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모작 시간여행➃] '나는 마사이족이다'···안영상 사진작가

윤재훈 기자
  • 입력 2020.10.28 11:10
  • 수정 2021.06.0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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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사이족이다'  안영상 사진작가 

역사선생님에서 사진작가에로

(안영상 사진가)
(안영상 사진작가)

도처에 넘치는 빛 중에서도
어느 멀고 먼 은하에서 지금 '빛의 속도'로 달려오는 미지의 빛은
아직 우리에게 도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빛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땅에 내려앉기도 전에
그의 카메라 센서에 붙잡힌 영롱한 빛의 혼이다.

가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아무리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도 오는 단풍을 막지 못한다. 이런 호시절(好時節), 아프리카의 방랑기 '나는 마사이족이다'의 작가 ‘안영상’ 사진전이 <인사동 아지트 갤러리>에서 열렸다. 그는 자신도 마사이족을 자처하며 10년 이상 그들의 사진을 찍었다. 잘은 알 수 없지만, 그의 몸 속에도 동물(動物)의 정령이 흐르고 있는 모양이다. 사진은 우리가 흔히 접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올해로 42번째 개인전를 한다는 작가, 그는 단체전보다는 주로 개인전에 많이 했다고 한다. 특히나 작가는 이번 전시를 마지막으로 구작의 시대가 끝내고 새로운 작품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그동안 너무 많이 울겨 먹었구나,
뭔가 새로운 걸로 나아가야 하겠구나.“
라는 반성에서 이번 전시회를 열었다고 한다.

그리고 제주에서 기억을 시작으로 반추상 작품이 옳겨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 중심에는 '태양'이 있다.

이 지구에는 수많은 ‘빛과 색’이 있다. 오늘도 저 광활한 우주, 무한 천공으로부터 그 빛들이 이 초록별에 도착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물결의 파장을 잘 의식하지 못하고 산다. 그런데 대담하게 그 빛을 렌즈에 담아보려 한단다.

(시집 가는 날. 촬영=안영상)
(시집 가는 날. 촬영=안영상)

그래서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동안 해왔던 몇 가지의 작품들을 함께 걸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 천착하던 시절, 동백꽃, 그리고 제주도에서 시작했던 추상작업까지…’.

(바닷가에서)
(바닷가에서. 촬영=안영상)

아프리카에 빠져 살았던 사진가가 있다 1999년 겨울 그는 마지막 달력을 남겨놓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그리고 3개월쯤 씩, 사진 작업을 통해 경비를 마련하며 양국을 오고갔다.

그는 사진에 대해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 아프리카를 찍되 철저하게 신기한 것을 배제하고 찍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프리카을 대할 때, "기아, 질병, 다양한 동물들의 모습" 이런 것을 찍지만. 그것만이 아프리카 풍경의 다는 아니란다. 그 안에는 가볍게 보면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수만 년 문화가 잠재해 있단다.

사실 그런 풍경들은 아프리카 인들에게는 일상적인 것들이라고. 다만 이국인들이 우리들의 표피만 핡고가서 신기하다고 말할 뿐이라고.

그래서 그는 먼저 현지인과 삶에 동화를 시도했다고 한다. 그래야만 그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는 아프리카 이름도 있다.
‘로뮤냑(행운)’이었다
마침내 마사이족들의 가족이 된 것이다."

그 후 아프리카의 주름이 어느 정도 그의 맘에 자리 잡았을 때, 진짜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단다. 비로소 그들과 같이 호응하고 있다는 것을 포착할 수 있었단다.

(나는 마사이족이다.)
(나는 마사이족이다. 촬영=안영상)

케냐 북부 투르카나 호수에서 이디오피아 남부 사이에 있는 황야를 찾아갈 때 숨이 턱 막히도록 뜨거운 적도의 태양 아래를 걸어가는 산부로족 전사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자기 부족의 가축을 약탈해 간 투르카나족과 싸우러 간다고 했다. 한명은 AK47, 또 한명은 M14소총을 들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 타본다던 그의 렌트카 안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패배하러 가는 길이야. 물론 우리가 전투에서는 이기겠지.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무엇이 남겠어?
승리는 동시에 패배인거야. 다만 우리 삶의 과정이기 때문에 가는 거야”

작가는 그 순간 자신의 삶의 과정을 생각해 보았단다. 시각과 언어 사이에서 자신은 무엇을 찾아 이 아프리카까지 왔는지, 온갖 빛이 혼합된 시각과 온갖 색이 혼합된 언어는 사실 빛의 부재 상태인 白이며 동시에 黑이라고. 이것은 거역할 수 없는 현실이며, 그 양극 사이에 진정한 삶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그 사이에서 작가는 미소 짓거나 때로는 절망한단다.

“사물의 성질인 색과 본질인 빛 - 그것은 해석되어질 수 없다.
그가 보내는 신호는 그 사이에 있다.
그것은 너무나 미묘하여 말로 다 할 수 없다.
다만 때때로 감지할 뿐이다.”

(이중 촬영)
(은하수에 조각배 하나. 이중촬영=안영상)

“마치 지구표면에 찍힌 상현문자 같다.

은하수를 떠가는 조각배 같이.”

그는 에너지로 보았단다, 우주에 흐르는 에너지. 한 컷으로 두 번을 찍는 공력을 넣었단다. 일명 이중촬영이다. 낮에 한 번 밤에 한 번. 낮에는 모래를 찍고, 밤에는 달을 찍고. 이런 사진은 미리 구도를 머리에 잡아두어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떨어지는 것이 어디 꽃뿐이랴)
(떨어지는 것이 어디 꽃뿐이랴. 촬영=안영상)

작가는 동백꽃을 처음 본 게 1980년 제주도를 가다 밤에 헤드라이트 속이었다고 한다. ‘위미리 동백 방품림’, 붉은 빛의 꽃들이 미련 없이 툭, 툭, 떨어지는 모습이 뭔가 몽환적으로 다가왔단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느낌이 자신에게 ‘시각적 충격’을 주었단다.

그리고 그것이 머리 속에 깊이 각인되어, 어느 날 사진 작업으로 피어났다고, 장맛비처럼 앗살하게 떨어지는 동백꽃이 사무라이 정신과 통하는 것 같다고. 그래서 모든 장르의 예술가들은 자신의 머리 속에 깊이 각인된 것은 언젠가는 재현해 내고야 만다.

“작가는 느낌을 삭히고 승화시켜 재구성하며,

그 안에서 감성으로 자란다.”

(태양1)
(태양, 우주의 안테나. 촬영=안영상)

“사진을 형태로 보지 않고, 빛의 파장으로 찍는다.”

남자의 정자는 전기적 성질를 띠며, 난자는 자기적 성질를 띤다고 한다. 작가는 "빛이 만들어낸 상념들은 이 세계의 원인"이라며 "현실은 우리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빛이 사물에 닿아 현실로 인지되기 전에는 어떤 이미지일까'라는 질문을 파고 들어간 작가는 생각을 확장시켜 앞으로 '태양' 자체에 더욱 주목하고 싶다고 한다.

"태양, 우주의 안테나.
모든 것을 받아들여 전기적 파장으로 행성들에게 보내면,
지구는 자기장으로 모든 생명을 보호하면서 실현하여,
소리와 색으로 변화 시킨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태양2)
(태양의 파장. 촬영=안영상)

현란한 빛으로 이글거리는 태양, 그 아래 파도의 용틀임은 가히 그의 말대로 어떤 에너지가 꿈틀대는 듯하다. 그는 말한다.

“내 사진은 에너지를 찍은 것이다.
파장을 보며 찍는다.
걸어두면 힘이 날 것이다.“

만약 저 사진을 앞에 두고 명상이라도 들라치면, 얌전하게 앉아있지 못할 것 같다. 꿈틀거리는 에너지에 말초신경부터 용틀임 치겠다.

특히나 요즘 작가는 태양의 파장에 몰두하고 있다. 시시각각 나름의 톤을 가지고 있으며, 높낮이에 따라 톤을 달리하는 태양, 사물에 부딪치면 색(色)이 되고 우리는 그것을 물질이라고 한다. 대기 자체가 같은 날이 없듯, 파장도 같은 경우가 없다.

“도처에 넘치는 빛 중에서도
어느 멀고 먼 은하에서 지금 '빛의 속도'로 달려오는 미지의 빛은
아직 우리에게 도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빛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땅에 내려앉기도 전에
그의 카메라 센서에 붙잡힌 영롱한 빛의 혼이다.”

나는 마사이 족이다.
(10년간 아프리카 방랑기 '나는마사이족이다'. 도서 표지)

마지막으로 작가는 사진을 찍을 때, ‘느낌’에 가장 주안점을 둔다고 한다.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며, 그 대상과 동화가 됐을 때, 순간적으로 셔터에 손이 간다고 한다

“사진은 순간의 미학이다.”

“사진도 아는 만큼 보인다.
느끼는 만큼 나타난다.”

“사진은 하이쿠다.”

예술가의 미래는 녹록치가 않다. 평생 사진을 찍어온 그이지만, 굶어죽지만 않으면 계속 찍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제발, 자신을 굶어죽게 나두지 마시라고. 결코 카메라는 놓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가을 빛 때문인가, 야윈 그의 손에 어쩐지 카메라가 무거워 보인다.

“사진은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 있지 않으면 찍을 수가 없다.

사진은 매 순간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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