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⑪] 베이징에서 울란바토르까지, 국경열차를 타고

윤재훈 기자
  • 입력 2020.08.04 13:20
  • 수정 2020.08.0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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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울란바토르까지, 국경열차를 타고

"말발굽 소리도 이미 잦아든 지 오래인,
이 푸른 대륙에
이 길의 끝은 도대체 어디쯤 가 닿아있을까
잠도 자지 않는 빙하가 365일 흘러내리는
천산 산맥 중심부를 관통하고 들어가
잠들어 버렸을까, 맘모스의 화석처럼"

(끝없이 이어진 줄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기가 힘들다. 촬영=윤재훈)
(끝없이 이어진 줄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기가 힘들다. 촬영=윤재훈)

베이징에서 푸른 초원의 나라, 몽골로 가는 국제열차 표를 사기 위해 역으로 갔다. 그런데 기차표를 사는 것은 마치 전쟁통 같았다. 우선 사람들의 거대한 규모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갈 지(之)자 형태로 그 넓은 역 광장을 꽉 채운 줄은 도무지 입구가 어디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 듯했다.

요행히 역 안으로 막 들어가자 공항처럼 검색대를 통과해야만 했다. 조금만 과일칼이나 가스통 등은 전부 압수였다. 그런데 역사 안은 소매치기 천국이었다. 공안들이 눈이 번득이고 있지만 왜 국격(國格)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휘, 둘러본 내부 풍경은 심란했다. 여기저기 바닥에 박스 같은 것들을 깔고 앉아 있거나 누워있는 사람들은, 마치 깊은 산속에서 만난 짐승들의 눈처럼 경계의 눈빛들이었다.
배낭을 몸 앞으로 메고도 안심을 할 수가 없었다. 창구 앞에서는 더욱 힘들었다. 아예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어떻게 한문을 써서 창구에 보여주었지만 아무래도 표를 살 수가 없었다. 아마도 여기서 팔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는 듯했다.
매표소 앞에서는 배낭을 맨 채로 들고 나는 것이 힘들게 되어 있었다. 알류미늄으로 만들어 놓은 사각의 케이스는 한 번에 한 사람씩만 오고갈 수 있는데, 풍만한 사람들은 더 힘 들 것 같았다. 워낙 인구가 많은 공산주의 국가이다 보니 통제를 하기 쉽게 만들어 논 듯했다. 인권보다는 통제가 더 급한 모양이다.
어떻게 묻고 물어서 10여분 이상 걸어가니 세상에, 호텔 안에서 국제열차표를 팔고 있었다. 어찌 호텔 안에서 표를 팔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렇게 어렵사리 표를 구했다. 북경 역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대략 10여분 정도 올라가면 ‘북경 국제호텔’이 나온다. 그 곳 1층에 가면 살 수 있다.

(몽골 국제열차. 촬영=윤재훈)
(몽골 국제열차. 촬영=윤재훈)

열차편명은 ‘K3’이며, 울란바토르까지 약 1,426km가 되는 모양이다. 출입국 수속시간 포함해서 대략 29시간 30분 소요되며, 일주일에 3번 운행되며 한 번은 모스코바가 종점이다. 침대의 종류에 따라 가격의 차이도 상당히 난다. 딱딱한 침대칸은 605원(元)이고, 푹식한 침대칸845원(元), 최고급 침대칸 1,031원(元)이다. 특히나 이곳에는 싼 값에 평양에 가려는 북한 사람들도 온다고 한다.

다음날 기차를 타는 것도 사는 것 이상 힘들었다. 커다란 트렁크와 배낭을 메고 똑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만 했다. 열차까지 가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서울역보다 훨씬 큰 역은 도대체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잡기도 힘들었다. 높다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기본이였고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보이지 않으니 끌고 오르내려야 했다. 열차 시간은 임박하고 텅, 텅, 거리며 계단을 내려가는 바퀴는 금방이라도 고장이 날 듯 괴로워했다. 그래도 기차를 타고 자리에 앉으니 그동안의 시름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자 이제 모든 것을 잊고 새로운 땅을 향해 가자.”

(“갈래면 가지, 왜 돌아보오.” 몽골벌판에서. 촬영=윤재훈)
(“갈래면 가지, 왜 돌아보오.” 몽골벌판에서. 촬영=윤재훈)

한참동안 산악지역을 지났다. 이따금씩 찻장 밖으로 높다란 암벽들이 즐비한 산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제 ‘석탄도시’로 유명한 <다퉁>이라는 도시가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이곳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면서 중국 4대 석굴의 하나인 <윈강(운강) 석굴>이 있는 곳이다. 
나머지는 고도(古都) 뤄양시에 있는 <룽먼(용문) 석굴>과 둔황에 있는 <막고굴>이며,
나머지 하나는 실크로드의 첫 관문 도시 천수(天水)에 있는 <맥적산(麥積山) 석굴>이다.
산 모양이 보리가마를 쌓아 놓은 것 같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는데,
이 맥적산 석굴은 아직 세계문화유산에는 들지 못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황하강가를 따라 펼쳐지는 <병령사 석굴>도 볼 만하다.

나는 이 윈강석굴을 내려오면서 들를 예정이다. 석탄도시답게 역에는 석탄이 산처럼 쌓여 있었으며 공기 질은 나빠 보였다. 이어 광부들이 사는 마을 같은 곳도 나타났다. 도시를 벗어나자 끝없는 수수밭이 펼쳐져 있었으며 군데군데 해바라기 꽃 군락들도 나타나 연신 무거운 머리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이제는 중국 땅이 되어버린 내몽골로 접어드는지 초원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국토는 어딘지 모르게 스산해 보였다.

(끝없는 몽골의 벌판. 촬영=윤재훈)
(끝없는 몽골의 벌판. 촬영=윤재훈)

푸른 늑대를 찾아서/윤 재 훈

바람, 구름, 초원의 땅
그 땅을 찾아가기 위해 서해를 건너온
한 사내가 서 있다

베이징 역, 인산인해의 틈바구니에서
홍조 띤 얼굴을 하고 그가 시간을 가늠한다
철길만 외로이 벌판에 길을 내고
그 끝은 어디에 닿아있는지 아득할 뿐이다

사내가 다시 손차양을 하고
무엇이 그리운지 동쪽을 본다
저 해무가 거치면 아련한 그 나라가
이어도처럼 떠 있을 것이다

끝없이 달리는 푸른 구릉들
그 지평선 위로 오르는 구름들은
저마다 미완의 꿈들을 피워 올리는지
바람 속에서 가볍게 몸피들을 부풀리고 있다

길을 달리는 건
오직 철마와 끝이 보이지 않은 전신주뿐
그리고 낮은 구릉들 사이로 언뜻언뜻 달리는
푸른 늑대 한 마리를 보았다

말발굽 소리도 이미 잦아든 지 오래인
이 푸른 대륙에
이 길의 끝은 도대체 어디쯤 가 닿아있을까
잠도 자지 않는 빙하가 365일 흘러내리는
천산 산맥 중심부를 관통하고 들어가
잠들어 버렸을까
맘모스의 화석처럼

언뜻언뜻 보이는 게르들
오직 하늘에 떠 있는 구름만이 이 땅에서는
그늘을 만들 수 있다

신은 어찌하여 이 광활한 벌판에
이토록 작은 인류를 보내셨을까
사내가 문득 벌판에 서서 다시
해시계를 가늠한다

길이 나 있다
광활한 초원 위로
난마(亂馬)하는 길들
저 길들은 도대체 모두 어디로 간단 말일까
주체할 수 없는 꿈들을 안고
저마다 한 길씩 잡아 떠나갔을까
구릉 사이로 늑대 한 마리 또 스친다

사내는 나지막한 구릉 정상까지 뛰어 올라가
손차양을 하고 초원을 바라본다
어디에도 늑대가 간 길은 없다
가벼이 몽골 벌판을 떠다니는 바람만이
초원을 핥고 다닌다

부드러운 곡선만이 아가의 둔부처럼
지평선에 누워있고
거대한 뭉게구름들이 포근한 엄마의 품처럼
능선들을 다독이고 있다.

(다행히 포천 이동막걸리를 한 병 준비했다. 몽골기차여행이 즐거울 것 같다. 촬영=윤재훈)
(다행히 포천 이동막걸리를 한 병 준비했다. 몽골기차여행이 즐거울 것 같다. 촬영=윤재훈)

몽골벌판으로 노을이 내리려는지 햇볕은 더욱 깊숙이 열차 안으로 파고든다. 칭기스 칸도 저 태양빛을 따라 서쪽으로 달렸을 것이다. 이 땅은 1992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하루 아침에 변하였다. 카자흐스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내륙국이며, 인구는 300만 명뿐이 안 되는데, 가축은 6,000만 마리에 이른다. 짐승들이 살기 좋은 나라인 듯하다.

우리와도 인연이 있다. 몽골의 마지막 황제 어의(御醫)로 우리나라 독립운동가인 <이태준 기념관>이 있다. 그는 몽골의 황제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았지만 러시아 군인들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에 몽골정부가 부지를 기증해서 그를 기리는 기념관을 만들게 되었다.

(얘야, 가자 어서가자, 열차가 들어온다. 촬영=윤재훈)
(얘야, 가자 어서가자, 열차가 들어온다. 촬영=윤재훈)

밤이 되자 이제 창밖은 먹빛이다. 잠자는 것 외에는 아무 할 일이 없다. 어두운 불빛 아래에서는 책을 보기도 마땅치 않다. 그렇게 자정이 넘어가자 중국의 마지막 국경도시에 ‘얼롄(Erlian, 二連)’에 도착했다. 승무원 복장을 한 사람들이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와 여권을 달라고 한다.

외국여행을 하는 중에 사람들이 여권을 달라고 하면 항상 불안하다. 그 사람의 정확한 신분도 순간적으로 판단하기 힘들고, 만일 여권을 잃어버리면 당장 국제 미아가 되기 때문이다. 내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수단이니 항상 여권 보관은 무엇보다도 신경을 써야 한다.

"해외 여행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을 들라면 '여권과 카드, 현금'이다.
여기에 '기차표나 비행기표'도 잘 챙겨야 낭패(狼狽)을 당하지 않는다.
항상 베낭이나 주머니가 아닌 몸에 간직하는 것이 좋다."

철로의 넓이가 달라지니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중국의 열차는 1,435mm의 표준궤인 ‘협궤(狹軌)’임에 비하여, 몽골과 러시아는 1,520mm의 광궤(廣軌러시아와 몽골은 외적의 침입이 많아 군수물자 운송을 방해하기 위해서라고 함)이기 때문에 열차 바퀴를 맞추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역 앞으로는 바로 국경 시내가 펼쳐지고, 인적이 끊어진 자정이 넘는 시간, 사람들은 역 앞에 앉아서 시간을 소요한다.

(가족들이 소풍을 나왔다. 촬영=윤재훈)
(가족들이 소풍을 나왔다. 촬영=윤재훈)

몇 시간을 기다렸을까? 마침내 출구수속이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입구심사(Immigration)대에 들어서자 역시 근엄한 표정의 직원이 앉아있다. 여권도장을 쾅, 받고 중국 국경을 넘자, 이번에는 다시 몽골 국경심사를 받아야 했다. 나가는 길은 초라한 면세점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주인은 자다가라도 일어났는지 눈빛이 게슴츠레하다. 무슨 사탕 종류들만 많았으며 그다지 필요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기차가 출발하고 얼마쯤 지났을까? 또 갑자기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풍만한 몸매의 전형적인 몽골여인이 들어와 위압적인 자세로 여권인가를 보자고 한다. 이미 자정이 한참 지나 사람들이 곤히 잘 시간이었지만 노크는 없었다. 그렇게 기차는 밤새 먹빛 세상을 달렸고 여명이 밝아올 때도 여전히 끝없는 벌판을 달리고 있었다. 간간히 양떼들이 보였다

(오랫동안 와 보고 싶었던 나라,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다. 촬영=윤재훈)
(오랫동안 와 보고 싶었던 나라,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다. 촬영=윤재훈)

그리고 태어나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도시, 황량한 벌판의 한 가운데 자리잡은 낯설은 도시 <울란바타르Ulan Bator>에서 기차는 천천히 몸을 풀었다,

“푸른 초원의 나라.
오직 구름만이 그늘을 만들 수 있는 땅,
그 벌판에는 따로 길이 없었다.

그냥 사람이 지나가면 길이 되었다.”

이따금 길도 없는 그 벌판을 자유자재로 달려가는 트럭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전부 ‘기아 트럭’이었다. 몽골의 가장 북쪽, 러시아와 국경지역, 바다 같은 호수 <홉스골>을 가도, 남쪽 끝 중국과의 접경 지역 <고비사막>의 허름한 가게집 냉장고 문을 열어도, 한국의 OB와 크라운 맥주가 시원하게 냉장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손에는 대부분 삼성 휴대폰이 들려있었으며, 그리운 사람과 통화를 하거나 인터넷을 통해서 세계와 접선하고 있었다.

바로 우리의 조국이었다. 우리 민족은 세계 어디를 가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를 실천한 능력이 충분히 되어있었다. 36년 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 팔레스타인처럼 아시아에서 가장 불쌍한 국민으로 떠돌다, 그것도 모자라 외세에 의해 1950년 동족상잔의 전쟁을 3년 동안이나 치루면서 국토는 초토화가 되었던 나라이다.

5, 60년 대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했던 국가, "기브 미 초콜렛"을 외치며 외세의 차 꽁무니를 따라가면서 외치던 그 코흘리개들이 이미 노년이 된, 세계의 원조에 의지했던 나라. 하지만 이제는 그 은혜를 갚을 정도로 잘 살고 있다. 세계에 그만큼 돌려주어야 할 때이다.

(몽골여행 카페 10주년 기념식. 촬영=윤재훈)
('몽골여행' 카페 10주년 기념식. 촬영=윤재훈)

울란바토르에는 많은 한국인들이 살고 있다.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식당과 슈퍼도 많으며, 술집과 한국인이 운영하는 UB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특히나 ‘몽골여행’ 카페를 운영하는 ‘몽랑’님과 만나 그 분의 집에서 한참동안 같이 지내던 그 고마움을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다.

중심가 대형 백화점에서 한국 중고 휴대폰가게를 하던 한국 청년들을 만났으며, 그들과 같이 태를지를 가다가 길가에서 마유주를 마시고 올라오던 가벼운 취기, 서로를 바라보며 짓던 선한 웃음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태를지’에서 거북바위를 지나 무릎까지 발을 걷고 건너던 ‘멀리 흐르는 강’이라는 의미의 ‘톨 강’,을 건너가던 기억도 새록하다.

(강물 속 자갈바닥을 짐과 사람까지 싣고 간신히 넘어온 말이, 기진맥진했다. 촬영=윤재훈)
(금방 술에 취해 꼬꾸라지던 남편을 세워, 강을 건너가는 여인의 얼굴에 금방 미소가 피어 오르다. 촬영=윤재훈)

“우마(牛馬)차는 마부의 거친 함성에 간신히 넘어가고,
강에 빠진 차는, 다른 차가 줄을 매달고 끌어주어야만 간신히 넘을 수가 있었다.
톨 강 넘어 게르에서 바라보았던 별빛,
커다란 술병처럼 생긴 양은 통 안에 양고기를 넣고
달궈진 차돌을 넣어 익혀 나오던, 허르헉(양고기) 구이.


새벽까지 게르 위에서 어머니의 눈빛처럼 떠, 나를 내려다보던 물 먹은 별.
새벽 낚시하던 현지인들,
말을 타고 누비던 초원의 푸른 빛.


그 벌판 위에서 사람들은 날마다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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