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비(妃) 효의왕후 한글 글씨, 보물로 지정된다

김지수 기자
  • 입력 2020.11.19 14:32
  • 수정 2020.11.2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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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의왕후 어필 및 함. 곽자의전(왼쪽)과 만석군전.사진=문화재청 제공)

[이모작뉴스 김지수 기자] 2010년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보물 제1627호) 이후 왕후 글씨가 두 번째로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정조의 왕비 효의왕후 김 씨의 한글 글씨인 「만석군전‧곽자의전」을 비롯해 조선 시대 대형불화(괘불), 사찰 목판 등 5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효의왕후 어필 및 함-만석군전‧곽자의전」은 정조(재위 1776~1800)의 비 효의왕후 김씨(1753~1821)가 조카 김종선(1766~1810)에게 『한서』의 ‘만석군석분’과 『신당서』의 ‘곽자의열전’을 한글로 번역하게 한 다음 그 내용을 1794년(정조 18) 필사한 한글 어필(御筆, 역대 왕과 왕비의 글씨)이다.

효의왕후는 이 두 자료를 필사한 이유에 대해 ‘충성스럽고 질박하며 도타움(충박질후, 忠樸質厚)'은 만석군을 배우고, 근신하고 물러나며 사양함(근신퇴양, 謹愼退讓)은 곽자의와 같으니, 우리 가문에 대대손손 모범으로 삼고자 한 것’이라고 발문에서 밝혔다. 즉, 이 어필책은 가문의 평안과 융성함을 기원한 왕후와 친정 식구들의 염원이 담긴 자료라 하겠다.

(효의왕후 어필 및 함. 표지 및 오동나무함.사진=문화재청 제공)

이 한글 어필은 왕족과 사대부들 사이에서 한글 필사가 유행하던 18세기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자 한글 흘림체의 본보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정제되고 수준이 높다.

특히, 왕후가 역사서의 내용을 필사하고 발문을 남긴 사례가 극히 드물어 희소성이 크며 당시 왕실 한글 서예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어 국문학, 서예사, 역사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또, 제작 시기와 배경, 서예가가 분명해 조선시대 한글서예사의 기준작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아울러 어필 책을 보관해 온 오동나무 함 겉에는 ‘전가보장(傳家寶藏, 가문에 전해 소중하게 간직함)’, ‘자손기영보장(子孫其永寶藏, 자손들이 영원히 소중하게 간직함)’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서 가문 대대로 전래된 역사성을 증명해주며, 원형 또한 잘 남아 있어 함께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필요가 있다.

효의왕후 김 씨의 본관은 청풍(淸風)이다. 김시묵과 남양 홍씨 사이에서 태어나 1762년 세손빈(왕세손의 아내)으로 책봉됐다. 효성이 지극해 시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지성으로 모시며 일생을 검소하게 보냈고, 자녀를 두지 못한 채 69세에 세상을 떠났다.

만석군전은 한나라 경제 때 벼슬을 한 석분의 일대기다. 벼슬길에 나아가서도 사람들을 공경하고 신중한 태도로 예의를 지키며 자식들을 잘 교육하여, 아들 넷 모두 높은 관직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렸다는 내용이다.

곽자의전은 당나라 무장 곽자의의 일대기다. 안녹산의 난을 진압하고 토번을 치는 데 공을 세워 분양군왕에 봉해졌다는 내용으로, 곽자의는 노년에 많은 자식을 거느리고 부귀영화를 누린 인물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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