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⑯] 중앙아시아를 열망하다2…'알마티'에서 한국을 만나다

윤재훈 기자
  • 입력 2020.08.13 11:33
  • 수정 2020.08.20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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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를 열망하다 2 

 

“북방의 오랑캐를 막는다고 풀을 따라 짐승을 데리고 이동하던
유목민의 길을 만리장성으로 막고,

흉노족이니 돌궐족이니 선비족이니 하며 총칼을 휘두르며 살육을 일삼았으니,
간의 역사는 얼마나 살풍경(殺風景)인가.”

 

'알마티'에서 '한국'을 만나다

(카자흐스탄의 광활한 스텝지역. 촬영=윤재훈)
(카자흐스탄의 광활한 스텝지역. 촬영=윤재훈)

“조그만 도시를 벗어나면 황량한 스텝지역으로,
인간의 오랜 역사를 바짝 마른 황토빛으로 증언하고 있다.
눈을 돌리면 백골이 되어버린 지형들이
박물관의 화석처럼 눈이 부시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저 불모지를 인류는
서로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가.”

“북방의 오랑캐를 막는다고 풀을 따라 짐승을 데리고 이동하던
유목민의 길을 만리장성으로 막고, 흉노족이니 돌궐족이니 선비족이니 하며
총칼을 휘두르며 살육을 일삼았으니, 인간의 역사는 얼마나 살풍경(殺風景)인가.”

(금방이라도 ‘사공의 뱃노래~’가 흘러나올 것 같은 아코디언 연주자. 촬영=윤재훈)             
(금방이라도 ‘사공의 뱃노래~’가 흘러나올 것 같은 아코디언 연주자. 촬영=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동서남북 온통 숲길이다. 그러니 걷은 것이 마냥 즐겁다. 숲속에는 피톤치트가 가득하며 쭉 뻗은 키에 미남 미녀가 많은데, 대부분 웃음 띤 얼굴들이 평화롭다. 비록 “김태희가 밭 갈고, 김성령이 김매는 모습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잠깐씩 그 표정 속에는 74년 소련의 지배하에 살았던 식민지 시대의 표정이 걷히는 것도 같았다.

KGB 비밀경찰이니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았던 강제수용소니 하는 이야기들이 박물관에서나 존재했던 아득한 이야기로까지 느껴진다. 같은 식민지를 겪은 국민으로 가슴 싸한, 아픔이 저려온다.

나무숲에 가려있는 카페나 가게 등 다양한 장소들이 더욱 낯설게 다가온다. 한 시간 이내 정도의 거리는 그냥 걷고 싶어진다. 트롤리버스가 도심을 오가고 지하철역은 단 9개뿐이다. 그러니 단촐하고 조용하다.

방공호 역할이라도 할양인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지하철은 엄청 내려간다. 그 깊은 굴속으로 에스켈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어느 유명한 호텔이나 카페에 온 것처럼 불빛들이 중후하게 여행자를 맞이한다. 그래서 알마티는 한없이 편안하다. (‘알 만한 사람들은(알마티)’ 다, 이 아름다운 곳을 구경하기 위해 ‘카자흐~ 스탄~^^으로 온다)

(‘3,200미터 일레 알라타우 산’의 정상에 있는 (침블라크chimblak) 스키장. 촬영=윤재훈)
(‘3,200미터 일레 알라타우 산’의 정상에 있는 (침블라크chimblak) 스키장. 촬영=윤재훈)

“새소리가 청량하게 아침을 깨운다.
돌돌돌, 빠져 나가는 물줄기에 종이배나 한 척 띄워 볼거나.
그러면 한강변 어디쯤이나 정박하여, 그리운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해줄까.”

오늘은 늦봄 햇볕이나 쬐이며 쉬엄쉬엄 길을 나서본다. 알마티에서 25km 가량 떨어진 3,200미터 고지에 있는 ‘일레 알라타우 산’의 정상에 있는 (침블라크chimblak) 스키장을 보러간다. 스키시즌은 11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나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2011년에는 중앙아시아 최초로 국제경기인 <동계 아시안게임>이 열렸으며, 빙상경기는 수도인 아스타나에서하고 이곳에서는 설원종목 경기가 열렸다. 2018년 우리나라와 동계올림픽 유치 경쟁을 하려다 포기하고 2022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의 스키어들이 리프트를 타고 지나가는 가장 좋은 길목에,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 광고판이 있다. 촬영=윤재훈)
(세계의 스키어들이 리프트를 타고 지나가는 가장 좋은 길목에,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 광고판이 있다. 촬영=윤재훈)

리프트의 총길이는 3,620m이다. 산이 워낙 높아서인지 단번에 케이블카를 연결하지 못하고, 2번이나 내렸다가 다시 바꿔 타고 올라간다. 멀리 설산들을 구경하고 가다보면 3,200미에 있는 정상역인 톨가Talgar 패스 역에 도착한다. 

중간에서 한 번 갈아타기 위해 내리려 하는데, 전면 산등성이에 삼성 갤럭시 간판’이 보인다.

“이 높은 이국의 산허리에서 'SAMSUNG'이 보이다니,

웬일인지 반갑기까지 했다."

산을 올라가는 리프트카나 케이블카에서 다 보일 수 있는 목 좋은 지점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리자 이번에는 맨 먼저 보이는 것은 ‘LG’의 커다란 간판이다.

“도대체 여기가 어느 나라인가!
고국으로부터 수천 킬로 떨어진 중앙아시아 3,200m, 산 위가 아닌가.”

(중앙아시아 3200미터, 낯설은 산중턱에서 LG와 삼성의 간판이 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촬영=윤재훈 )
(중앙아시아 3200미터을 올라가는 낯설은 산중턱에서 LG와 삼성의 간판이 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촬영=윤재훈 )

“아시아의 어느 나라를 지나갈 때도 나는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나라를 가나 가장 번화가, 가장 좋은 길목에,
‘삼성과 LG’의 간판이 있어 자부심을 갖게 했다.

다만 이제 우리나라 제벌들도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삶을 살 수 있는
‘존경받은 부자’가 그리운 시대다.”

“한국의 국력은 이만큼 성장했다,
불과 60여 년 전,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했던 그 나라가.
‘아이들, 어른 할 것 없이,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 상관없이
그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있으며,
그 안에는 K-Pop이 저장되어 있었다.

시장 여기저기 틀어놓은 TV에서는 한류 드라마가 나오고 있다.”

“‘원조를 받았던 나라에서 이제는 원조를 해야 하는 나라”로 발돋음한 한국,
자부심을 갖되 책임과 의무가 따를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200만 명이 훨씬 넘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들어와 일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임금을 늦게 주거나, 떼어 먹거나, 폭력을 휘둘러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세계 여행을 하는 내내 이것이 걱정되었다"

 

케이블카 안에서 우연히 한국인 목사님과 이곳에서 양성했다는 현지인 여 목사님을 만나, 차 한 잔씩을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이후 카자흐스탄 ‘타라즈’라는 도시에서도 현지 교회를 운영하는 한국인 목사님 두 사람과 사모님을 만나 며칠을 정답게 지냈다.

“종교는 마약이다”라고 하며 종교의 자유가 없었던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제는 성직자들이 생겨나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3,000미터가 넘은 게르 카페에서 차를 마시다. 촬영=윤재훈)
(3,200미터가 넘은 게르 카페에서 차를 마시다. 촬영=윤재훈)

다시 두 번째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랐다. 늦은 봄볕에 눈은 녹고 있었다. 얼음산 정상에서 손차양을 하고, 화창한 중앙아시아 대평원을 바라보다 건너편 산등성이를 오른다. 게르 카페가 두 군데나 있다. 그곳에 앉아 카자흐스탄 전통차를 앞에 두고 상념에 젖어본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차를 마셔보기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이어서 두 번째 인 것 같다.

"고개를 드니 아득한 동쪽,
고국 쪽에서 훈풍(薰風)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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