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㉔] 아시아 오지 기행 5_몽족의 마을잔치

윤재훈 기자
  • 입력 2020.10.19 10:28
  • 수정 2020.10.2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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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오지 기행, 고산족 순례

몽족의 마을잔치

 

"이 산중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 왕산악의 거문고 뜯는 소리라도 될까,
귀를 기울이니 떡판 치는 소리도 같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사내들 둘 윗통을 벗어 재치고
주거니 받거니 커다란 나무 망치를 내리치고,
그 망치가 다시 올라가는 순간, 
아낙들은 재빨리 조그맣게 떡을 떼어 바나나 잎에 싼다."

 

돼지 잡은 풍경

(무심히 피를 받은 몽족 아이들. 촬영=윤재훈)
(무심히 피를 받은 몽족 아이들. 촬영=윤재훈)

십 대 아이들이 돼지를 몰고 나온다. 잘 가던 커다란 어미 돼지가 갑자기 무슨 낌새라도 느꼈는지 발걸음을 멈추자, 순식간에 아이들이 달려들어 돼지를 넘어뜨린다. 위로 올라가 누르면서 다리를 묶는데, 마치 맹수가 사슴이라도 덮치는 듯하다.

이어 전번에 마을에서 묘제를 진행하며 가게를 운영하는 북경 소장수 같은 하얀 털이 달린 외투를 입은 사내가 오더니, 긴 칼을 받아 단번에 멱을 딴다. 십대 아이들은 그 옆에 무심하게 앉아 바가지로 피를 받는다. 이어 두꺼운 천을 씌우고 장작불 위에서 설설 끓는 물을 끼얹은 다음 돼지에 달라붙어, 마치 놀이하듯 수저로 털을 벗긴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 끔찍한 살풍경에 고개를 돌렸다. 마치 먼 옛날 제천(祭天)의식 시절, 햇빛에 반사된 제사장이 근엄한 얼굴로 칼을 높이 치켜든, 제단이라도 보는 듯하다.

(어지럽고섬뜻하게널려있는 고기들. 촬영=윤재훈)
(어지럽고 섬뜻하게, 널려있는 고기들. 촬영=윤재훈)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여 먹고 즐기는 모습은 여느 집이나 비슷하다. 도살장을 본 적은 없지만 부엌에는 선연하게 피 묻은 칼과 도마들이 널려있고, 비닐이나 푸대 위에는 잘린 돼지머리와 선혈이 낭자한 고기들이 어지럽게 나뒹구러져 있다. 아낙들과 남정네, 그 사이에 사내 아이들도 끼여 고기를 손질하고, 그 와중에 한 쪽에서는 고기를 볶는다. 아이들은 꼬치를 만들어 부산하게 들락거리며 밖에서 모닥불에 구워먹는다.

한밤중 떡매 치는 소리

(바나나 잎에 싼 떡. 촬영=윤재훈
(바나나 잎에 싼 떡. 촬영=윤재훈

이 산중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 왕산악의 거문고 뜯는 소리라도 될까, 귀를 기울이니 떡판 치는 소리도 같다. 그 소리를 따라가 보니 사내들 둘 윗통을 벗어 재치고 주거니 받거니 커다란 나무 망치를 내리치고, 그 망치가 다시 올라가는 순간 아낙들은 재빨리 조그맣게 떡을 떼어 바나나 잎에 싼다.

몽족은 특별한 날에는 이렇게 메판에 찹쌀을 친 후 꿀이나 가게에서 파는 하얀 액체에 찍어먹으며, 딱딱하게 마른 후에는 모닥불에 넣어 구워먹는다. 한 아낙이 선한 웃음을 지으며 김이 올라오는 떡을 나에게 몇 개 싸주는데, 서로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말보다 더 진한 감동이 가슴 속으로 밀려온다.

(푹푹, 김을 내며 장작불 위에서 카오가 맛있게 익고 있다. 촬영=윤재훈)
(푹푹, 김을 내며 장작불 위에서 카오가 맛있게 익고 있다. 촬영=윤재훈)

언덕 위에는 가족이 늘어남에 따라 지었을 두 채의 집에 대가족이 모여 산다. 장작불 위에는 커다란 고깔모자를 씌운 듯한 양철 솥이 퍽퍽, 김을 쏟아내며 오늘 잔치에 쓸 카오(밥)을 익히고 있다.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어둠컴컴한 실내에 때에 절인 흰 모기장 세 개가 서로의 방 경계를 나타내고, 대나무로 막은 벽 틈새로 햇살이 들어와 컴컴한 실내를 형광등처럼 밝힌다.

다음 집에는 인근 쿤유암이라는 작은 소도시에 살다가 7세 때 이 마을로 들어와 일가를 이루었다는 64세의 남자 집이다. 다른 데는 석면이 쏟아지는슬레이트로 우선 지붕 덮기에 바빴을 텐데, 여기는 살만한 듯 바닥과 천장이 예쁜 타일로 마감되어 있다.

그의 큰아들은 고개 위에서 옥수수 탈곡 기계를 운영하고, 이 마을에서 유일한 오토바이 수리 가게는 얼굴에 심한 흉터가 있는 손자가 하고 있다. 여유가 있는 집이다 보니 맥주가 돌고 막내 아들은 꿍텝(방콕)에서 일한다고 약간 세련되었다. 무조건 잔 한 벌로 돌리니 간염이나 감기, 민물고기를 많이 먹으니 디스토마 같은 것들이 옮기기 쉽겠는데, 이들에게는 오랜 관습이다.

가게 앞에 놓인 물통 역시 바가지가 하나 올려져 있으며 오고가는 사람들이 한 잔씩 마시고 간다. 하긴 우리나라도 아직까지 술잔을 돌리는 전통이 남아 있으니 그 기원을 따라가보면 비슷하지 않을까.

(세 번째로 간 집의 손자와 할아버지. 촬영=윤재훈 기자)
(세 번째로 간 집의 손자와 할아버지. 촬영=윤재훈 기자)

이 집은 마을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머무는 시간도 길다. 마을 어른이며 가장 유지인 듯하다. 대부분의 집처럼 벽에 가족사진이 붙어있다. 몽족 전통 복장을 한 사냥꾼처럼 보이는 빛바랜 아버지 사진도 붙어있다.

매일 잔치하는 집들이 넘쳐 나는데 오늘은 여덟 집, 내일은 가장 많은 스무집이 한다고 하는데 그 집을 어찌 다 돌려나, 가다가 고꾸라질 듯하다.

정자에 앉아 지나가던 몽족에게 친근한 웃음을 보내던 인근의 가난한 <후아이 뽕> 마을 깔리양족 5명이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들어온다. 다들 자리 위에 앉아 있는데 그 옆 시멘트 바닥에 앉아, 서둘러 고깃국 한 그릇씩 비우고 사라진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빈부격차가 있듯 이 오지 산간 마을도 예외가 아니다.

바로 아래 집에는 수많은 부처상들로 제단을 만들어 두었다. 인근 깔리양 마을은 대부분 새로 생긴 마을들이니 왓(사찰)은 없고 교회들만 있는데, 이 마을은 반반 정도 서로 종교가 다르다.

약 17일가량 <새해 잔치>가 이어지는

(저희 집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촬영=윤재훈)
(저희 집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촬영=윤재훈)

이렇게 그들의 잔치는 새해 10일까지 하며, 무량대주(無量大酒) 분위기에 취해 같이 마시다가는 큰 일 날 듯하다. 매일 아침이면 산으로 올라가 뱀을 씹어 먹고 수많은 구근 뿌리들을 먹고 자란 돼지들은 미안하게도 맛이 좋다.

새 밑 26일부터 시작한 축제는 마을을 들썩이게 하며 흥청거리더니, 정월 초하룻날 학교 운동장에서 모여 놀고, 일부는 산제를 지낸다. 4일과 5일에는 인근 도시 한국인도 많이 찾은 <빠이(pai)>에서 12개 마을 몽 부족들이 모여 잔치를 한다. 6일과 8일에는 치앙마이 인근 호랑이를 비롯해 동물 사육장이 많은 <매림>에서, 북쪽 인근 도시에 사는 몽족들이 모여 논다. 연말연시를 이렇게 넉넉하게 즐기는 민족을 일찍이 보지 못했다.

5시가 가까워오자 다른 집에서 우리를 데리러 왔다, 자신들의 집도 빨리 오라고. 그 집까지 가는 길에도 청년들이 서로 불러 고기를 구우며 술잔을 건넨다. 어떤 집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무까타('무한 까올리'란 뜻으로 ‘까올리’는 태국어로 '한국'이란 뜻이다. 즉 '무한정 주는 집', ‘한국의 부페집’이란 뜻, 우리처럼 고기를 굽고 야채를 데쳐 먹는다) 을 먹으며 손짓을 한다. 어떻게 특별한 날 태국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에 코리아의 이름이 들어 갔을까, 이것 역시 한류의 여파일까,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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