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애경의 플러스라이프] 풍물패 동행, “민초가 잘사는 세상이 지금의 시대정신”

박애경 기자
  • 입력 2020.10.28 12:00
  • 수정 2021.06.0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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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박애경 기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된 농악 즉 풍물놀이는 농경사회에서 특별한 날에 흥을 돋우기 위해 연주하는 놀이였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역할에도 변화가 생겼다. 민주화 운동이 활발했던 7,80년대에는 대학생 동아리를 중심으로 농촌 봉사활동을 겸한 풍물패가 만들어져 민주주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했고, 90년대는 정치적, 사회적인 활동보다는 문화예술로서의 풍물놀이가 자리 잡았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풍물패들이 놀이를 통해 사회적 부당함, 부조리, 불합리에 대한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오늘은 그 중 임인출 대표가 이끄는 풍물패 <동행>을 만나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아 보려한다.

촬영=김남기 기자
촬영=김남기 기자

지난 10월 12일, 풍물패 동행의 연습장소인 서울 종로4가 광장시장에 있는 상가건물 5층을 방문했다. 코로나19 여파에다 저녁 무렵이라 그런지 시장 안은 인적이 드물었다. 간간히 자신의 몸보다 두 세배 더 큰 무게의 원단을 짊어지고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상인들이 눈에 띌 정도였다. 광장시장의 시그니처 메뉴인 녹두전을 굽는 기름 냄새도 여느 때와 같지 않았다. 중년을 훌쩍 넘긴 연배의 사람들 몇몇이 맑은 소주잔을 기울이는 노상 술집을 지나쳐, 풍물패 동행이 매주 월요일에 만나 연습한다는 상가 5층으로 올라갔다. 작고 오래된 한복집 몇 군데를 지나쳐 5층이라기 보다는 6층에 가까운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맞닥뜨린 연습실은 푸근한 외갓집 툇마루를 연상시켰다. 풍물패 동행의 활동가들이 삼삼오오 모여 들었고, 소박한 음식을 나누며 격식 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임인출 대표의 지도에 따라 저마다의 악기를 품고 신명나게 또 진지하게 연습에 임했다. 덩더쿵 덩더쿵 가락의 울림에서 일상의 평온함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임인출(풍류사랑방 일과놀이 대표) / 촬영=김남기 기자
임인출(풍류사랑방 일과놀이 대표) / 촬영=김남기 기자

풍물패 <동행>에 대한 소개 부탁드린다

◀임인출 / 풍류사랑방 일과놀이 대표

풍물패 동행은 동학실천시민행동이 이끄는 단체이다. 동학실천시민행동은 ‘사람이 하늘인 세상’이라는 동학의 정신을 계승하고 아울러 민주화를 주도한 촛불정신을 지금의 시대에 맞게 구현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결성된 단체이다. 제가 이 단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2017년 6월항쟁 30주년을 기념하는 풍물놀이마당을 기획하면서였다. 당시 6.10 민주항쟁, 동학운동, 3.1운동, 4.19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우리나라의 굴곡진 현대사를 풍물단 5~6군이 표현하는 놀이마당이었는데, 그중 제가 맡은 부분이 바로 ‘동학군’이었다. 동학정신을 풍물에 어떻게 표현하고 녹여낼지 생각하던 중 동학실천시민행동을 알게 됐고, 이분들의 도움을 받아 공연을 멋지게 마칠 수 있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2018년 3.1운동 99주년을 맞아 기획한 ‘새로운 100년을 여는 천북행진’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동학실천시민행동이 이끄는 풍물패 동행이 처음 결성된 것이다. ‘천북행진’은 전국의 풍물패와 시민단체들이 대거 참여한 행사였다. 천북행진은 그 이듬해 삼일절 100주년 기념일에 ‘만북행진’으로 이어졌고, 이 행사를 주도적으로 이끈 풍물패가 바로 ‘동행’이었다.

이오상(동학실천시민행동 상임대표) / 촬영=김남기 기자
이요상(동학실천시민행동 상임대표) / 촬영=김남기 기자

 

동학실천시민행동은 어떤 단체인가?

▶이오상 / 동학실천시민행동 상임대표

동학실천시민행동에는 5명의 공동대표가 있는데, 풍물패는 제가 참여하고 있다. 우리 단체는 2014년 정읍에서 동학혁명기념제를 계기로 결성됐다. 1894년 최초의 민중혁명이었던 동학혁명사상을 계승하고, 이 시대의 동학군으로서 사회적 부조리와 부패에 맞서 개혁을 실천하고자 모인 단체이다. 동학사상의 계승과 더불어 우리 전통문화 계승도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농민들의 삶 깊숙이 자리했던 농악 즉 풍물역시 우리가 이어가야할 고유문화이다. 전통문화가 퇴색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우리 단체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풍물패 <동행>이 이러한 역할을 하는 구심점이며, 행사 때마다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는 이유이다.

 

김진표(동학실천시민행동 활동가) / 촬영=김남기 기자
김진표(동학실천시민행동 활동가) / 촬영=김남기 기자

풍물패 <동행>의 요즘 활동은.

◀김진표 / 동학실천시민행동 활동가

풍물패 동행에서 상쇠를 담당하고 있다.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멤버들은 아직 배우는 단계이다. 북, 장구, 꽹과리 등을 한 번도 만져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모여 매주 월요일 저녁 일을 마치고 난 후 함께 모여 두어 시간씩 연습하고 있다. 임인출 대표님이 저희 풍물패를 지도하고 계신다. 처음 풍물패가 꾸려졌을 때는 제대로 된 연습 없이 시민단체에서 행사참여 의뢰가 오면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일단 현장에 나가 서툴지만 신명나게 흥을 돋우었다. 이렇게 현장에서 익히고 숙련해 온 풍물패가 <동행>이다. 현재는 10명에서 12명 정도 활동하고 있다. 아직은 배우는 단계여서 아마추어 수준의 공연이지만, 시민단체 행사에서 ‘흥몰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얼마 전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조선일보 폐간을 외치는 시민운동을 지원해 공연했고, 최근에 가장 이목을 끈 공연은 <미국은 들어라>라는 주제로 40여명 정도가 모여 미국 대사관저 앞에서 진행한 놀이이다. 아울러 동학실천시민행동의 분과 중 하나인 농사팀의 일손을 돕고자 농활을 겸한 풍물 공연을 남해에서 진행한 적도 있다.

 

 

사진=풍물패 동행의 퍼포먼스 '미국은 들어라' / 유튜브 캡쳐
사진=풍물패 동행의 퍼포먼스 '미국은 들어라' / 유튜브 캡쳐

풍물패 일원으로 참여한 계기는.

김진표 / 동학실천시민행동 활동가

사실 풍물패로 활동하게 된 이면에는 ‘인생이모작’도 있다. 1987년 6.10항쟁을 겪은 저는 30여년 세월동안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도 매번 마주하는 기념일에 그저 객체가 되어 구경꾼에 머무르는 것 같아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주체가 되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잘하고 못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직접 참여해 즐기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주체가 되어 참여하면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거라 생각했다. 풍물패 <동행>은 저의 이모작인생일 뿐 아니라 주체로서의 삶을 살게 하는 저의 진짜 ‘동행’이다.

곽찬영(바른먹거리 건강협동조합 이사) / 촬영=김남기 기자
곽찬열(바른먹거리 건강협동조합 이사) / 촬영=김남기 기자

▶곽찬렬 / 바른먹거리 건강협동조합 이사

저야말로 충물패 <동행>을 통해 이모작인생을 멋지게 살고 있다. 여러 우여곡절과 희로애락을 경험하고 나니 지금의 내 나이가 됐다. 시민활동과 풍물패 활동을 하기 전에는 사업을 했다. 건강이 나빠져 사업을 접게 되었고, 다시 건강을 되찾았을 때 만난 사람들이 바로 풍물패 동행이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북치고, 장구치고, 음식을 나누고, 일손을 보태는 일이 저의 삶을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이루다 표현할 수 없다. 이것이 진정한 이모작인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시대정신을 이끌어 가기 위한 풍물패의 역할은.

◆임인출 / 풍류사랑방 일과놀이 대표

풍물은 민초들의 삶을 대변해왔다. 풍물을 통해 고단한 노동을 잠시 잊을 수 있었으며, 팍팍하고 버거운 삶을 덜 지치게 했다. 또한 풍물은 못다 이룬 희망의 실낱이 되어주기도 했고, 안녕을 기원하는 촛불이 되어주기도 했다. 지금의 풍물 역시 예전과 다르지 않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 경계를 허무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있어 풍물이 힘이 되어 준다고 믿는다. 민초에서 시작된 동학운동의 정신처럼 지금의 시대정신도 민초가 잘사는 세상이어야 한다. 풍물이 이러한 시대정신을 이끄는 하나의 역할을 담당할 거라 생각한다. 풍물패 <동행>이 그 역할의 중심이 되길 바란다.

 

사진=뉴시스 제공
사진=뉴시스 제공

인터뷰를 마치고 풍물패 연습실의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면서 마주친 두어 평 남짓의 한복집 주인장의 묵묵한 손놀림과 어둠 짙은 광장시장 길거리 음식점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노인 몇몇의 거친 손에서 평범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인생철학을 배운다. 민초들의 행복한 세상을 위해 주체가 되어 활동하겠다는 풍물패 <동행>의 열정이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가파른 인생계단을 오르는 민초들에게 따뜻한 동무가 되어줄 거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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