이 배우고, 중국 음식 대해서도 월급을 다 써가며 배우고 한 것들이 결국 밑천이 되어 중국어교육업체에 스카웃이 된거다.

연봉으로 보나 거기에 안갈 사람인데 인턴으로 간 것을 보고 사람들이 저 사람 재밌다 그렇게 봐 주는거다. 스토리로 봐줄만 할 정도로 낮춰야 되는 거다. 그것도 써먹을게 있어야 낮출 수 있는 거고. 현역에 있을때 준비한 사람과 아닌 사람은 차이가 있다. 현재 직업이 인생2막에 쓸모가 없다 싶으면 새로운 것을 준비 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4차 산업혁명시대가 오고 있다. 거기에 대해서 30년 경험을 가진 사람은 없다. 모두 같은 출발선상에 서 있는 거다. 어떤 산업에서는 내가 선구자가 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우리는 젊은 세대가 갖지 못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지 않나, 실패와 성공의 경험 등 어쩌면 충분히 경쟁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우리는 꼭 1등일 필요는 없지 않나. 젊은이는 1등을 해야 겠지만. 그러면 경기에 임하는 자세도 달라진다.

(사진=great_grey 인스타그램)
(사진=great_grey 인스타그램)

"다 내려 놓으니까 오히려 더 올려주더라"

  중국 유학생 6명이 시작한 벤처기업 차이나다가 3년만에 매출 400% 직원 100명이 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연봉은 많이 올랐나

  회사는 성장했지만 연봉은 성장을 안해도 되지 않나. 처음에 센터장으로 합류했는데 창업멤버중 하나가 나 때문에 승진에서 밀리는 거라면 안하겠다고 했다. 그런 말을 하면서 너무 좋더라. '승진 안시켜줘도 돼요, 나 대신 저 친구 승진시켜주세요'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언제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이게 포지션이 달라지고 인생관이 달라지다 보니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었다. 내가 공동대표, 회장이 되고 싶은 생각을 가지면 그런 얘기를 못했을거다. 일은 하되 그냥 고문으로 있을테니 저 친구를 센터장에 앉혀라 저 친구를 부대표로 앉혀라 했다. 돈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연봉이 얼마나 오르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스톡옵션도 있는데 그게 언제 얼마나가 되고 그런 것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중에 손자한테 줄 용돈이 더 생기는 것 정도. 사실은 목표가 달랐다는 거다. 난 거기에서 꿈을 펼치고 젊은 사람들과 호흡하고 새로운 도전으로서 기회를 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내가 다 내려 놓으니까 공동대표로 오히려 더 올려주더라.

(사진=great_grey 인스타그램)

  인스타스램을 보니 출근룩 사진이 멋지다. 촬영 담당이 따로 있나

  헬로젠틀(중년 패션 에이전시) 권정현 대표가 아침마다 찍어준다. 어느 날 차이나다 을지로점이 입주해 있는 위워크 사무실에 권 대표가 찾아왔다. 엘리베이터에서 오가다 자주 봤는데 멋있어서 찾아왔다고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더라. 그 뒤로 아침 출근길에 만나 사진을 찍고 인스타에 같이 올린다.

  전문 모델 인스타그램 같다

  인스타그램은 나의 착장을 보여준다는 컨셉으로 하는 것이라 그렇다. (함께 나온 부인의 대답) 모델 활동은 정말 조금인데 너무 모델인 모습만 부각 되어 불만이다. 사진들이 너무 전문 모델인 것 처럼 보인다고 얘기하면 내가 모델 일하는 것을 싫어해서 그런다고 한다. 난 남편이 다른 것에 좀 더 비중을 두고 그것을 잘하는 옷 잘 입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전문 시니어 모델로 비춰지는 것 보다는.

“시니어 모델이 아니라 롤 모델로 불러주길 바란다

  시니어의 긍정적인 모습이 너무 외적인 것에만 치중되는 것은 아닌가

  그래도 외모는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결국은 기운이다. 외모가 나타나는게 꼭 옷만 잘 입는 것만은 아니지 않나. 그야 말로 피부도 좋아야 하고 풍겨나오는 이미지가 중요하다. 그 이미지는 하루아침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내적으로 쌓여있지 않으면 입만 뻥끗해도 본전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생명력 없는 포장지에 불과하다. 포장지는 안에 물건이 썩으면 밖도 썩는 거니까. 그래서 모델이 아니라 롤 모델로 불러주길 바란다. 나이가 들었어도 젊게 입고 젊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요즘은 인스타그램에 '나 이렇게 멋있어요'가 아니라 '이 어른은 이런 생각이 있구나' 이런 걸 느끼게끔 쓰려고 한다. 칼럼을 쓸 때는 패션이 주는 의미가 뭔지, 진정한 나이듬, 멋지게 나이듬은 뭔지 전파하려고 노력한다.

(사진=great_grey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2000명이 넘는데 주로 어떤 연령층인지

  팔로워가 느는 것에 신경을 안 써봤다. 2000명 아래로 줄기도 했었는데 그것에 일희일비하지는 않는다. 팔로워는 3040 남자가 많은데 그들에게 어떤 바로미터가 되고 싶다. 그들이 나를 보며 '저 나이가 되려면 아직 30년 남았네' 이렇게 생각하며 어떤 방향성을 갖기를 바란다. 그러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빨리 정하고 준비 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에 태그의 영향력 알았다. 30대가 혹하는 태그를 달면 확실히 그 유입층이 늘더라. 앞으로는 내가 어필하고 싶은 층이 관심 가질만한 태그를 전략적으로 걸어야 겠구나 생각했다. 무작정 팔로워를 늘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정말 찐팬(진정한 팬)이 나를 보고 뭔가 배우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가지고 가려고 한다. 50대에게는 내 자랑 같고.

 옷이 많을 것 같다. 옷장의 크기가 부인보다 더 큰 것은 아닌지

  아내보다 많다는 것이 소문이 났나보다. 꽤 많다. 직장생활 마지막을 상하이에서 패션업을 했기 때문에 패션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특히 경영자는 옷이 많이 생긴다. 나는 또 샘플 사이즈라서 사내에서 샘플을 거의 거져로 처리할 때, 후배들이 나한테 어울릴 것 같다고 보내오는 경우도 있다. 중국에서 길거리 캐스팅으로 이태리 브랜드 화보모델도 하고 그러면서 모델료를 돈이 아닌 자기네 브랜드 옷을 살 수 있는 쿠폰으로 준다. 예를 들어 90% 할인하는 패밀리세일 때 1천 만원 쿠폰이 있다면 1억어치 옷을 살 수 있는 거다. 그런 기회들이 꽤 많아서 그때 많이 늘었다.

 갖춰진 의상이 많아서 지금은 별로 안사도 되겠다

  그렇지 않다. 항상 사야될 게 생기는데 비싸서 못산다. 그게 얼마인지 가격을 아니까.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매칭을 해야 하는데 내가 가진 것으로 다 안될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컬러와 아이템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 인스타그램을 보면 거기서 거기인 옷을 믹스앤 매치하는 게 많다. 최근에 몇몇 브랜드와 콜라보를 하면서 옷을 제공 받기도 하고.

  콜라보를 하는 업체 중에 전 직장인 LF몰도 있던데 ‘특혜’가 있었나

  지금 콜라보 하는 담당자는 모른다. 헬로젠틀과 하는 프로젝트로 들어온거고 처음에는 안하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자꾸 찍자고 주문이 와서 제일 늦게 시작했다. 책에 내가 짤린 얘기부터 쓰긴 했지만 내가 회사를 험담한 것도 아니고 회사가 내게 준 것도 너무 많다. 회사 후배들을 만나면 내 마지막 근무는 LF 전속모델 하는 거라고 말한다.

  균형잡힌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은

  코로나 이후 재택도 하고 시간이 많아져서 아내와 한강변을 매일 걷는다. 주 4~5회 헬스도 간다. 헬스에 가서도 10키로 들었다가 12킬로 들어보고, 10번 하던거 15번 해보고 일상에서도 작은 도전들이다. 이런 것들이 다 즐겁고 살아 있는 것 아닌가. 내 마음의 상태는 아무도 모른다, 나의 마음을 나는 알지 않나. 지하철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힘들게 계단을 오르고 나면 뿌듯하고 즐겁지 않나.

그런데 단것, 빵 같은 것을 절제 못한다.(부인의 대답) 그건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단팥빵을 먹기 위해 밥을 적게 먹는 등 하루 칼로리 총량의 법칙은 지킨다. 내 몸이 원하는거 입이 원하는 것에 거꾸로 가면서 건강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다만 양은 좀 줄이고 좋다는 것은 늘리는 식으로 조절한다.

(사진=great_grey 인스타그램)

"몸이 더 클것도 아닌데 왜 큰 옷을 입어?"

  아재 패션을 탈출하려면 '바짓단부터 줄여라' 라고 했는데, 중년 남성들에게 좀 더 팁을 준다면

  뻔뻔해져야 한다. 가장 큰 장애는 주변의 시선이다. 특히 아내나 남편의 반대가 있을 수 있다. 왜 잘 입던 바지를 줄여? 왜 갑자기 멋을 내려고 그래? 이런 반대를 한번은 겪고 넘어서면 리액션이 달라진다. 리액션을 즐기면서부터는 패피(패션피플)로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패션 잡지도 있고 유튜브도 너무 많다. 관심이 있으면 중년의 멋내기라든가 유행 아이템 트랜드 등 찾아보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솎아낼 눈만 있으면 된다. 이 정도는 내가 시도해보자 하고 따라하면 패션은 자신에게 어떻게 적용하냐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변화를 시도할때 주변의 시선을 초월해라 그것만 넘어서면 변신은 탄탄대로다. 주변의 리액션이 오면 그때부터는 양말로 포인트를 준다던가로 한 사이즈 작게 입는다든가 하면 된다. 내 친구들도 보면 몸이 더 클것도 아닌데 다 큰 옷을 입는다. 양복이나 자켓을 걸쳤을때 주머니 이만큼 들어있는 것만 빼도 된다. 그리고 클러치백을 들어주면 된다. (일수가방 같다고 할텐데) 자기가 어떤 드레스코드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일수가방이 될 수도 있고 멋진 패션 소품이 될 수도 있다. TPO에 맞게 잘 하려는 노력과 공부가 필요하다. 많이 보고, 따라 해보고, 필요하면 또 사보고 그러면서 조금씩 변하는 거다.

 관심 태그에 '섹소폰'이 있던데

  섹소폰을 배워볼까 하고 동호회 등을 찾아봤던 거고. 아들, 사위, 딸한테 물어봤는데 섹소폰에 대한 인식이 너무 꼰대더라, 오히려 드럼을 배우라고 권했다. 그래서 섹소폰은 잠시 접고 지금은 기타를 연습하고 있다. 유튜브에 좋은 선생이 많더라. 손가락에 굳은 살이 베기도록 연습하고 있다. 그리고 진짜 가능하다면 드럼은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 아들, 사위도 드럼을 잘 친다. 친구 오준(전 유엔대사)도 드러머다. 지난번 코로나 위로 차원에서 각국의 유엔대사를 지낸 몇몇 사람이 랜선 공연을 했다. 빨리 어디까지 도달 하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시작하려 한다. 주변에 가르쳐줄 선생도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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