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채운의 스카이가든 10] 이사

권채운 작가
  • 입력 2020.09.28 13:36
  • 수정 2021.01.18 16:0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채운2001년 제4회 '창작과비평' 신인소설상 당선      소설집 [겨울 선인장] [바람이 분다]
권채운
200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소설집 「겨울 선인장」 「바람이 분다」

새벽부터 끄무레하던 하늘이 그예 빗방울을 떨어뜨린다. 요즘의 일기예보는 정확하다. 하늘도 내 원통함을 아는 탓이려니 하자. 비닐에 덮여서 사다리차를 타고 내려온 이삿짐이 곧바로 탑차로 들어가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석 달 전에 잡은 이삿날이니 날씨까지 염두에 둘 처지가 아니었다. 집을 팔고 나니 갈 곳이 막막했다. 역세권이 좋겠지. 전철을 이용할 수 있고 생활 인프라가 대충 갖추어 있는데다 앞이 트인 아파트를 이사 날짜까지 맞추어 찾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집을 팔고 열흘도 채 되지 않아서 집값이 무섭게 치솟았다. 이사 날짜를 넉넉하게 잡았으니 느긋하게 집을 보러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세상 일이 언제 내 뜻대로 움직인 적이 있었나 하면서도 한두 푼도 아니고 일 이억씩 치솟는 집값에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코로나로 인한 펜데믹의 세상에서 부동산 폭등이라는 재앙까지 겹칠 거라고 전망한 사람이 있었을까. 정부에서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하면 그 다음날 바로 집값이 뛰었다. 일이 천도 아니고 일이 억씩. 결국 신경안정제로 매일 매일을 버텼다.

은퇴 후에 귀농이나 귀촌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평생토록 도시에서만 살아온 나는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들고 익숙한 동네를 떠난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장성한 자녀들도 나가 살고 출퇴근 할 일도 없으니 서울의 비싼 집에 계속 사는 건 왠지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렇지만 공기 좋고 교통도 웬만한 수도권으로 나가서 여유 있게 노후를 보내야지 하는 건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앞집에 살던 오랜 친구가 갑자기 지방으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덩달아 집을 내놓았던 것이다. 제법 값을 잘 받았다고 흐뭇해 한 건 집을 보러 다니기 전의 며칠뿐이었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탓이었다. 펜데믹으로 인해 예금 이자가 제로로 떨어지자 갈 곳 잃은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렸다는 것이다. 서둘러 내놓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격이었다. 젊은이들이 갭투자를 노리고 수도권을 휩쓸고 다니며 매물을 사들이고 그에 뒤질세라 너도나도 영혼까지 끌어 모아 빚을 내서 집을 사러 다닌다고 했다.

결국 역세권의 아파트를 잡지 못했다. 모든 매물은 재바른 투기꾼이 사들였거나 주인이 거둬들였다. 매물이 있어도 노후자금으로 간직한 돈까지 털어 넣어야 할 판이었다. 지하철역에서 버스로 환승하면 20분 정도 걸리는 광주의 허름한 아파트를 계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대충 수리를 하고 들어가면 살 만하겠지. 무엇보다 아파트 앞에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집을 보러 다니기에도 지쳤을 뿐 아니라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개천의 시원한 물줄기에 반해서 집을 보자마자 계약을 해버렸다. 산줄기 끝에 자리한 아파트 단지는 무명브랜드의 20년 된 아파트치고는 외관이 말끔했다. 노후에 배산임수의 길지에 터를 잡았으니 좋지 아니한가 하고 스스로 위로를 삼았다.

그런데 내가 매수한 아파트단지만 쏙 빼놓고 역세권의 아파트는 약속이나 한 듯이 손잡고 값이 올랐다. 나이 들어서 감이 떨어져도 그렇지. 이렇게 무지할 수가 있나. 크게 실수 한 것 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했던 70평생이 마지막 한방으로 와르르 무너진 느낌이었다. 그간 너무 오만하게 살아왔구나. 어떻게 나만 다 옳을 수가 있었지? 정직하고 알뜰하게 살고 자식들 반듯하게 키워서 가정을 꾸리게 한 것은 내가 잘나고 열심히 살아서 된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먼저 살던 집주인이 보름 전에 이사하고 집수리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인테리어 업자를 정하는 일부터 마루며 벽지며 타일이며 싱크대며 이것저것 고르고 선택하는 일이 전혀 즐겁지 않고 부담스러웠다. 벽지와 마루를 고르고 나면 타일과 도기와 전등이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나 다양한 품질과 모양이 나를 어지럽게 했다. 어렵사리 결정하고 나서는 번복하기를 반복해서 인테리어 업자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러고서도 잘못한 건 아닐까 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건 그냥 두고 저건 해야지 하던 것이 하다 보니 몰딩과 방문만 빼고 모두 손을 대고 말았다. 방문 손잡이가 그렇게 구식이어서 애를 먹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수구는 모두 막혀서 설비기사를 불러야 했고, 하다보면 그렇게 된다고들 하지만 처음 예산보다 천만 원이나 초과되었는데도 흡족하지 않았다. 수리하지 않은 몰딩과 문짝이 유난히 거슬렸지만 그런대로 만족하는 수밖에.

한 달 전부터 날마다 한 가지씩 짐을 덜어내기 시작 했다. 먼저 옷장을 정리했다. 무리해서 사놓고 몸이 불어서 못 입은 옷이며, 선물 받고 옷에 맞지 않아 한 번도 걸치지 않았던 스카프며, 한 번도 들지 않고 처박아둔 가방이며, 장롱 안에서 나온 것만도 족히 다섯 박스는 되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많이 버린다고 버렸는데도 그저 아까워서 가지고 있던 물건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가장 정리하기 어려운 것이 책장이었다. 사놓고 한 번도 들춰보지 않았던 책들이 책장에 빼곡한데 그 앞에까지 묵은 먼지를 덮어쓰고 켜켜이 쌓여 있었다. 먼저 활자가 작은 책부터 추려냈다. 문학잡지가 그 뒤를 이었고 습작 노트며 사진 공부하던 노트며 드로잉북도 산더미였다. 젊어서 그랬을 것이다. 소설도 그림도 사진도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그저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달려들었던 시간들이 묵은 잡지와 노트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나중에 시간 나면 들춰보겠지 하면서 소중히 간직했던 것들이지만 지난 십 년 간 한 번도 들춰보지 않았던 물건들이다. 저 물건들이 내 남은 시간에 소용이 될까. 한 사흘 쌓아두었다가 미련을 버리고 모두 재활용장으로 내가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개운했다.

결혼해서 분가한 애들의 물건은 그냥 두었다. 그 또한 한 번도 떠들어보지 않을 게 뻔하지만 본가에 와서 무언가 자기 물건이 하나라도 남아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졸업앨범, 사진들, 일기장들, 좋아했던 가수의 테잎들, CD, 어버이날 삐뚤빼뚤한 글씨로 효도하겠다고 썼던 편지며 아들이 군대에서 보냈던 편지도 구두상자에 보관했다.

주로 많이 사용하는 서랍장이며 책상은 무늬목이 들고 일어났다. 테이프를 붙여놓긴 했지만 얼마나 더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장 버린다고 해도 아까울 것 같지 않다. 이십여 년을 썼던 물건들인데도 싸구려를 사서 그런지 어느 것 하나 애착이 가는 물건이 없다. 이참에 다 버리고 육중한 호두나무 원목책상을 들여놔볼까. 나중에 우리 손자들이 다투며 갖고 싶어 할 아름다운 원목 책상.

비가 개였다. 맑은 햇살 탓일까.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장롱이 집 안에 있을 때보다 추레하다. 침침한 눈으로 화장하고 외출했다가 차창에 비쳤던 주름진 얼굴에 화들짝 놀랐던 장면이 떠오른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저 낡고 손때 묻은 장롱이 바로 내 모습일 게다. 새로운 집에 자리 잡으면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윤이 나도록 걸레질 해줘야겠다. 낡았지만 나와 같이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귀하지 아니한가.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