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49] 넥타이를 다시 매고 싶은가

오은주 기자
  • 입력 2020.11.02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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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윤식씨는 옷장문을 열어서 등산복을 찾다가 한쪽에 줄줄이 걸려 있는 형형색색의 넥타이를 쳐다보게 되었다. 아직도 사회적 완장에 대한 미련처럼 넥타이가 옷장에 제법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서울 시내 지점의 부지점장으로 발령받았을 때 친구가 선물한 노란 넥타이는 아직도 새것 같았다. 언제 다시 출근길 넥타이를 매어 볼까… 한때는 넥타이를 푸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젠 다른 집 혼사로 결혼식에 갈 때 말고는 딱히 넥타이를 맬 경우가 없어졌다.

평생 농사를 짓고 사신 부모님의 소원이 큰아들인 윤식씨가 대학을 나와 넥타이 매고 책상을 차지하는 직장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에 순응하듯 택한 은행원이란 직업도 2년 전인 60세에 정년을 했다. 은행에서 퇴직 후 한 때는 넥타이를 다시 매기 위해 사무직 일자리를 열심히 알아보았다. 제2금융권도 기웃거려보고, 중소기업의 회계감사 자리도 지원해 보았지만 현실적으로 면접까지 가기도 어려웠다. 사방이 벽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런 일은 여전히 넥타이가 어울리는 젊은 사람들이 역시 더 잘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업도 생각해 봤지만 주변사람 모두가 말리는 바람에 주저앉고 말았다. 넥타이를 매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찾고, 운동과 취미생활을 하자는 결론을 내리자 욕심이 없어지고 마음이 편했다. 요즘은 집 근처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지도교사로 1주일에 2번씩 나가서 바둑을 가르치는데 약간의 수고비를 받지만 총명한 요즘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의외로 상당히 재미와 보람을 주었다.

윤식씨는 그 노란 넥타이를 꺼내 아내에게 보여 주었다.

“이 넥타이를 승진기념으로 받았을 때만해도 내가 영원히 잘 나갈 줄로 착각했다니까…”

이제는 이렇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게 여유가 생겼지만 퇴직 직후에는 한동안 상실감에 빠져 무기력하게 지내기도 했다.

그런데, 아내도 넥타이라면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당신이 직장생활을 할 때는 넥타이가 마치 주인에게 충성해야 하는 개가 걸고 있는 목줄 같다고 한시바삐 풀고 싶다고 했잖아요. 집에 들어서자마자 한손으로 넥타이부터 풀어헤치는 모습이 얼마나 안쓰러웠게요. 아침에 단정히 넥타이를 매고 나가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면, 퇴근 후에 넥타이를 푸는 모습은 하루분의 피곤에서 한시바삐 탈출하려는 모습이었어요.”

그런데도 윤식씨는 묘하게 넥타이를 매지 않는 옷을 입은 후 한참 동안이나 목주변이 허전하고 서늘했다. 아내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라며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신, 이런 이야기 알아요? 미국 증권가에서 하루 종일 빳빳한 넥타이를 매고 일하면서 최고의 보수를 받는 애널리스트가 스트레스에 치여서 멕시코의 바닷가로 휴가를 갔대요. 거기 사는 건강한 중년의 어부가 왜 그리 돈을 버는데 골몰하냐고 물었대요. 그 애널리스트는 나중에 돈을 많이 벌고 나서 은퇴하면, 이런 바닷가에 집을 짓고 하루 종일 어슬렁거리면서 살고 싶어서 그런다고 답했대요. 그랬더니 그 어부가 웃으면서 나는 당신이 돈을 벌어서 최종적으로 살고 싶은 삶을 그리 애쓰지 않고도 이미 살고 있다고 말했대요.”

윤식씨는 아내가 들려준 이야기의 진의를 알듯 말듯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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