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⑱] 중앙아시아를 열망하다 4…알마티의 명소들

윤재훈 기자
  • 입력 2020.08.21 10:35
  • 수정 2020.08.22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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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를 열망하다4

 

점토지대처럼 고르고 둥그런 말굽에
넓게 벌려 드리워진 종아리,
경쾌한 긴 다리로 걸음을 내딛는데
어깨뼈는 세상처럼 넓기도 하지.…

말은 어찌나 빠른지 털모자가 치솟고
꾀꼬리처럼 절로 하늘을 오른 듯하여라.
이 귀한 말 타타르 산양보다 빨라
이것만 생각하면 기분이 나른해진다네!…

                     -말(馬)에 대한 묘사/아바이 쿠난바이울리
 

알마티의 명소들

(카자흐스탄인들에게 존경받은 민족시인 아바이(Abai) 쿠난바이울리. 촬영=윤재훈)
(카자흐스탄인들에게 존경받은 민족시인 아바이(Abai) 쿠난바이울리. 촬영=윤재훈)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존경받은 시인이자 사상가로는 초원 유목민족의 시 세계를 대표하는 탁월한 민족시인인 아바이(Abai) 쿠난바이울리(1845~1904)가 있다. 그는 같은 민족끼리 서로를 음해하며 모함하는 것에 절망하여, 카자흐인들의 비합리성과 비뚤어진 양심을 비판하고 경고하는 시들을 썼다. 그러나 그 속에는 동족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숨겨져 있으며, 그는 친소파였다고 한다.

특히나 광활한 초원을 배경으로 시대를 읽으며 읊은 그의 시들을 보면,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고 매들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눈보라가 몰아치는 것 같다. 대표시집으로는 '황금천막에서 부르는 노래'가 있으며 한국에도 카자흐스탄 시인 최초로 출간 되었다.

그는 카자흐인들에게는 영국의 세익스피어, 독일의 괴테, 러시아의 푸시킨 같은 존재이며, 우리에게 낯설었던 초원민족의 삶과 역사인식, 사상 등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편들은 초원의 유목민족이자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에서 살았던 카자흐스탄의 문학과 정신세계의 뿌리를 펼쳐놓는다.

(미술관에 들다. 촬영=윤재훈)
(미술관에 들다. 촬영=윤재훈)

말(馬)에 대한 묘사/아바이 쿠난바이울리

짙은 앞머리와 갈대 같은 귀를 가지고
긴 목과 흘겨보는 눈길은 정녕 야성적이어라.
드센 목덜미와 명주 같은 갈기,
목덜미 아래에는 큰 보조개가 있구나.

콧구멍은 넓고 입술은 크고 두툼하며
또 척추는 산줄기마냥 강하구나.
살진 근육으로 장난치며 가슴도 넓어
먹이를 포획한 매 마냥 억세고 거칠어라.

점토지대처럼 고르고 둥그런 말굽에
넓게 벌려 드리워진 종아리,
경쾌한 긴 다리로 걸음을 내딛는데
어깨뼈는 세상처럼 넓기도 하지.

갈라진 궁둥이, 오목한 몸통, 넓은 옆구리는

아무리 봐도 말안장에 제격이로구나.

메마르고 짧은 꼬리엔 뻣뻣한 털,

꼬리 밑은 불룩하고 튼실하게 살이 쪘구나.

낮은 복사뼈와 네모난 살덩어리,
잘 뛰고 튼튼한 둥근 엉덩이 좀 보게.
배 밑은 반듯하고 얇고 홀쭉한데
다리 사이에 눌려있는 통통한 고환주머니.

뼈마디는 유연하고 종아리는 넓어라
달릴 때는 바람처럼 경쾌하여라.
나는 그를 붙잡아 천막에 매어두고 싶네,
그가 눈을 흘기는 걸 홀로 보며 즐기려고.

그는 초원이 분노하도록 이를 갈며
곧장 달리고 그 주력은 빠르고 강하지,
경주에선 경쟁적이지만 달릴 땐 충직하고,
이런 말이 없다면 망신 아닌가.

말은 어찌나 빠른지 털모자가 치솟고
꾀꼬리처럼 절로 하늘을 오른 듯하여라.
이 귀한 말 타타르 산양보다 빨라
이것만 생각하면 기분이 나른해진다네!…

(알마티의 시장풍경. 촬영=윤재훈)
(알마티의 시장풍경. 촬영=윤재훈)

'지베크 졸라(Zhibeh zholy)' 거리를 걷는다. 아르바트(Arbat) 도심 북쪽 부분에 위치한 보행자 전용도로로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의 알마티 버전이라고 한다. 양쪽으로 기념품 가게가 있으며 거리 쪽으로는 젊은 부부의 과일 가판대, 악사, 카페 등이 있다. 악사의 연주를 구경하다가 부부가 파는 과일을 샀다.

입구 쪽이 어두운 상가가 있다. 혼자 들어가기에는 약간 꺼려지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양쪽으로 조그만 가게들이 줄지어 서있다.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된 이 첨단의 시대에도 시계를 파는 곳이 많다. 상인들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아서 그런지, 굳이 내 것이 아니었던 시대, 사도 안사도 그만이었던 시대의 산물인가. 그러나 이제는 돈을 주고 사고파는 시대인데도, 아직도 “네가 필요하면 살 것 아니냐는 식이다.”

오랜 세월 세계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를 겪어오고 결국은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세계는 자유주의 물결이 팽배하고 있다. 그리고 30년이 다 되어가는 독립의 기간 동안이지만, 아직 자본주의의 서비스에 대한 개념이 자리 잡기에는 짧은 시간인 모양이다. 거리에는 온통 자국 글씨 뿐이고, 영어는 한 마디 없다. 대중이 모이는 식당, 터미널, 극장 등 어느 곳을 가도 마찬가지다.

(전차가 종점에 닿자 운전기사가 선을 바꾸고 다시 돌아간다. 촬영=윤재훈)
(전차가 종점에 닿자 운전기사가 선을 바꾸고 다시 돌아간다. 촬영=윤재훈)

트롤리 버스가 몇 대가 서는 걸 보니, 종점인 모양이다. 기사가 즉석에서 장대를 들고 오는 선에서 가는 선으로 버스에 달린 선 하나를 바꾸더니 유유히 떠난다. 여자 운전사들도 있는데, 역시 거침이 없다.

트롤리 버스(Trolley bus)는 전차와 같이 가공선(架空線)을 통해 트롤리폴에 전력을 공급받아 달리는 버스로, 레일이 없이 달리는 무궤도(無軌道) 버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양주에 처음으로 설치되었지만 외국처럼 전기를 공급받아 달리는 것이 아닌 휘발유로 운행되는 것 같으며, 국내 버스를 개조했다. 내부가 목재로 되어 있어서 터키나 유럽의 어느 도시를 달리는 것 같은 기분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다.

특히 나는 포루투칼의 수도 리스본에서 대서양 바닷가를 달리던 이국적이고 허름한 풍경의 전차를 잊을 수가 없으며, 터키 이스탄불에서 달리던 원색의 전차 색감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서울에서는 2층 트롤리 버스 3대가 운행되고 있는데, 미국 포드사(Ford)에서 제작된 차량으로 내부 역시 참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커다란 도심 공원, 판필로프의 풍경. 촬영=윤재훈)
(커다란 도심 공원, 판필로프의 풍경. 촬영=윤재훈)

건너편에 판필로프 공원이 보인다. 이 이름은 1941년 모스크바 외곽의 마을에서 나치의 탱크와 맞서 싸우다 숨진 알마티 보병대의 28명의 병사를 ‘판필로프 영웅’들로 기념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전쟁기념관이 있고 근처에는 더 큰 공원인 고르키(Gorky) 공원이 있는데, 커다란 호수가 있어 청춘 남녀들이 뱃놀이를 많이 즐긴다.

공원 숲이 깊고 넓다. 산책을 하거나 이곳을 관통해서 목적지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상당히 보인다. 10여분 안으로 들어가니 공터가 나오고, 오른쪽에는 러시아 정교회 소속이며 알마티에서 유명한 '젠코프 대성당(Zenkov Cathedral,아센시오 대성당)'이 있다. 높이는 56m이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목조건물이라 전해진다.

'젠코프’가 설계했으며 1903년에 짓기 시작하여 1906년에 완성했으며 티엔샨산 목재로 만들어 1907년 7월 30일 개관했다. 목조건물이지만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지은 걸로 유명하며 내부는 화려한 성화로 되어 있다. 화사한 노랑 바탕의 외벽과 지붕에는 금빛 돔들이 솟아 있으며, 오전 8시와 오후 5시에 미사가 있다.

1911년 제정(帝政) 러시아 시대 2,000여개의 건물이 파괴되는 대지진까지 견딘 몇 개 안되는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이 건물은 모스크바의 상크트 바실리 대성당과 비슷하게 건축되었으며, 성당은 무게 중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무겁고도 낮은 모양으로 짓고 그 위에 탑들을 올렸다.

소련시절에는 점령자들의 뜻에 따라 박물관 및 콘서트홀로 사용되다가 1995년이 되어서야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 되었다. 지금은 알마티의 중앙 성당으로 러시아 정교회 크리스챤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는데, 건물 전채에 포장을 씌워 공사 중이다. 

(국적을 묻더니 바로 ‘아리랑’을 연주하는 사내. 촬영=윤재훈)
(국적을 묻더니 바로 ‘아리랑’을 연주하는 사내. 촬영=윤재훈)

한 사내가 벤치에 앉아 아코디언 연주를 시작한다. 나를 보더니 국적을 묻고 <아리랑>을 연주한다. 사내의 순발력에 동전을 넣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오랜 지기(知己)처럼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며 우리는 서로의 따뜻한 마음를 나눴다.

(한류를 사랑하는 카자흐스탄 청년. 촬영=윤재훈)
(한류를 사랑하는 카자흐스탄 청년. 촬영=윤재훈)

청년이 다가오더니 밀짚모자를 쓰고 있는 나를 찍고 싶다며 연거푸 셔터를 눌러댄다, 중앙아시아에 한류(韓流) 열풍이 대단하다고 하더니 그 열기가 전해진다. 드라마와 K-Pop에 젊은이들이 열광하며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도 많다. 마치 잠시 현지 로케를 온 스타가 된 기분이다. 이것이 지금 중앙아시아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위상이다. 연예인들의 기분이 이럴까, 그와 서로 ‘왓쳇(우리나라 카톡과 비슷)’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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