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⑰] 중앙아시아를 열망하다 3…알마티를 걷다

윤재훈 기자
  • 입력 2020.08.19 13:21
  • 수정 2020.08.22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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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를 열망하다 3

 

“나는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가,
낯설고 산(山)설은 세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알마티
천산 설산과 일레 알라타우 설산이
인간의 도시를 감싸고 있는 곳 

무엇을 찾아 예까지 왔는가?
수억 년 설산이
얼음 바람을 일으키며
나에게 묻고 있다.”

 

알마티를 걷다

 (천산산맥과 황금빛 모스크. 촬영=윤재훈)
 (천산산맥과 황금빛 모스크. 촬영=윤재훈)

과거 소련 연방은 <연해주> 거주 한인 17만 명을 약 6000㎞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나라 잃은 한인들의 한 많은 수난사(受難史)가 점철되어 있는 그 땅, 그 중에도 ‘카자흐스탄’. 1937년 스탈린의 정권하에서 이루어진 강제 이주에 따라 연해주(프리모르스키 변경주)에 있던 수십만의 한인들이, 하루아침에 보따리 하나 없이 맨 몸으로 기차에 올랐다.

그들은 지도층에 대한 검사를 명분으로 참혹한 이주 작전이 개시되었다. 10월에서 12월의 혹한,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한 달여에 걸친 이동 중, 추위와 굶주림으로 5분의 1이 숨졌다. 한인들이 당도한 곳은 인가(人家) 하나 없는 황량한 반사막 초원지대인 <우슈토베>란 곳이었다. 하루 아침에 아무것도 없는 중앙아시아의 칼 같은 추위 속에 거친 평원으로 내던져졌다.

“‘일본인이 한인을 이용해 간첩으로 쓴다’는 우려와 한인(韓人) 수의 증가에 따른 ‘자치요구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 이외에도,

농사를 잘 짓는 우리 ‘한민족의 농업(벼농사)기술을 중앙아시아의 개척에 이용하기 위한 목적’과 ‘소수 민족 분산 지배 정책’ 등의 정치적 이유로  
화물차와 가축 운반철도에 짐승처럼 이송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동포들은 두더지처럼 땅을 파고 들어가 시베리아 한설(寒雪)를 더러는 이겨내고, 더러는 죽어갔을 것이다. 그렇게 토굴을 파고 정착에 나선 한민족은 공동체를 형성해가며, 당시까지 인정되던 벼농사의 북방한계선을 북쪽으로 확장시키고, 문화를 보존하면서 현재의 고려인 사회를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는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게 되자, 적성민족이라는 누명을 쓰고 후방의 노동전선(탄광, 군수공장, 북극권 산림벌체 등)에 동원되어 추위, 기아, 강제 사역으로 고통 받았다.

그 한 많은 땅을 후손들은 편안하게 차를 타고, '한류'와 '잘 사는 나라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이 땅을 찾아온다.

(일층에는 소규모 가게들이 빙 둘러 있는 대형 슈퍼. 촬영=윤재훈)
(일층에는 소규모 가게들이 빙 둘러 있는 대형 슈퍼. 촬영=윤재훈)

알마티의 명소들

커다란 컨테이너들이 길게 광장에 누워있고 한쪽에는 대형슈퍼가 있다. 정면은 잘게 나누어서 작은 상점들이 여럿 들어섰다.

식사 때는 이미 지나 배가 고프다. 배낭 여행자에게는 별다른 선택이 없어 가장 만만한 케밥 가게로 들어간다. 한 개로는 양이 차지 않아 두 개를 먹고 나오는데, 멀쩡하게 생긴 청년이 구걸을 한다.

슈퍼 안으로 들어가니 새로 지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플래스틱 냄새가 코를 찌른다. 개발도상국으로 갈수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환경에 대한 개념이 더 없는 것 같다. 마치 우리의 70년대처럼 색다른 것, 문명의 이기들을 많이 소비할수록, 더 상류층인 듯한 개념들이 뿌리내린 것 같다.

(카자흐스탄 청년의 모습이 경쾌하다. 촬영=윤재훈)
(카자흐스탄 청년의 모습이 경쾌하다. 촬영=윤재훈)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저장되어 있어 모든 것이 부족했던 옛 소련 시대와 대비가 된다. 목도 마른 오후라 그런지 생맥주를 커다란 페티병에 담아주는 신기한 풍경이 먼저 눈에 띤다. 한 사내가 그것을 사가는 걸 보니 오늘 저녁 파티라도 할 모양이다.

가격은 400~500T 이다. 나도 한 통 사 저녁 뷔페 만찬을 미리 준비한다. 이 나라에서는 가격 대비 뷔페 같은 식당이 여러 음식을 골고루 먹기에 좋다. 요즘 우리 고속도로 휴게소들처럼 가격을 보고 고르면 된다.

밖으로 나오니 멀리 황금빛 돔의 모스코가 설산과 오버랩 되면서 눈 시리게 다가온다.

(중앙아시아 황토사막을 달려 어느 머언 시골까지 가는 낡은 버스는 호객에 한창이다. 촬영=윤재훈)
(중앙아시아 황토사막을 달려 어느 머언 시골까지 가는 낡은 버스는 호객에 한창이다. 촬영=윤재훈)

잡다한 물건을 파는 노점들이 몇 개 흐릿한 불빛 속에 서 있다. 주인들은 그다지 크게 호객을 하지 않는다.

건너편에는 어디론가 떠나는 미니버스들이 몇 대 서있고 차장들은 악을 쓰며 호객을 한다. 차들은 그르렁 그르렁 할아버지 해소기침 같은 소리를 내며 힘들게 소리를 이어간다.

검정 커튼이 휘날리는 작은 점포 안에는 도박기계 세 대가 놓여있고, 청년들이 잔뜩 행운을 기대하며 당기지만 돌아오는 건 매번 헛손질이다. 어느 도시의 뒷골목이나 이런 작은 기다림들이 그나마 팍팍한 하루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작은 위안이 될 지도 모른다.

숙소에 가려고 손을 두어 번 위아래로 흔드니 금방 택시가 와 선다. 이곳은 영업용 택시보다 자가용 택시들이 훨씬 더 많다. 벤츠나 아우디도 이곳에서는 흔하다.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더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러니 ‘한국의 외제차 족들이여! 이곳에 오면 그리 어깨에 힘을 줄 필요가 없다.’

차 안에는 집으로 귀가하는 한 가족이 타고 있다. 들어가는 길에 기름 값이라도 벌까, 세운 듯하다. 가격을 묻자 익숙하지 않는지, 혹은 언어가 낯설었는지 어른들은 더듬거리는데,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어린 아이가 툭, 튀어나오더니 500팅게를 부른다.

이어 내가 외국인처럼 보이자 1000팅게를 부르고 돌아서려 하자 800팅게를 부른다. 가격은 얼마 되지 않지만 사라져 가는 소년의 동심(童心)이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알마티 정류장 풍경. 촬영=윤재훈)
(알마티 정류장 풍경. 촬영=윤재훈)

소련이 해체되고 나라는 독립된 지가 29년이 지났는데,

‘과연 누구를 위한 독립이었을까?’
‘고위층과 눈치 빠른 자들만 더 잘 사는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1990년 4월 24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가 카자흐스탄 대통령에 당선되고, 마침내 1991년 12월 16일, 인근의 13개국처럼 소련으로부터 카자흐스탄도 독립이 된다. 그리고 그는 독재와 계속된 연임으로 장기 집권을 하였으며 무슨 연유에서인지 선거를 하면 90% 이상의 득표율이 나왔다. 거리 곳곳에는 그의 동상이 알 수 없는 시선으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2009년 집권 여당인 ‘누르-오탄당’은 선거를 없애고 어떤 나라의 대통령처럼, 영구집권을 획책하다가 야당과 서방 세계로부터 질책을 받는다. 29년의 무소불위 권력을 누리다가 2019년 3월 20일 전격 사퇴를 발표한 3일 후에, 수도인 ‘아스타나 시’를 그의 이름을 따서 ‘누르술탄’으로 바꾸는 것이 결정된다.

풍부한 석유와 지하자원이 많아, 누루술탄은 수도를 실크로드의 중심지인 알마티에서 아스타나 옮기고, 그곳에 멋진 건물들을 많이 지었다. 덩달아 옆에 있는 키르키스탄에 비해 경제는 매년 성장하고 있으니, 이 가벼운 자본주의 시대에 국민들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을 용서해 줄 수 있었을까?

소련 치하에서 잠들었던 땅 밑에는 무한정 지하자원이 묻혀있고, 카스피 해에서는 매일 석유가 펑펑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땅 짓고 헤엄치기겠다.

“그러나 지구의 자원들이 과연 이렇게 한 나라에 의해,
독점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밤마다 수많은 현지인과 여행자가 뒤섞이는 바쿠의 바닷가. 촬영=윤재훈)
(밤마다 수많은 현지인과 여행자가 뒤섞이는 바쿠의 바닷가. 촬영=윤재훈)

카스피 해에 석유가 나와 인근 나라들이 그것을 서로 빼내느라 바다가 재앙을 당하고 있다. 그 유전이 땅 밑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더욱 야수적으로 날뛸 것이다.

건너편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바라본 바다는 정말, 재앙이었다. 기름덩어리 범벅이 된 해안선은 갯바위들마다 덕지덕지 기름 찌꺼기로 찌들고 있었다.

(흥청거리는 바쿠. 달도 삼킬 듯한 카스피 해의 화염. 촬영=윤재훈)
(흥청거리는 바쿠. 달도 삼킬 듯한 카스피 해의 화염. 촬영=윤재훈)

밤이면 캄캄한 바닷가에 인근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뒤섞여 있었으며, 바쿠의 랜드마크인 돛단배 모양의 빌딩 세 개에서는 석유공에서 불타오르는 화염불 세 개가 악마의 혀처럼 날름거리고 있다.

“그 불빛 속에서 저개발국가로 갈수록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은
더욱 심화가 되고 있으니, 서민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힘이 든다.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은 갈수록 극심해진다.”

(카자이스탄의 민족시인 아바이 동상. 촬영=윤재훈)
(카자이스탄의 민족시인 아바이 동상. 촬영=윤재훈)

"'문득 대한민국의 통일은 누구를 위해서였을까?'
수많은 국민들과 독립투사들의 피로서 이 나라는 해방이 되어 것만,
오히려 식민지 시대 독립투사를 때려잡고 호의호식하던 친일파들만
해방된 조국에서도 다시 상류층이 되었다.
독립투사 자손들은 가난으로 밀려나 허덕일 때,
친일파들은 여전히 부유하게 살고 있다."

‘통일이 되지 않으면 휴전선을 베고 눕겠다’던 김구선생님의 말씀도 새삼 떠오르는데, 한반도는 미제의 비위를 맞추던 친일파들이 여지까지 쥐락펴락한다.

여기에 철면피(鐵面皮) 같은 극렬 친일파 후손들은 친일을 해 하사받은 조국의 땅을 다시 돌려달라는 소송까지 진행시키며, 친절한 판사들에 의해 승소하고 있다.


“이 땅에 진정한 해방은 언제 올 것인가?”

(중국과 철망 건너 카자흐스탄, 천산산맥이 끝없이 따라오며 나를 다독인다. 촬영=윤재훈)
(중국과 철망 건너 카자흐스탄, 천산산맥이 끝없이 따라오며 나를 다독인다. 촬영=윤재훈)

1997년 7월11일 친일파 이완용의 증손자 선고공판에서 (서울 고법 민사 2부 권성 부장판사)는,


“반민족행위자 처벌하고 재산권 박탈하는 법률을 국회가 제정한 일 없어…,
반민족행위자 후손이라고 하여 법률 없이 재산권 박탈하는 건,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


“과거의 일을 정의 관념만 내세워 문제 삼는 건, 오히려 사회 질서에 어긋난다.”

‘정의를 내세우면 사회질서에 어긋난다는 이 해괴한 논리’,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자신의 목숨만 구걸하기 위해 나라를 팔아먹는 반민족행위자를 왜, 독립된 이 나라가 그들의 목숨과 재산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인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2003년 항소심인 서울 고법 민사 20부(당시 재판장 민일영 부장판사)는


“법적인 장치 없이 국민감정을 내새워 재산권을 박탈하는 건, 법치주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천산산맥이 끝없이 따라오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 한다.’ 촬영=윤재훈)
(천산산맥이 끝없이 따라오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 한다.’ 촬영=윤재훈)

사법부 내에서도 오죽하면 “국가의 정통성과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었다. 

 

2018년 9월 9일에 방영된 MBC탐사 기획 프로그램 ‘스트레이트’를 잠깐 보니, <대법원의 친일 행각, 양승태 사법부의 숨겨진 범죄추적>에서, 

"2012년 대법원이 한일 양국 가운데 처음으로 최종심으로 일본 전범 기업의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전범기업들이 한국 최대의 법률사무소 ‘김&장’을 내세워 대법원에 상고했으며, 수년 째 판결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 사이 강제 징용 피해자 할아버지들 4명 중에 3명은 돌아가시고 1명만 남은 상태라고 하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소송을 연기하거나 그 결과를 뒤집기 위해, 김기춘 비서실장이 사법부에 그 뜻을 전했다고 한다. 사법부 농단의 숨은 실세 양승태 대법원장과 대법관 박병대 법원행정처장, 차한성 대법관(전 법원행정처장), 고영한 대법관, 그리고 임종헌 대법원 법원행정처 차장까지 골고루 연류 되어 있다. 특히 박병대 대법관은 2012년 판결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사이에 '평생 지켜왔던 가치관이 갑자기 변하기라도 한 것인가?'

연합뉴스 기사를 보니 2018년 11월 28일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를 두고, “아무리 병소를 많이 찾는다 하더라도 해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며 우회적 비판을 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역사에 다소 관용하는 건 관용이 아니요, 무책임이다.
‘관용하는 자’가 ‘잘못을 저지른 자’보다 더 죄다.”

선생님의 말은 해방 이후 그렇게, 현실이 됐다.


“국민은 누구를 믿을 것인가?
사법 거래를 하는 대법관들을 믿을 것인가?

권력의 눈치만 보고, 재벌과 끈을 연결하며,
죄수들과 형량거래를 하는 검사들을 믿을 것인가?”

(온통 숲에 쌓인 알마티 도심의 집들. 촬영=윤재훈)
(온통 숲에 쌓인 알마티 도심의 집들. 촬영=윤재훈)

온통 나무숲에 둘러싸인 도시를 쉬엄쉬엄 걷는다. 이 거리는 카자흐스탄의 유명한 시인인 ‘아바이’의 이름을 딴 거리이다. 왼쪽 도로도, 오른쪽 도로도, 심지어 중앙로까지도 거대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그 옆으로는 돌돌돌, 물이 흐른다.

피톤치트가 쏟아지고 음이온이 내 몸을 감싼다. 약간 어두컴컴하기까지 한 그 길을 따라 산행을 하듯 천천히 걷는다. 이런 숲속 도시가 어디에 또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고려인시인, ‘이 스따니슬라브’. 김병학 시인 제공)
(고려인시인, ‘이 스따니슬라브’. 김병학 시인 제공)

이곳 카자흐스탄에는 중앙아시아의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을 대표하는 고려인 시인 <이 스따니슬라브> (59)가 있다. 시인은 1959년 카자흐스탄 북부 아크몰라(현재의 수도인 아스타나 지역)의 고려인 집안에서 태어나, 1981년 알마티공대를 졸업한 뒤 유명한 시인으로 성장했다.

'현대 러시아 해외'라는 20인 사화집에 러시아 거주 시인이 아닌 다른 민족 시인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됐고, 그의 작품은 카자흐스탄 국정교과서에도 수록됐다.

그의 시세계를 이야기하려면 1937년 당시 소련을 통치하던 스탈린이 취한 ‘한민족 강제이주 사건’을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의 시 속에는 이런 슬프고 아픈 역사와 자의식이 짧은 시편 속에 묵직하고 날카롭게 담겨 있다.

 

우리의 춤은 
슬프고도 느리며
우리 노래는
오로지 애원뿐이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들려오는 대답은 '운명' (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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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사람은 이름이 없어졌다
짧은 우리 성(姓)만 남았다

여전히 우리 음식은
맵기만 한데
지난날에 대한 물음에
할아버지는
그냥 침묵할 뿐…(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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