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이라는 말이 있다. 북한이 남한의 중학교 2학년생들 때문에 무서워서 못 쳐들어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그러면 '초2병'도 있을까? 아홉살 초등학교 2학년생에게도 사고와 행동을 무시해선 안 되는 인생의 함의가 들어있을 수 있다. 위기철 작가가 쓴 [아홉살 인생]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어리다고 함부로 대할 연륜이 아니다. "너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엉?"이라고, 참 정내미 떨어지게 묻는 어느 어른에게 "낙엽을 밟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할 줄 아는 나이가 아홉살이다.
J. 스피넬리의 성장소설 [목을 비트는 아이](The Wringer)의 주인공 나이도 아홉살이다. 두 작가가 공교롭게도 '아홉수'라는 연령대를 주인공의 나이로 설정한 까닭은 무엇일까? 인생의 여정 속에서 9년의 세월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간의 엄숙함이 있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아홉살 때 새를 잡다가 콧잔등 옆을 다쳐서 지금도 흉터가 남아 있다. 어쩌면 그 상처는 이 글을 쓰려고 운명지워져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잊을만도 한데 잊히지 않는 그날의 상처, 참 오래도 간다고 생각하며 고향마을 정자나무를 지나쳐 가려는데, 주로 어른들이 이용하는 동네 우산각(雨傘閣)에 어린 소녀가 우두커니 혼자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소녀의 엄마는 아이가 갓난아이 적에 어디론가 가버렸다고 한다.
"너 몇 살이야?"
"아홉살."
"몇학년?"
"2학년."
"너네 반 아이는 몇 명?"
"네 명." (소녀는 손가락 넷을 펴보이며)
(60대 중늙은이와 아홉살 소녀의 반말이 무척 자연스럽다)
"여기서 혼자 뭐하나? 뭔 생각을 하고 있었어?"
"......"
(아홉살소녀 곁을 떠나오면서 내가 아이의 인생여정에 혹여 방해나 되지 않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