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48] 0.7 혹은 0.8

오은주 기자
  • 입력 2020.09.24 09:52
  • 수정 2020.09.2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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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2019년 조연현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진호씨는 저녁밥을 기다리며 그 시간에 방영하는 농촌탐방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즐겨보았다. 농촌 출신이라 그런지 전국의 시골마을과 그곳 사람들이 주로 나오는 그 프로그램을 보면 왠지 마음이 푸근해졌다. 그러다가 주방에서 한참 저녁밥을 준비하는 부인 인자씨를 화급하게 불렀다.

“여보, 지금 저기 화면에 나오는 남자분 나이가 66세라고 괄호 안에 나오는데, 그럼 나랑 동갑인데 나도 저렇게 늙어 보여? 엄청 나이가 들어 보이는데… 나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저렇게 보일까?”

인자씨는 또 저런다 싶으면서도 텔레비전 화면으로 눈길을 돌렸다.

“에휴, 저 분은 평생을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셨네요. 당연히 햇살을 많이 받으니 굵은 주름이 많아져서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거네요.”

“그런 거지? 나는 저 정도로 늙어 보이지는 않는 거지?”

“글쎄요, 그렇다니까요.”

저녁밥을 먹고 난 후, 텔레비전을 보던 진호씨는 또 다급하게 인자씨를 불렀다.

“여보, 지금 저 화면에 나오는 남자가수는 이제 원로급으로 70대인데 왜 저리 얼굴에 주름 한 줄 없이 팽팽한 거야? 뭐 성형 다리미로 편 거야?”

“에휴, 연예인이니까 직업정서상 그때그때 얼굴도 손을 보면서 나오겠지요. 당신이라면 저런 초대형 고밀도 화면이 안 무섭겠어요? 연예인들 보고 얼굴 고친다고 뭐라고 할게 아니라 화면으로 나이나 비교하고 있는 당신 태도부터 고쳐요.”

진호씨는 젊고 한창 사업에 열중할 때는 얼굴에 로션도 바르지 않고 출근하더니 60대 중반이 되자 나이들어 보이는 외모에 부쩍 신경을 썼다. 신경을 쓴다는 사실 자체가 나이가 들었다는 반증이기에 인자씨는 아픈 진실(?)을 진호씨에게 새삼 일깨워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 대신 요즘에 회자되는 꽤나 그럴싸한 나이계산법을 들려주었다.

“당신, 요즘 나이 계산법 알아요? 요즘 나이계산법은 본인 나이에다 0.7내지 0.8을 곱한 나이를 요즘 나이라고 해요. 그 근거가 되는 게 예전에는 인생 70살 고래희라고 70살을 천수로 쳤잖아요. 요즘은 90살부터 100살을 천수라고 하니까 0.7이나 0.8이 되는 셈법이지요. 결혼도 거기에 맞춘 듯 어느덧 20대 중반에서 30대 초중반으로 늦춰졌잖아요. 당신 나이를 그 셈법으로 계산해보면 46살과 53살 사이 정도 나오니까 옛날 나이 50살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네요.”

진호씨가 생각해봐도 어린시절 고향에서 보았던 50살 정도의 아저씨들이 상당히 나이가 들어 보여서, 진짜 요즘 60대 중반이 주는 분위기와 비슷했다.

“그런 계산법이 있었나? 요즘 주변 친구들만 해도 다들 젊은 외모라 60대 중반을 노년이라고 부르기 뭣했는데 그 계산법이 맞겠네.”

그러더니 진호씨는 금방 젊은 기운이 충전된 듯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나도 100세 시대 나이계산법으로는 이제 막 50살 정도 된 거네. 갑자기 젊어지는 기분이네. 거기에 맞춰서 살면 훨씬 활기차겠어.”

인자씨는 남자들은 생활 속에서는 참 철딱서니가 없다는 걸, 여자보다 더 생물학적 나이에 민감해 한다는 걸, 새삼 확인하곤 속으로 웃음이 났다. 그러면서 왠지 저 철딱서니 없는 남자요, 남편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었다.

“여보, 세월이 지난다고 모든 포도주가 다 시큼해지지는 않는대요. 맛이 깊어지는 포도주도 있잖아요. 부디 그런 포도주처럼 숙성되면서 깊어져 갑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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