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식의 인생 바라보기㉑] 월남쌈밥집 연가

윤창식 칼럼니스트
  • 입력 2020.08.24 10:58
  • 수정 2021.02.2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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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식-수필가- 前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윤창식
-수필가
- 前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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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광역시 남구 H아파트 상가에는 아네모네꽃집과 마네모네사진관이 나란히 붙어 있다. 동네 사람들은 뭔놈의 가게이름이 저 모양들이냐고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한마디씩 하곤 한다.

요즘이야 세련되고 경쾌한 노래도 많건만 아네모네꽃집에서는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온종일 이미자의 아네모네 뽕짝이 흘러나와서 듣기 좋은 노래도 한 두 번이지 이건 뭐 왕짜증을 유발하고 있었다.

역시 세상에는 환상의 콤비가 꼭 있게 마련이어서 꽃집 바로 옆에는 마넨지 모넨지 네몬지 모를 화가의 모조그림을 유리창에 붙어놓고 중늙은이가 사진관 영업을 하고 있었다.

"아니 아저씨, 하필 사진관에 우리 꽃집이랑 이름을 헷갈리게 붙이면 어떡해욧?"

"아니 걱정도 팔자셔. 이래뵈어도 유명 상호작명가한테 지었는디?"

"상호작명가? 그이가 미쳤는갑소. 마네 모네는 화가라서 사진과는 1도 관련이 없는디?"

"1도든 2도든 사진과 그림은 사촌지간인디, 당신이 뭔 상관이여!"

"어째 상관이 없다요? 꽃 사러왔다가 사진관으로 쏙 들어가는 사람을 여럿 봤으니께요."

"허참, 고건 피차 마찬가지고요. 사진 찍으러 왔다가 꽃을 사가는 사람도 있던디요. 다 내 덕인 줄 아씨요. 하하"

"덕이라면 차라도 한 잔 하시자는 뜻인가요?"(갑자기 왜 이리 상냥한 말투지? 이제야 아네모네꽃 닮아가시나?)

"제가요, 처녀 적에는 꽤나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세월이 웬수제."

"나는요, 학교 댕길 때 미술시간에 마네 모네를 아무리 외우고 또 외워도 헷갈려서 시험 보면 꼭 틀렸고요, 이 나이 묵도록 지금도 잘 모르겄소. 마넨가 모넨가? 마네모네가 한 사람인가? 그란디 언제 적부터 그렇게 이미자 노래를 좋아했나요? 귀에 딱쟁이 생기겄어요. 흐흐"

"저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아리랑잡지> 펜팔 난을 통해서 군인아저씨를 알게 되었고요. 잘 생긴 흑백사진도 한 장 보내와서 지금도 갖고 있지라."

"그래요잉! 그 뒤로 어뜩케 되았소?"

"월남으로 파병간다는 편지가 마지막으로 아직도 소식이 없네요. 그 쪽은 워디 군대 댕겨왔어요?"

"지는요 방위 나왔어라우. 귀신잡는 방위 으흐하하하."

"그 군인아저씨 마지막 편지 받는 날 전파사에서 흘러나오던 아네모네 노래를 평생 잊을 수 있을랍디여. 아네모네는 본래 '바람'이라는 뜻이고요, 아네모네 꽃말은 '덧없는 사랑'과 '당신만이 볼 수 있어요' 두 가지래요."

"나는 두 번째 꽃말이 맘에 드네요. 비밀스런 편지 한 토막 같기도 하고요. 아줌씨 사연을 들어보니께 아네모네가 마네모네보다 한 수 위 같네요. 이 코피값은 내가 낼랍니다."

"아니어요. 요새 꽃도 몇 송이 못 팔았지만 나도 코피값이야 못내겠어요? 그나저나 요새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대니 누가 사진관에 오기는 오나요?"

"잘 아시면서… 지난 번 겨울에 J대학 졸업식 날 견본용 사진판떼기를 목에 걸고 실사(實寫)를 나갔지만 한 껀도 못 건졌네요."

"으째야쓰까. 오메 짠한거잉~."

그런 일이 있은 후, 꽃집과 사진관을 합쳐 두 사람이 함께 '월남쌈밥집'을 낼 거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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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모네꽃집 아줌마와 마네모네사진관 아저씨가 각기 가게를 청산하고 함께 월남쌈밥집을 낸 것은 순전히 자기네 가게이름이 너무 비슷했던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두 남녀는 60여년 세월 동안 말로는 다 못할 험한 세상을 겪다보니 더 이상 밑질 것도 없다는 심정으로 그냥 저질렀던 거였다.

합동가게 이름은 사진관 아저씨의 '귀신잡는 방위'에서 일부 따오고 일부는 꽃집아줌마의 꿈에도 그리운 월남파병 맹호부대원을 생각해서 붙이기로 했다.

요즘 음식관련 가게가 좀 많아야지. 그런다고 방송에서 잘나가는 백모 세프에게 자문을 구할 처지는 애초에 못 되는 터라, 에라 모르겄다. 무턱대고 개업부터 하고 보자는 식이었다. 동사무소에서 주최한 다문화음식 맛보기 체험에서 딱 한 번 월남쌈을 맛본 게 전부였으니 그들의 용기가 참으로 가상할 지경이었다.

사진관 황몽구씨는 최전방 백골부대 출신이라고 뻥을 쳐서 잘 사귀던 이쁜 애인은 어느 날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와 눈이 맞아 도망 가버리고 고작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라는 군가 한 소절만이 군바리 추억으로 남은 주제가 아니던가. 힘쎈 남자가 최고라는데 방위병 전력은 늘 마음에 걸렸다. 그만큼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증거였던 것이다.

꽃집아줌마 박순자여사는 새로 개업하는 식당이 잘 되었으면 하고 치성이라도 드릴 요량으로 지금은 비어있는 친정집을 실로 오랜만에 찾아갔다. 친정엄마는 때만 되면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새끼들 성공을 빌고 또 빌지 않았던가. 순자씨는 한참을 감회에 젖어 있다가 처마 끝에서 허름한 종이뭉치를 발견했다. 친정아버지는 글씨도 모르면서 종이란 종이는 보는 족족 숨겨두는 습성이라 짐작이 가면서도 무심코 종이뭉치를 꺼내보다가 꿈속에서도 잊지 못하던 고차랑(高次郞)하사의 군사우편을 그제서야 보고 말았다.

"사랑하는 순자씨! 여기는 상하(常夏)의 나라 월남땅. 오늘도 베트콩진지 까두산요새 정글 속에서 뜨겁게 전투가 벌어지고... 푸른 물결 남실대는 바닷가 고국이 그립소. 부디 행복하세요."

더 이상의 군사우편 소인이 찍힌 편지는 없었다.

모든 것이 꿈만 같고 허망하여 K광역시로 돌아온 순자씨는 월남쌈밥집 개업을 뒤로 미루거나 작파할 요량으로 황씨를 찾았으나 그이는 벌써 사진관을 정리하면서 '방위병 애국가'인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를 또 흥얼거리며 희망에 찬듯 그답지 않게시리 찡긋 윙크를 날린다. 순자씨는 그런 모습을 보자 늙으막에 무슨 윙크냐고 어이없어 하면서도 급격히 마음이 약해졌다. 달리 순자씨겠는가.

"다음은 K광역시 남구에 사시는 월남쌈 사장님의 사연입니다."

시청자 사연을 내보내는 라디오 방송을 들은 황몽구씨는 너무 놀라서 월남쌈에 들어가는 파프리카를 썰다가 하마터면 손을 베일 뻔 했다. 몽구씨는 식당 밖으로 뛰쳐나가며 숨 넘어갈듯 순자씨를 불렀고, 팔다 남은 월남쌈 재료를 이웃에 사는 베트남 가족에게 전달하고 뛰어오는 순자씨를 거의 끌어안다시피 하면서 사연이 흘러나오는 소형 라디오를 건네주었다.

"... 고차랑 아저씨 살아계신다면 꼭 한 번 보고 싶네요. 아저씨가 50년 전에 저에게 보내신 편지를 이제사 보았네요. 너무 죄송해요. 저는 덕분에 잘 살고 있어요. 어디에 계시든지 행복하세요."

순자씨는 자기가 보낸 청취자 사연을 들으며 쏟았던 눈물이 나름 카타르시스가 되었는지 그 일이 있은 후로 몰라보게 명랑해졌다.

"그라먼 나는 뭐여?" 중얼거리며 이번에는 몽구씨가 돌연 우울해졌다.

순자씨가 "몽구씨도 사연을 한 번 보내보삼~"이라고, 요즘 아이들 문자처럼 부추겨도 몽구씨는 못내 시큰둥하다.

"김상사한테 도망가버린 아가씨 생각나서 그려요?"

"아니랑께. 제발 쩌리 가부러~!"

"그라먼 이 가게는 누가 지키게요?"

"지키던지 말던지. 월남에서는 뭣할라고 전쟁은 일어나갖고..."

때마침 불어오는 더운 바람에 월남쌈밥집 간판이 살짝 흔들거렸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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