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⑲] 중앙아시아를 열망하다 5···알마티에서 만난 한류

윤재훈 기자
  • 입력 2020.08.24 17:06
  • 수정 2020.08.2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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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를 열망하다5

 

“보랏빛 빨갛게 융기되어 가는
포도알 같이 수많은 사연을 헤아리며
빛바랜 창가에 비로오드 어둠이 밀려올 때
그 어둠을 잘라 사락이는 소리에,
가슴을 적시는 밤“

 

알마티의 명소들2

(소련 지도 바깥으로 튀어나갈 것 같이 용맹하게 표현된 병사들. 촬영=윤재훈)
(소련 지도 바깥으로 튀어나갈 것 같이 용맹하게 표현된 병사들. 촬영=윤재훈)

이 공원은 원래 러시아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며 ‘러시아 시(詩)의 태양’이라고 부르는 ‘푸시킨’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푸시킨 공원’으로 명명되었다. 그 후 1919년 러시아 남북전쟁 당시 전사한 영웅들을 기념하며 ‘현충원’으로 바뀌었다.

푸시킨의 시가 생각난다. 학창시절 책받침 시인으로 유명했던 사람, 지금도 입에서 줄, 줄, 새어 나온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언젠가 기쁨의 날이 오리
현재는 언제나 슬프고 괴로운 것
마음은 언제나 미래에 사는 것
그리고 또 지나간 것은
언제나 그리워하게 된다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푸시킨 A. Pushkin

(문득 아련한 옛 시절 앨범을 꺼내 보았다. 우리 국어책에도 나왔던 이상화 시인의 ‘나의 침실로’와 연예인 사진이다. 촬영=윤재훈)
(문득 아련한 옛 시절 앨범을 꺼내 보았다. 우리 국어책에도 나왔던 이상화 시인의 ‘나의 침실로’와 연예인 사진이다. 촬영=윤재훈)

고등학교 학창 시절 많은 학생들은 이런 시들을 써서 여학생들에게 보냈다. 그때에도 교실에는 특별히 문장력이 좋아 친구들의 연예편지를 도맡아 써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고 3때 우리 반에도 그런 애가 있었다. 아마도 박병철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도 그 구절이 생생이 기억이 난다.

“보랏빛 빨갛게 융기되어 가는
포도알 같이 수많은 사연을 헤아리며
빛바랜 창가에 비로오드 어둠이 밀려올 때
그 어둠을 잘라 사락이는 소리에,
가슴을 적시는 밤
하고픈 말 가운데 오직 한 마디,
우리 아름다운 사연과 정다운 대화로
이 어두운 하늘 아래에서도 ‘영원’이라는 단어를
이루어보자는 것입니다.”

(앨범 속에는 숙성된 추억들이 고구마처럼 딸려 나왔다. 촬영=윤재훈)
(앨범 속에는 숙성된 추억들이 고구마처럼 딸려 나왔다. 촬영=윤재훈)

그 때 이 연예 편지를 받은 소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지금 생각하면 엷은 미소가 지어지지만, 얼굴이 붉어지는 아득한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젊은 혈기들은 펜팔을 했다. 그 시절의 유행이었다. 마치 지금 아이들이 K-Pop을 좋아하듯이,

“‘선데이 서울, 주간 경향, 대중가요집’ 그 뒤에는 어김없이 ‘펜팔 란’이 있었다.
주소나 이름을 보면서 우리는 아련한 순정(純情)을 키웠다.”

책상 옆이나 방문 입구에는 주간지에서 떼어낸 그녀들의 사진이 붙어 아련한 여인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다. 특대호로 주간지의 대형 브로마이드가 나오면 인기였다. 후에 OB나 크라운 맥주에서 그런 연예인들의 대형사진이 나와 더욱 인기를 끌었다.

(풍선 파는 여인. 촬영=윤재훈)
(풍선 파는 여인. 촬영=윤재훈)

그 후 공원 이름은 ‘이반 판필 로프’라는 유명한 소련 장군의 이름을 따서 바뀌었다. 그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모스크바 방어 중, 카자흐스탄과 키르키스스탄 소비에트 공화국의 예비군으로 새로 구성된 316번째 소총 사단의 지휘자였다.

그들은 1941년 11월 16일 소총사단으로서 18대의 나치 독일 탱크를 파괴하고 적들의 진격을 크게 지연시켜, 수도의 수비대들이 반격을 하는데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 후 28명은 모두 전사하고 그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28명의 판필로프 수비대 공원>으로 개명되었다.

그런데 한국어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실제로 그런 전투도 없었다고 한다. 단지 소련 당국이 충성심을 부추기기 위해 지어낸 허구의 이야기라고 한다. 위키 백과사전에도 1948년 기밀이 해제된 후 조작된 이야기로 판명이 났으며, 실제 28명 중에 6명의 군인은 사망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문득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9살의 어린이 이승복 군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고, 전국의 운동장마다 동상을 세웠던 일이 기억난다. 그러나 이후 조작설로 온 국민의 입방아에 올랐다.

오른쪽으로 접어드니 나치 탱크에 맞서 함성을 지르며 막 벽을 뚫고 튀어나오려는 검은 색의 거대한 28명의 전사들이 있다. 그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전쟁 기념탑War Memorial’이다. 그들의 눈빛은 용맹했으며, 병사들은 마치 소련 지도 바깥으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36년의 나라 없는 백성의 서러움과 전쟁을 겪은 분단국가의 국민으로서 그 아픔이 아릿하게 전해져 온다. 제 2차 세계대전 극악 나치즘을 부르짖으며, 유럽과 러시아에 자행했던 ‘히틀러’의 힘은 그만큼 대단하고 잔인했다.

(꺼지지 않는 불꽃. 촬영=윤재훈)
(꺼지지 않는 불꽃. 촬영=윤재훈)

그 앞에는 <꺼지지 않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1917~20년에 일어난 <러시아 내전>과 1941~45년까지 전 세계 국민들을 공포 속에 몰아넣었던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사라져 간 병사들을 추모하며, 슬픈 빛으로 이곳의 역사를 증언한다. 순국선열을 생각하듯 잠시 묵념을 한다.

(‘카자흐 민속박물관’, 젠코프 작품인데 꼭 호두까기 인형의 집 같다. 촬영=윤재훈)
(‘카자흐 민속박물관’, 젠코프 작품인데 꼭 호두까기 인형의 집 같다. 촬영=윤재훈)

오른쪽으로는 전쟁박물관과 인형의 집처럼 오밀조밀하고 소박한 목조 건물 한 채가 서있다. 1908에 지은 <카자흐 민속악기 박물관(Kazakh Museum of Folk Musical Instruments)>이며 이것 역시 성당건축가 젠코프의 작품이다.

전체적인 보수작업을 거쳐 2013년에 재개관 되었으며, 목조 하프와 뿔피리, 백파이프, 루트 비슷한 2현 돔브라, 비올라을 닮은 코비즈 등 카자흐 전통 악기들이 소박하게 놓여있고, 일부 악기는 연주법 강좌도 들을 수 있다.

(“Are you korean?"하며 다가오는 카자흐스탄 아가씨들. 촬영=윤재훈)
(“Are you korean?"하며 다가오는 카자흐스탄 아가씨들. 촬영=윤재훈)

막 들어가려는데, 아가씨 한 명이 다가와 한국 사람이냐고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자 멀리 친구를 오라고 손짓을 하더니 사진을 찍자고 한다. 다시 한 번 그들의 높은 관심과 한류를 실감한다.

(놀랍게도, 한국의 악기들이 따로 전시되어 있다. 촬영=윤재훈)
(놀랍게도, 한국의 악기들이 따로 전시되어 있다. 촬영=윤재훈)

여행서에 나온 것보다 입장료가 약간 올라 500T이다. 대부분 카자흐스탄 전통악기들이 놓여있는데, 하프를 닮은 현악기 종류가 많다. 놀랍게도 한국의 사물놀이를 비롯한 다른 악기들과 벅수 몇 기가 작은 한 칸을 차지하고 있어, 양국의 우대를 증명하는 듯하다. 금방이라도 농악이 울리며 푸른 논밭 사이를 건너오는 소리가, 이역만리에서 들려 올 듯하다.

앞 건물에서 사람들이 우루루 나오고 있어 가보니 양쪽으로 공연장이 있고 막 무대가 끝난 모양이다. 이국의 공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카자흐의 전통문화를 엿볼 수 있겠다.

(‘LG 에어컨’이 걸려있다니! 촬영=윤재훈)
(‘LG 에어컨’이 걸려있다니! 촬영=윤재훈)
(러시아에서 나온다는 한국 도시락. 촬영=윤재훈)
(러시아에서 나온다는 한국 도시락. 촬영=윤재훈)

날이 저물어 가니 허기가 밀려온다. 낮에 그렇게 유쾌하게 지저귀던 새소리도 이미 잦아들었다. 공원을 나와 천천히 걷는다. 가게에는 러시아 현지 한국 합작공장에서 만들었다는 도시락 라면이 보인다. 그러나 이제는 러시아인에게 완전히 넘어갔는지 거의 한글이 안 보이고, 물건이 조잡하다. 여기저기서 LG 에어컨과 냉각기들이 보인다. 침브라크 스키장에서 보았던 광고판들이 다시 생각난다.

(어린 연인들은 무슨 손꼽장난 같은 얘기가 저리 정다울까. 촬영=윤재훈)
(어린 연인들은 무슨 손꼽장난 같은 얘기가 저리 정다울까. 촬영=윤재훈)

한참을 걸으니 유리창에 울긋불긋 꽃들이 붙여진 집이 있다. 뷔페식당이다. 이 나라에서 뷔페식당을 찾으려면 저 꽃만 보고 들어가면 된다. 밖으로도 깨끗한 천막 안에 자리가 넓게 펼쳐져 있고 한적하여, 나는 수시로 이곳에 와서 노트북으로 글을 썼다.

음식은 자기가 먹을 만큼 고르고 카운터에서 돈을 내면 된다. 외국인들이 가장 간편하게 자신들이 원하는 식단을 꾸밀 수 있다. 다행히 유럽식보다는 아시아 음식에 더 가깝다.

좌석에는 10대 소년과 소녀가 앉아 <소나기>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서툰 연애를 하고 있다. 천T(3300원) 정도면 한 끼가 가능하다. 두 번째 뷔페식당에 오는데, 여기도 아가씨들이 별로 친절하지는 않다.

(카자흐에서 만난 한국의 벅수. 촬영=윤재훈)
(카자흐에서 만난 한국의 벅수. 촬영=윤재훈)

“그럴 때마다 나는 오랫동안 중국을 여행하면서,
그곳 아가씨들에게 감동할 정도로 받았던 친절이 잊혀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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