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모작 시간여행③] '아름다운 시간이 머무는 곳' 아지트 갤러리, ‘양한모 대표’

윤재훈 기자
  • 입력 2020.07.15 15:31
  • 수정 2022.01.08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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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갤러리, ‘양한모 대표’

 


“누구를 잘라 내거나 소외시키지 않고,
한곳을 바라보며 아름답게 늙어가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아지트AZIT 갤러리, 양한모 대표. 촬영=윤재훈)
(아지트AZIT 갤러리, 양한모 대표. 촬영=윤재훈)

모든 화랑인들에게 인사동의 진출은 꿈일 것이다. 그런데 화랑을 시작한지 5년여 되었다는 <양한모 대표>은 이번에 그 꿈을 이루었다. 그리고 개관식까지 마치고, 현재 백동현의 <허상(虛像)>전이 열리고 있다. 왜 아지트(AZIT)일까, 약간 음침한 냄새까지 난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뭘 하겠다는 건가? 가만히 한 번 엿보고 싶다. 그런데 욕심 많게도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넣고 싶었단다.

모든 예술인이 함께 하는 공간, 부족할지는 몰라도 그것을 함께 서로 구겨 넣고 나오는 색(엑기스)을 보고 싶었단다. 특히나 우리의 공간에서 부족한 사진 위주로 꾸며보고 싶었단다. 여기에 “사진인들이 서로의 다름에 대해 인정하고, 같이 가는 문화가 조성되길 원한다”고 한다.

(아지트 갤러리 전경. 촬영=윤재훈)
(아지트 갤러리 전경. 촬영=윤재훈)

그는 언제부턴가 자식한테 줄 수 있는 그런 글을 써 자서전 형식의 책도 내고 싶었단다. 사후 보다는 현재에 말이다. 지금은 아이들도 장성했지만 그는 출생신고를 2년 늦게 해, 10살에 초등학교 들어갔다고 한다. 중, 고등학교도 순탄치가 않아, 젊은 날부터 스스로 돈을 벌며 생활하다 보니, 삶에 대한 무서움이 없어지고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러니 일단 몸으로 저지르고 보았단다.

중, 고등학교 때는 경동시장에서 새벽 알바와 과외를 하며 학교를 다녔고, 젊은 날부터 하루에 4시간 정도를 자고 생활했다고 한다. 그 후 이 땅의 근대화와 함께 1인 1기술 시대가 되더란다. 성장하면서보니 세상은 점점 더 멀티플레이가 되기를 원했으며 그도 프로젝트 위주로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하였단다. 고등학교 때 인쇄소 알바를 하며 배운 경험으로 몇 년 전부터 1인 출판을 시작했으며, 평생 건축과 인테리어를 해오며 사진도 찍어오고 있다고 한다.

88년도부터 90년대 초까지는 일 년에 4일 정도 집에 들어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건축을 했단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다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2,000년 49세 늦깎이로 대학원에서 실내환경디자인을 전공했다고 한다. 나이 들어 하다 보니 공부는 참 재미있었다고 고백한다. 9년 전부터는 우연한 계기로 학교 살리기 운동 및 자살방지, 왕따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봉사를 하게되었으며, 두드림이라는 봉사단체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허브갤러리)
(허브갤러리 전경)

그는 성동구청에서 운영하는 왕십리에 있는 허브갤러리를 비수기에 위탁받아 운영하다가 이번에 인사동으로 진출했다. 그러면서 이곳 아지트를 네 가지 철학 체계를 가지고 운영하고 싶다고 한다. 무엇보다 ‘공유 공간 개념’으로 공유 지식, 공유 경제, 공유 잡지를 만들며 놀고 싶다고 한다. 여기에 전국에 놀고 있는 갤러리를 묶어서 문화적 혜택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다시 제공하는 사업을 구상 중이라 한다.

(소테츠 호텔 갤러리 전경)
(소테츠 호텔 갤러리 전경)

이런 시설들이 일본에는 50여 개나 있고 서울에도 3개가 있는데, 그중 남대문에 있는 소테츠 호텔 갤러리 맡아 2년째 운영 중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코로나 시대 텅, 텅, 비어있는 객실을 보면서 저것을 저렴하게 작가들에게 개인 공간으로 제공하면서, 개인 전시회까지 겸하면 어떨까, 그런 즐거운 구상을 요즘 하고 있단다.

무엇보다도 아지트는 “누구를 잘라 내거나 소외시키지 않고,
한곳을 바라보며 아름답게 늙어가는 사람들이 모였으면 좋겠다.”
떠나거나 잊혀지지 말고.

그는 지독하게 파티션 문화를 싫어한다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아지트는 좌장도 없이
모였다가 또 흩어져서 각자의 일을 하며, 전시도 하며, 즐긴다.
그 안에서 누군가 상처받는 것도 싫다고 한다.

평생을 건축하는 사람으로서 건축은 ‘점, 선, 면’으로 이야기되는데, '선으로 보는 건축, 눈으로 보는 풍경'의 이야기를 '궁과 고택'으로 풀어내고 싶단다. 본인은 비比, 선線, 면面‘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단다. 건축이나 사진 작업을 하다보면 평면작업이 되기 쉬운데, ‘면 분할’을 볼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한, 중, 일에 대한 건축을 비교분석 중이라고 한다.

특히나 그의 사진 주제는 우리의 5대궁과 종묘, 고택에 관심이 많아 작업 중이며, 풍경, 인물은 안한다고 한다. 남들이 다하고 있는 작업은, 아무리 네가 잘 찍는다고 해도 좋은 사진들이 너무 많단다. 단지 본인은 작가들의 작품을 재구성해서 전시를 통해 돋보이게 해주고 싶단다.

(백동현의 ‘허상(虛像)’전을 축하하며. 촬영=윤재훈)
(백동현의 ‘허상(虛像)’전을 축하하며. 촬영=윤재훈)

특히나 그는 코로나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인사동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무언가를 미리 준비해야 코로나가 끝난 후에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그는 5년 정도 해외를 돌며 해외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언젠가 크로아티아 분이 오셔서 영어를 1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해외를 잘 돌아다니느냐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사진을 통해 모든 것을 이야기 하며 서로 감동을 느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하자, 자신을 끌어안으며 “그래 그렇게 오래 갑시다” 했던 게 기억에 남는 다고 한다. “사진가는 사진을 통해 공감하면 그만”이라고.

그는 평생 건축, 인테리어, CM을 해온 사람이지만 궁극적으로 서로 조율해주는 사람인 ‘문화 코디네이터’가 되고 싶다고 했다. 모든 것이 ‘규모계획’을 생각할 수 있어야 된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그 안에서 계획을 세우는 것이 가능하다고. 그것이 마련되어야 프로그램도 짜고 소비를 하는 연결고리를 마련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랬을 때에 작가의 가장 걱정거리인 비용도 절감되고 서로 나누는 일이 될 것이라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작가에 맞게 실내분위기나 음향 등의 전시계획을 세울 수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현실은 그런 화랑이 하나도 없다고 말끝을 흐린다. 하기야 화랑 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림이 걸려있고, 은은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입구에는 한 사람이 앉아 컴퓨터만 보고 앉아있는 딱딱한 분위기가 떠오른다.

뭔가 밋밋하고 예술의 느낌이 잘 와 닿지 않는다. 무엇보다 관람자가 들어서면 뭔가 휑하고 낯설기까지 한 느낌은 가끔 그냥 나가고 싶은 경우도 있다. 

“자기 부스를 자기가 설계하는 것이 전시라고 본다.
그래야 작가의 민낯을 오롯이 볼 수 있다.”

결국은 ‘비용’의 문제라고 한다. 누구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겠냐고?  그는 명쾌하게 답한다.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수요와 소비’ 라고, 이것이 어느 정도 맞아야 그런 것을 입힐 수 있다고 .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문화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을 ‘문화적으로 생산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문화코디네이터의 역할’이며, 그런 사람들이 더욱 필요한 시대라고 한다. 그래서 ‘규모계획’이 더욱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할 수 있는 어떤 틈을 엿보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호텔갤러리로 연결이 되었고, 통째로 비어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잘 맞는단다. 경제 활성화와 작가 활성화, 자가 격리 등 동선이 잘 맞아 떨어져, 문화가 한 걸음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단다.

(아지트에서, 촬영=윤재훈)

또한 이곳은 아지트 출판사까지 겸하고 있어 전시와 책을 같이 낼 경우에는, 책 편집과 디자인 등은 무료로 제공한다고 한다. ‘기획, 전시, 책 출간’ 등을 원스톱으로 해결하는 것을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단다. 또한 이곳은 전시회 액자까지 빌려준다고 하니, 무엇보다 작가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의 하나인 ‘비용절감’이 반으로 줄어들 것 같다.

그는 9년째 <아름다운 학교 살리기 운동, 왕따·자살 방지 운동> 등을 강원도 교육청과 진행 중이며, 여기저기 심의를 다닌다고 한다.

특히 유럽을 순회하면 전시하는 꿈을 꾸고 있단다. 국내에서는 많이 알려졌지만 해외에서는 저평가된 분들을 알리는 작업을 하고 싶단다. 그래서 전주나 완주 등에서 한번 실험하고 1년이나 2년 후쯤 해외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는 젊은 날에는 시인을 꿈꾸었는지 8, 90편 정도의 시를 써두었다고 보여준다. 시집을 내고 싶었으나 일러스트만 하다 보니 여태 미루어지고, 이제는 언어가 변해 더 망설여진다고 한다. 학창시절에는 절대 고독의 시인 김현승씨를 좋아했다고. 80년대, 젊음만으로도 혼란했던 시대 써두었다는 시 한 편을 읽는다.

능내리

새벽길은

비에 젖어
그늘 뒤에 숨고
모퉁이를 돌아 나온

하루의 시작은
소소함이 아니더라
맨발 벗어 두고 온

그 아침도
다름없는

시간 속으로 간다.
- 양한모, <능내리 아침>

대학 시절에는 거의 학교에서 먹고자고 하며 조계사 마당에서 코끼리 상징등을 만들며 합숙하기도 했다고 한다. 납부금이 없어 중학교 때 졸업을 못하고 지방에 내려가 있다 구제도 못 받고, 다시 3학년 재입학하는 아픔도 겪었단다.

밑바닥까지 떨어져 방황하던 시절 절에 나가면 스님이 각별하게 보살펴 줬고, 재가상좌가 되어 조계사에서 살다시피 했단다. 스님이 용돈도 주시고, 교수님과 친구들이 용돈도 모아 등록금을 내주어 그 덕에 여기까지 잘 온 듯하다고 한다.  꿈이 무엇이냐고 묻자, 지금처럼 이렇게 계속해서 문화적인 토대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백동현의 ‘허상(虛像)’ 앞에서. 촬영=윤재훈)

마지막으로 건축과 사진이 다른 예술 장르와 통섭의 여지가 있는지 묻자, 어려울 거라는 회의적인 생각을 말한다. 그런 말들이 반복만 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그것을 조율하고 재분배 하는 역할자가 없는 것 같다고. 다른 분야를 다양하게 섭렵하고 재분배할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야 하는데, 부족한 것 같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잘 만들어진 시스템은 있지만 그것을 조율할 만한 사람들이 부족하고,
통섭과 융합이라는 텍스트만 있고 운용한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방향과 토대를 만드는 것 없이 소비만 하는 것은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내부에 좋은 것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만드는 콘텐츠가 부족한 것이 무엇보다 큰 안타까움이라고 한다."

특히나 우리 문화는 다름에 대한 문화적 이해가 부족하며, ‘다양성, 효율성, 합리성’이 이야기 되면서도 작가의 확장성이 부족하다고 한다. 나아가 “어느 시대나 모더니즘은 모든 예술에 생명일 것이다.” 그리고 “문화는 ‘배려’가 기반인데 그것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요즘 나이를 거꾸로 센다고 한다. 인간을 80까지 볼 때 과연 베스트로 사람답게 살날이 얼마가 될지,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하다고, 여기저기 돌아볼 시간이 없다고 한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철학, 신념, 방향성’으로

“서로가 함께 아름답게 늙어가기를 원한다는 그의 말에,

아직까지는 포기하기에 이른 ‘융합과 조화의 지평’을 본다."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다. 여름 장마가 시작되었나, 아니면 인간에 의해 지구가 점점 급격하게 파괴되어, 이 땅에서도 ‘스콜’이 내리고 있는 것일까?

(장마에 들다.촬영=윤재훈)
(장마에 들다.촬영=윤재훈)

하늘을 올려다본다. 45억만 년의 지구의 역사가 흘러가고 있다, 거기에 인간의 출현이 불과 20만 년, 과연 인간이 또 이 지구에 20만 년을 더 존재할 수 있을까, 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는 회의적이라고 한다. 저명한 생물학자들끼리 내기까지 걸었지만 자신은 역시 아닌 쪽에 걸었다고 한다.

1758년 칼 폰 린네에 의해 라틴어로 지었졌다는 ‘현명한 남자’를 보면,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는 호모 에렉투스와 치열한 혈투 끝에 모두 다 해치우고,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잔인한 종(種)이라고 한다. 

지구상의 수많은 다른 동물들의 개체가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은 단일종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피 튀기는 혈투 끝에 모두 다 죽이고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포악무도한 종(種)일 거라는 우려도 든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았을 것 같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현재 우리의 삶의 방식만 봐도 충분하지 않는가? 철저하게 이기적인 유전자, 두고두고 그 말에 여운이 남는다. 인간이 또 다시 이 지구상에 20만 년을 더 존재할 수 있을까?

이 지구는 또 언제까지나 운행이 될까? 인간이라는 종이 사라진 뒤에도 “지구는 여전히 돌고 있을까?” 갑자기 삶이 무거워 지려고 한다.

 

지구의 표피 위로 장맛비만 쉴 새 없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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