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⑮] 중앙아시아를 열망하다1…카자흐스탄 숲속도시 '알마티'

윤재훈 기자
  • 입력 2020.08.12 15:48
  • 수정 2020.09.0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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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를 열망하다 

 

“조그만 도시를 벗어나면 황량한 스텝지역으로,
인간의 오랜 역사를 바짝 마른 황토빛으로 증언하고 있다.
눈을 돌리면 백골이 되어버린 지형들이 박물관의
화석처럼 눈이 부시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저 불모지를
인류는 서로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가.”

 

카자흐스탄 숲속도시, 알마티(Almaty)를 가다

(숲속 도시, 알마티. 촬영=윤재훈)
(숲속 도시, 알마티. 촬영=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실크로드의 길목이며 ‘사과의 도시’로 유명한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알마티>로 향했다. 세계에서 9번째로 큰 나라, 우루무치를 출발한 국제열차는 하루 밤낮을 달려 마침내 태어나서 처음 와보는 낯설은 도시, 초대장이 없으면 올 수 없었던 아주 까다로웠던 중앙아시아의 <알마티>에 도착했다.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옛 15개국 소련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은 백만장자 고려인이 사는 국가다. 현재 카자흐스탄 재산 순위 1위 ‘블라디미르 킴’이라는 카작무스 기업 CEO도 고려인이다.

특히나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한국의 가전제품을 좋아하며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과 LG의 TV 등을 좋아하며 곳곳에 커다란 광고들이 많다. 또한 과거에 비해 일본차 못지않게 성능이 좋아진 한국차도 선호한다.

“‘주몽’은 인근 나라와 마찬가지로 국민드라마이며, ‘꽃보다 남자’의 ‘이민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빛나는 막장 드라마 ‘하늘이시여’가 나올 때면
아주머니들이 결말이 궁금하고 안달이 나서 여기저기 많이 물어보았다고 한다.”

언어와 풍습은 물론 생김새가 너무 달라 나를 더욱 낯설게 했다. 페르시아인과는 약간 다른 유럽인에 더 가까운 것 같은, 서글서글한 생김새들. 옛 시절 몽골과 러시아 등의 지배를 받았다는 민족, 그 땅에 발걸음을 내딛었다. 9시가 훨씬 넘어간 시간, 주머니에는 카자흐스탄 돈 한 푼도, 호텔도 예약이 되어 있지 않아 더욱 마음을 급하게 했다.

우선 기차 안에서 중국인에게 물어본 대로 ATM에서는 수월하게 돈이 나왔다. 역 광장으로 나와 조금 걸어가니 자그마한 호텔이 보였다. 이 낯설은 대륙에서 홀로 여행서에 몇 개 나온 호텔들은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그곳으로 들어갔다.

(카자흐스탄 어린이 전통무용단. 촬영=윤재훈)
(카자흐스탄 어린이 전통무용단. 촬영=윤재훈)

온 도시가 숲길이다. 거기에 자그마한 수로를 만들어 물이 졸 졸 졸 흐른다. 그것도 모자라 곳곳에 숨어있는 커다란 공원들은 나무들로 빽빽하다.

오래된 대형 벤츠들이 흔하게 보인다. 물가도 별로 비싸지 않은데 저 대형벤츠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제는 대형 자가용 벤츠를 탔는데 500T(1650원)가 나왔다. 여기에서는 택시들을 보기가 아주 힘들다. 그냥 손을 위아래로 가볍게 흔들고 있으면 금방 자가용이 와서 태운다. 먹고 자는 것도 저렴해 장기 배낭 여행자들에게 딱이다.

(서커스 극장이 있는 공원. 촬영=윤재훈)
(서커스 극장이 있는 공원. 촬영=윤재훈)

1991년 소련연방에서 독립했지만 도시에는 아직도 그 향수가 깊게 배여 있다. 러시아인들이 흔하게 보여 자국민들과 구분이 잘 안된다. 러시아어와 함께 공용어를 쓰고 있지만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쓰는 것이 더 편하다고 한다.

그때보다 의료시설이 더 열악해지고 서민들은 살기 힘들어지고 국민소득도 낮아졌다고, 기성세대들은 은근히 그때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소련의 핵실험의 상처가 깊게 배여 있고 그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많아, 아직도 국토 곳곳에 그때의 상처를 치료하느라 진땀을 뺀다고 한다. 환경 조건도 역시 마찬가지라 파괴된 자연들을 복구하는데도 요원하다고 한다.

(대상들의 행렬도. 촬영=윤재훈)
(대상들의 행렬도. 촬영=윤재훈)

나는 중앙아시아로 들어오면서 왜, 이렇게 끝자리가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가 많을까 의문이 들었다. 한두 나라도 아니고 7개의 나라가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랜 세월 그 지역의 문화와 풍습 등에 의해서 생겨났을 것이다. 마치 유럽에서도 ‘네덜란드, 아이슬란드, 아일란드, 폴란드, 핀란드, 도이칠란드, 잉글란드, 스코틀란드’ 등과 같이 ‘~란드(land)’로 끝나는 나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스와 러시아도 독일어로는 그리힌란드(Griechenland), 루슬란드(Russland)로 부른다. 그 이외에 비록 나라이름은 아니더라도 ‘~란드’로 끝나는 지명은 유럽에서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다.

여기에 카자흐스탄은 ‘카자흐족의 나라’, 우즈베키스탄은 ‘우즈벡 사람들의 나라’라고 하는 것처럼, 잉글랜드는 '앵글로색슨족의 땅', 스코틀랜드가 '스코트족의 땅'이라고 한다.

또한 중앙아시아는 1991년 이전까지만 해도 세계 지도상에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뿐이었고, 소련에 병합된 5개의 스탄 나라는 표시되지도 않았다. 중앙아시아는 아랍어를 쓰지 않는 이슬람 국가들로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등이 예전부터 세력 각축을 벌이는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지도를 보니 동쪽 히말라야 인근의 ‘~스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은 아직도 지도에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어, 국경선이 혼란스러움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듯하다. 얼마 전에 일어난 인도와 중국의 유혈충돌도 이것의 연장선상일 것이다.

이들 5개 스탄 국가들은 1917년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이후 인근 14개국과 함께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소련, USSR)에 점령당했다.

(카자흐스탄 군병도. 촬영=윤재훈)
(카자흐스탄 군병도. 촬영=윤재훈)

그리고 마침내 노벨평화상을 받은 페레스트로이카(개방)의 기수 고르바쵸프에 의하여 1991년 12월 31일 74년 동안 이어져 온 공산주의의 맹주 소련이 붕괴되면서 각기 독립을 하였다. 그 후 이 5개국은 독립국가연합(CIS)이라는 이름으로 러시아와 다시 뭉쳤으며, 국가 간에 어떤 규제 같은 것은 없다.

그리고 놀랍게도 투르키스탄(중국), 발루치스탄(파키스탄,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 다게스탄(러시아), 누리스탄(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란 등), 쿠르디스탄(이라크, 이란, 시리아, 아르메니아, 터키) 등 5개 지역은 아직 ‘미승인(미독립) 지역’으로 남아있다.

‘스탄(-stan)’이라는 이름은 페르시아어로 ‘지역, 장소, 땅, 나라’ 등을 의미하며,
고대 인도어인 산트크리트어(梵語)에서 비롯되었다.

이곳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5국 ‘스탄’ 중 카스피해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13세기에 몽골의 지배를 받았고, 15~16세기에 유목민 제국을 통합하며 세력을 키워 나가다 19세기 중반에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탄전, 유전, 구리 광산 따위가 있어 공업이 발달하고 있으며 앞으로 경제적으로 전망이 매우 밝은 나라이다.

이들 5개 국가들은 구소련에 속해 있을 때는 대규모 집단농장에서 목화 재배를 할 수 있도록 아무다리야(Amu Dar’ya) 강과 시르다리야(Syr Dar’ya) 강의 물줄기를 끌어들였다. 하지만 그 후유증으로 농약에 오염되고 척박한 염습지로 땅이 변해 버려 지금도 고충을 겪고 있다.또한 대부분의 국토가 광활한 사막 또는 거의 사막에 가까운 땅이다. 특히 이곳에는 힌두쿠시 산맥, 파미르 고원, 사페드코 산맥과 같은 거대한 장애물이 놓여 있어 더욱 개발이 더디다.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의 ‘키루스와 다리우스, 알렉산드로스, 아틸라, 마무드, 칭기즈 칸, 티무르, 바부르’와 같은 정복자들도 스탄 국가들을 거쳐 가면서 황폐화시켰다. 서기 700년경 이란으로부터 전해진 이슬람교는 7개 스탄 국가들에 전파되었다. 오늘날 스탄 국가들은 ‘카스피 해의 푸른빛, 사막 모래의 황금빛, 그리고 유혈 충돌에서 나온 붉은 빛으로 짜인 카펫’을 연상시킨다.

(광활한 대지와 러시아 시대 호텔이 그려진 카자흐스탄 지폐. 종이질과 형태가 유로와 많이 흡사하다. 촬영=윤재훈)
(광활한 대지와 러시아 시대 호텔이 그려진 카자흐스탄 지폐. 종이질과 형태가 유로와 많이 흡사하다. 촬영=윤재훈)

높은 건물들이 별로 없어 스카이라인이 시원하다. 그래서 지폐에는 소련시대에 지어놓은 카자흐스탄 호텔이 당당하게 그려져 있다. 동쪽으로는 눈 쌓인 <천산(天山)산맥>이 서쪽과 남쪽은 <일레 알라타우(Ile Alatau) 산맥>이 얼음산처럼 눈에 쌓여 도시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사방을 둘러보면 온 도시가 눈에 시리다.

(알마티 센트랄 파크. 촬영=윤재훈)
(알마티 센트랄 파크. 촬영=윤재훈)

그리스의 어느 고대 도시라도 걷는 듯 이따금 고딕양식의 중후한 건물들이 보인다. 여기저기 음악당,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들이 많고 밤이 되면 화려한 불빛으로 치장하여 이국의 정취를 더한다. 아직도 카자흐스탄에는 서사적인 민요시와 서정시를 낭송하는 전통이 여전히 남아있으며, 유명한 작가로는 시인 <잠불 자바예프>와 극작가 <무흐타르 아우에조프>가 있다. 때문에 많은 예술, 연극학교가 있으며, 알마티에는 국립 미술관이 있다.

소련에서 독립되면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1997년 12월 10일 수도를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누르술탄)로 옮겼다. 그는 장기 집권을 하며 독재정치를 하다. 2019년 3월 20일 집권 29년 만에 자진 퇴임하였다. 현재는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가 두 번째 대통령이다.

아스타나는 카스피해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오일머니를 앞세워,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도시로 발돋음하고 있다.

그는 소련의 눈치에 민감한 위정자였나 보다. 어느 날 국민들이 자고 일어나니 양곤이었던 수도를 하루 아침에 <네피도>로 옮긴 미얀마 대통령처럼, 그의 뜻에 따라 아스타나로 수도를 옮겼다. 그러나 <알마티>는 지금도 경제 금융의 허브로 카지흐스탄의 경제 근간의 20% 이상을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는 최대의 도시이며 상업의 중심지이다. 1911년에는 대지진이 일어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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