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⑩] 우루무치에서 알마티까지, 국경열차 안에서

윤재훈 기자
  • 입력 2020.07.30 13:29
  • 수정 2020.08.0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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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무치에서 알마티까지, 국경열차 안에서

 

“수만 리를 걸어오느라고 먼지를 잔뜩 뒤집어 썼구나.”
- 최치원의 ‘향악잡영(鄕樂雜詠)’

 

실크로드의 강자, '소그드인'

(수만 년 풍화되어 돌처럼 단단해진 흙. 촬영 윤재훈)
(수만 년 풍화되어 돌처럼 단단해진 흙. 촬영 윤재훈)

우루무치를 시내를 막 벗어나는가 싶더니 황량한 사막이 기차의 찻장에 따라붙는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수만 년 마르고 말라 백골이 되어버린 땅들이 눈이 부시도록 처연하다. 저 안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 싶은데, 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또 수많은 민족들은 서로 죽이고 죽은 살육의 전쟁은 얼마나 많았던가.

그 실크로드를 ‘소그드인(Sogd人, 속특粟特)’들이 700년이나 지배해 왔다. 그들은 본래 ‘스키타이(Scythian, 사쿠라, 소그디아, 사카)라고 불렀다.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최초의 기마민족인 스키타이인들 중에 중앙아시아에 사는 스카타이를 ‘소그드’라고 일컬었다. 그들은 아리안계 스키타이 유목민들이며, 앞으로 지나가게 될 페르시아, 이란의 아리안과는 다르다.

자손에 자손들이 낙타와 말들을 타고 비단길을 오고가며 그 전통을 이어왔다. 그 길을 나는 지금 편안하게 열차를 타고 간다. 그러다 ‘안록산의 과도한 욕심으로 일으킨 난’은 실패로 돌아가고 소그드인들은 중국 땅에서 씨가 마르게 된다.

안록산은 이란계 소그드인의 아버지와 돌궐계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서 6개의 언어에 능통할 정도로 총명하여 북쪽 교역장의 통역과 중계인을 하며 부를 축척하였다. 그 후 742년에 평로절도사가 되고, 현종에게 뇌물을 바치며 양귀비의 양자로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평로, 범양, 하동 등 무려 세 군데 절도사를 겸임하면서 현종의 총애를 과시하는 한편, 당나라 전체 절도사의 병력 중 무려 3분의 1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권력이 비대해지면 그 끝은 너무나 자명하다는 것이 동서의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다. 안록산은 양귀비의 사촌 누이이며 최대의 라이벌 양국총과의 갈등이 심해지고, 그 결과 8세기 가장 규모가 크고 치열했던 반란으로까지 이르는 도화선이 된다. 그 후 소그드인들은 그 화려했던 영화를 뒤로하고 중앙아시아로 쫓겨 가 자신들의 조그만 오아시스 도시 <소그드니아>에서 조차 거대한 이슬람의 민족 속으로 흡수되어 버렸다.

8세기 통일 신라와도 교역을 했으며 그 당시 신라음악이 소그드인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최치원의 ‘속독(束毒탈춤)’도 소그드인의 탈춤을 묘사한 것이다. 최치원의 ‘향악잡영(鄕樂雜詠)’에도 보면 “수만 리를 걸어오느라고 먼지를 잔뜩 뒤집어썼구나”라는 구절이 있는데, 북청사자놀이와 같은 중앙아시아에서 들어온 연희를 보고 지은 시구(詩句)라고 한다.

(소그드인의 초상. 촬영 윤재훈)
(소그드인의 초상. 촬영=윤재훈)

그 후 이 땅은 진시황이 만리장성으로 막아 버렸다. 이제 계절을 따라, 풀을 따라 초원을 가로지르던 유목민들의 길은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하게 되었다. 한 곳에 정착하니 점차 초원은 사막화 되었다. 북방의 오랑캐들의 침입에 방비하고 국경은 튼튼히 한다는 이름 아래, 낡은 역사책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고 세계는 강대국의 역사만 믿는다.

상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사막을 내달리는 기찻길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새들과 구름만이 철망을 넘나들며 우리를 조롱하는 듯하다. 미명(微明) 아래 갇히지 말고 자유로워지라고. 가끔 조그만 도시들을 지날 때에만 잠깐씩 푸른빛이 보인다.
 

우루무치, 중국 땅의 마지막 역, ‘후얼 꾸어쓰' 

(‘후얼 꾸어쓰 역’에서 승무원은 점심이라도 먹으러 가나. 촬영 윤재훈 )
(‘후얼 꾸어쓰 역’에서 승무원은 점심이라도 먹으러 가나. 촬영=윤재훈 )

고국에서 수만 리 떨어진 거대한 중국 대륙의 마지막 도시, 위그루의 나라 우루무치. 그 중국 땅의 마지막 역, ‘후얼 꾸어쓰 역’. 마침내 중앙아시아의 거인 세계에서 9번째로 큰 나라, 카자흐스탄에 가까워 진 모양이다. <이닝> 역를 지난 열차는 중국 국경의 마지막 역에서 모든 짐을 들고 내리라고 한다.

국경 열차 안에는 영어를 하는 승무원이 없다. 젊은 승무원들조차 모른다. 대합실에서 무작정 기다렸다. 유일했던 서양인 4명은 건너편에 보이는 조그만 시가지에 쇼핑이라도 나갔을까? 화단에는 목마른 꽃들이 몇 송이 피어있고 그 땅에 물을 대기위해 스프링클러만 열심히 돈다.

대략 5시간쯤 기다렸을까. 출국 수속을 할 모양이다. 무심한 얼굴의 사내가 한참 여권 여기저기를 넘겨보더니 쾅, 하고 육로 비자 도장을 찍는다. 마치 염라대왕이 생사여탈권이라도 결정하는 것처럼, 그 표정이 우러러 보인다.

(중국과 카자흐스탄 국경, 양국의 철도. 멀리 천산산맥이 보인다. 촬영 윤재훈)
(중국과 카자흐스탄 국경, 양국의 철도. 멀리 천산산맥이 보인다. 촬영=윤재훈)

2, 30여분 달렸을까. 땅 위를 가로지르는 철망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기차가 선다. 제복을 입은 전형적인 러시아 풍의 풍만한 몸매의 아주머니가 올라와 여권을 다 걷어가고, 이어 젊은 군인들이 올라와 거칠게 짐을 검사한다. 아니 뒤진다. 배낭과 커다란 트렁크를 샅샅이 뒤지고 고장 난 카메라의 사진까지 봐야 한다고 억지를 부린다.

중앙아시아의 경찰이나 관리들의 부패 정도를 책을 통해서만 읽었지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경찰은 가능한 안 만나는 것이 좋다고 하던데, 휴대폰 사진까지 일일이 다 검사하더니 자기들끼리 희희덕거리면 다음 칸으로 간다. 침대칸 손님이래야 고작 6명이다. 직업의 선택도 참 중요할 것 같다. 가장 순수해야 할 청년시절에.

“내가 하는 일이 남에게 피해를 주기만 한다면 그것은 참 슬픈 일이다.
저 사막 가운데 있는 오아시스처럼,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시원한 물 한 모금이라도 될 수 있다면
최상의 보람일 것이다.”

 

낯설은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처음으로 도착한 카자흐스탄 ‘알틴콜 역’. 촬영 윤재훈 )
(처음으로 도착한 카자흐스탄 ‘알틴콜 역’. 촬영=윤재훈 )

또 2시간여 기다렸을까, 마침내 6시 55분쯤 기차는 카자흐스탄 검문소를 출발한다. 첫 번째 역인 <알틴콜(Altyncol)>에 7시 30분에 도착해 20분 정도 쉰다. 몇 명의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벤치에는 중앙아시아의 청년과 아가씨들이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리운 이와 통화를 한다.

(오랫동안 천산(텐샨) 산맥이 따라 붙는다. 촬영 윤재훈)
(오랫동안 천산(텐샨) 산맥이 따라 붙는다. 촬영=윤재훈)

8시쯤 되자 햇볕은 창문을 통해 침대 깊숙이까지 들어오는데, 아직 그 끝이 뜨겁다. 나는 햇볕을 피해 창 쪽 깊숙이 앉아 보이차를 마시며 여행서를 읽는다. 이 차는 ‘둔황’에서 우연히 만나 친절한 중국인 아가씨 '도우 도우'가 주고 간 것이다.

자상한 그 녀는 서로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마지막 날 슈퍼에 가서 먹거리를 한 보따리 사 안겨 주고 떠났다. 나는 두고두고 그 녀가 주고 간 것들을 아껴 먹으며 간간히 그녀를 추억했다. 오래 전부터 왼쪽으로 설산이 나타나 몇 시간째 따라온다. 마치 한 선으로 길게 붙어있는 것처럼.

(국제열차 안에서. 촬영 윤재훈)
(국제열차 안에서. 촬영=윤재훈)

아뿔싸, 내릴 때가 다 되었는데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주머니에는 카자흐스탄 돈 한 푼도 없고, 중국 돈만이 만 원 조금 넘게 남아있다. 그러고 보니 우루무치의 삼엄한 경찰들의 눈초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마지막으로 만났던 중국 청년과의 여정에 흠뻑 빠져서인지, 미처 호텔 예약도 하지 않고 떠나왔다.

그리고 인터넷 되는 곳이 없으니 여태 하지 못했다. 옆 칸에 서양인 커플 4명이 앉아있는데, 무얼 좀 물어봐도 "I dont know"만 연발하며 도대체 남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 아니면 경계하는 것일까, 가진 것이 많을수록 더욱 경계가 심할 것이다.

부랴부랴 반대편 쪽 칸에 있던 좀 친절하게 보이던 중국인에게 호텔 위치와 ATM에 대해서 물어보고 내리면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어스름이 완전히 내린 9시 30분쯤, 태어나 처음 발을 내딛은 낯선 국토, '알마티(Almaty)'. 그러나 꼭 한 번 와 보고 싶었던 대지, 그 땅의 향기가 훅, 코끝을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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